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아이들도 휴식이 필요하다. 내가 원할 때 늘 나의 비타민이 돼주길 바라는 건 어른들의 욕심 아닐까.
[토요판] 남지은의 조카 덕후감
7. 휴식을 허하노라
기대했던 반응은 이게 아니다. 두 팔 벌려 “대현아~” 부르면 “고모~” 하며 쪼르르 달려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아이, 무표정으로 터벅터벅 걸어와 영혼 없이 안긴다. 옆구리를 찌르면 “사랑해”라고 말하는 자동인형처럼 어딘가 기계적이다. 올케를 대신해 유치원에 조카를 데리러 간 그날, 처음으로 조카의 영혼 없는 표정을 목격했다.
처음에는 어디 아픈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냥 피곤했던 거다. 유치원에서 종일 공부하고 놀기를 반복하다가, 고모가 데리러 온다니 기다리며 또 시간을 보냈다. 놀다 보니 피곤한 거다. 근데 고모가 와서는 환한 액션을 원한 거다. 그럴 기력이 없는데, 고모가 저러고 있으니 그냥 한번 안겨주는 거다. 그게 끝이 아니다. 차에 탔더니 할머니 3인방이 앉아 있는 거다. 대현을 데리러 간다는 소식에 나의 엄마, 이모, 고모가 합류했다. 대현이 차에 타자마자 할머니 3인방은 뒷좌석에 구겨 앉게 해서는 “대현아” “대현아”를 외쳤다. “대현아 지난번에 할머니한테 불러준 노래 불러봐.”(할머니1) “대현이 그때 할머니 어깨 주물러줬잖아. 또 주물러봐.”(할머니2) “대현아, 유치원에서 뭐 배웠어?”(할머니3) 고모라도 그냥 두면 좋을 텐데, 한술 더 떴다. “대현아 뭐 먹으러 갈까. 뭐 먹고 싶어. 니가 정해!”
착한 우리 대현이, 그래도 꼬박 대답은 다 해줬다. “오빠야~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대체 이런 노래는 어디서 배우는 거니?) 노래를 부르더니 할머니 어깨를 주물러주기 무섭게 ‘두근두근’(고깃집) 가자며 음식점을 추천했다. 목소리는 가라앉아 중저음에 쇳소리까지 섞여 나오고, 표정은 곰 열 마리가 어깨에 들러붙어 있다. “어디 아파?” “어디 아파”를 4명이 도돌이표처럼 물어댔다. “아니”라는데 눈치도 없이 “어디 아픈데?”라며 여기 주물 저기 주물 귀찮게 해댔다.
집에 와서 한숨을 자더니 아이는 다시 활기차졌다. 엄마, 아빠를 보며 떼도 쓰고 투정도 좀 부리더니 이내 내가 알던 대현으로 돌아왔다. 그때 알았다. 얘도 참 피곤하구나. 가끔 와서 최상의 컨디션일 때만 보고 헤어졌으니 조카의 일상을 전혀 몰랐다.(아니 최상의 컨디션을 고모한테 보여주기를 엄마, 아빠 혹은 고모가 강요했을지도 모르지.) 조카가 종일 뭘 하는지, 기분이 어떤지는 고려하지 않고 내가 원할 때 늘 나의 비타민이 돼주길 바란 거다. 고모뿐만이 아니라, 할머니 3인방뿐만이 아니라 삼촌에 엄마 친구에 만나는 사람마다 폭풍 애교를 부리기를 요구했을 테지.
나는 한번 들었을 노래를 알고 보면 수십번 불렀을 수도 있다. “대현아 그때 췄던 춤 고모한테도 보여줘” “대현아 유치원에서 했던 송사 고모한테도 해줘봐” “대현아 고모한테 노래 불러줘야지” “대현아~” “대현아~” 아이도 지친다. 그걸 몰랐다. 1992년 “아기 짓도 못 해먹겠다”(Dur dur d'?tre b?b?!)던 4살 조르디의 노래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대현아, 이젠 고모 곁에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도 좋아. 귀여운 짓, 예쁜 짓 요구하지 않을게. 너도 좀 쉬렴.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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