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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기고] 진실규명은 여기까지, 라고 하지 말자 / 오준호 작가

등록 2017-04-18 10:16수정 2017-04-18 10:31

모로 누운 세월호 더 내려앉는듯
의문점 숱한데 온전히 밝혀낼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완료될 수 없는 진실의 영역을
한걸음씩 넓히는 것이다
목포대교 건너 신항만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세월호가 보였다. 바다에 뜬 다른 배들과 달리 옆으로 누운 세월호는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왔다. 저게 세월호로구나. 이어서 머리에 또 하나의 문장이 스쳤다. 저게 나라로구나.

세월호 거치 장소로 가니 부두는 철망으로 둘러싸였고 철망 틈으로 세월호와 그 아래 오가는 작업자들을 볼 수 있었다. 개미처럼 보이는 작업자의 키에 비추어 세월호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저 큰 배에서 사람을 찾아야 하는구나. 해수부는 하루 두번,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유가족이 세월호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했는데 내가 갔을 때는 오전 참관 시간이었다. 유가족은 해수부가 세월호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친 안전선 바깥에서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울음이 바람에 섞여 날아오는 듯했다.

직접 본 세월호는 한눈에도 균형이 좋지 않았다. 침몰할 때 해저에 부딪친 충격, 바닷물에 의한 부식 그리고 인양 과정에 생긴 변형으로 세월호는 누운 상태에서도 조금씩 더 내려앉고 있었다. 배 연돌, 안테나, 앵커 등은 인양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절단되었다. 천공이 130여개나 뚫렸다. <세월호를 기록하다>를 쓸 때 배를 내 눈으로 꼭 보고 싶었는데, 눈앞의 세월호는 내가 상상한 배가 맞는지 의문마저 들었다. 저 배에서 ‘진실’을 찾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힘든 작업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은, 세월호 진실규명은 영원히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작업이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준 충격은, 사태의 복잡한 인과관계 중 일부분에 선을 긋고 ‘여기까지만 하자’라고 말하는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진실규명에 임하는 윤리적인 자세는 진실규명의 완성 불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배가 왜 급변침하였고 어째서 그리 빨리 가라앉았나’는 진실규명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사법부는 과적, 복원성 불량, 화물 부실 고박 등을 지적하며 다만 직접적 원인이 사람의 과실인지 기계 장치의 오작동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선체조사위원회는 앞으로 과학적 조사를 벌여 이에 대한 해답에 다가갈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무너지고 있는 선체에서 100퍼센트 정확한 답을 찾으리라 확신할 수 있을까? 앞으로 더 나은 조사 기술이 나온다는 가정 하에, 어떤 답이든 단지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답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또 설령 복원성 불량이 침몰에 영향을 준 원인이라 해도 질문은 이어진다. 선사가 무리한 증축과 과적을 하도록 내버려둔 감독기관은 책임이 없나? 세월호 증축을 승인한 한국선급 검사원은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 현행법은 이처럼 많은 곳에서 진실규명에 선을 긋는다.

진실규명의 또 다른 핵심 과제는 ‘왜 승객을 구조하지 않았나’이다. 사법부는 해경 123정 정장에게만 업무상 과실치사의 죄를 물었다. 구조 실패 혹은 구조 방기의 책임이 오로지 말단 해경 간부 1인에게 있다는 ‘진실’을 받아들여야 하나? 해경 지휘부는 어째서 적극적 구조 지휘를 하지 않으면서 현장에 수시로 보고만 요구하였는지, 그것이 구조 작업을 방해하여 실패하게 만든 요소였는지 밝혀야 한다. 현장에 가서 잘못하면 책임을 뒤집어쓰는데, 멀리 있는 지휘부는 정보와 자원을 가지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아도 책임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중앙 정부의 관료들과 대통령은 어떤가. 300명의 목숨이 수장되는 동안 ‘아무 일 안 해도’ 대통령 탄핵 사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것은 진실이 청와대에서 멈춘다는 뜻일까? 나는 여기에 진실규명의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실규명은 곧 진실의 사회적 기준을 우리가 바꾸는 일이다. 사회적 기준을 바꿀수록 진실의 영역은 넓어지고 인과관계는 더 분명해진다.

오준호, <세월호를 기록하다> 지은이
오준호, <세월호를 기록하다> 지은이
어느 유대인 학자가 늘 마지막 장이 찢어진 탈무드를 읽자 제자들이 물었다. “선생님, 왜 찢어진 책으로 공부하십니까?” 학자가 말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한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라네.” 박근혜 없는 봄, 진실규명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은 완료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걸음씩 진실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뿐이다. 망각의 아늑함을 포기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 결심 없이 안전한 사회에 다다를 수 없다.

오준호 <세월호를 기록하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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