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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쁜 사람’ 찍어내던 박근혜에게 좋은 사람이란

등록 2017-08-27 09:13수정 2017-08-27 10:59

[토요판] 법정 다큐 - 수인번호 503
⑦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뜻을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고 배척했다. 그런 태도는 박근혜의 지지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사진은 2013년 10월 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이 4대 국정기조 중 하나인 문화융성 구현을 위한 문화융성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는 모습. 오른쪽은 유진룡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뜻을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고 배척했다. 그런 태도는 박근혜의 지지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사진은 2013년 10월 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이 4대 국정기조 중 하나인 문화융성 구현을 위한 문화융성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는 모습. 오른쪽은 유진룡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진재수 전 문체부 과장 증언
“청 보고, 민간인이 알고 전화 와”
“대통령이 노태강 그만두게 하자
더 버틸 수 없겠다 싶어 명퇴 신청”

김기춘에겐 “존경스러운 공직자”
박근혜에겐 “죄없는 피고인”
‘우리’는 감싸고 ‘남’은 배척하는
박근혜와 그 지지자들의 공통점

“<한겨레> 취재 결과, 청와대는 2013년 5월 이례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승마협회를 ‘콕 찍어’ 직접 조사를 지시했다. 더구나 대통령이 직접 일개 부처의 국장·과장 이름을 거론하며 인사 조처를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왜 문체부에 이런 무리한 지시와 개입을 했는지도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특히 이번 사안과 관련해서는 정윤회씨의 전처(올해 7월 이혼)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가 모종의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씨는 박 대통령의 젊은 시절 멘토 격으로 알려진 최태민 목사의 다섯째 딸로, 박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잘 알고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친분 관계만으로 박 대통령을 통해 중앙부처의 감사와 인사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한겨레> 2014년 12월3일치 2면)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8월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을 청와대 집무실로 부른 자리에서 ‘수첩을 꺼내’ 문체부 노아무개 국장과 진아무개 과장의 이름을 직접 거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름을 거론한 두 문체부 공무원에 대해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만 박 대통령은 두 공무원을 지목한 구체적인 이유나, 누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판단하게 됐는지 등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한겨레> 2014년 12월4일치 1면)

청와대 보고를 민간인이 알고 있었다

2014년 12월 <한겨레>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청와대의 ‘이상한’ 감사 지시와 문체부 노태강 전 체육국장(현 문체부 제2차관), 진재수 전 체육정책과장의 사직 강요를 최초로 보도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왜 이런 무리한 지시와 개입을 했는지, 최순실씨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를 알기까지 2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나쁜 사람”의 출처는 최순실씨로 보인다. 지난 5월3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는 “(2013년) 당시 진 과장이 ‘브이아이피(VIP·대통령)께서 승마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며 찾아왔다. ‘문체부에서 내 뒷조사를 한다’고 최씨에게 알려주니 ‘참 나쁜 사람들이네요’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라며 진 과장을 쫓아낸 것을 보고 최씨와 똑같은 표현을 써 좀 놀랐다”고 진술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나쁜 사람’ 진재수 전 과장은 지난 17일 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 나타났다. 진 전 과장은 노 전 국장의 지시로 2013년 7월께 대한승마협회 감사를 시작했고, 박원오 전 전무를 만났다. 당시 진 전 과장이 몰랐던 내막은 최순실씨의 존재다. 최씨는 2013년 4월 딸 정유라씨가 한국마사회컵 전국승마대회에서 준우승하자, 편파 판정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3개월 뒤인 7월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연락해 “승마 쪽에 문제가 많은데 박원오라는 사람이 잘 안다”며 박 전 전무의 연락처를 알려주었고, 정 전 비서관은 모철민 당시 교문수석에게 전달했다. 모 수석을 통해 최씨의 ‘지시’가 노 전 국장, 진 전 과장에까지 전달된 것이다.

“2013년 7월1일 노 전 국장에게서 청와대에서 박 전 전무를 만나 대한승마협회 비리 내용 듣고 진상을 조사해 조치 계획 만들어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았나?”(검찰)

“네.”(진 전 과장)

“노 전 국장으로부터 박 전 전무의 전화번호를 받았나?”

“네.”

“박 전 전무는 증인에게 대한승마협회의 구체적인 문제를 얘기하기보다는 몇 대한승마협회 회장을 비방했고 그 내용도 구체적이지 않았죠?”

“매우 편파적이고 단순한 사항을 얘기했다.”

“노 전 국장에게 박 전 전무의 주장이 워낙 일방적이어서 대한승마협회 관계자 면담 조사했더니 전체적으로 파벌싸움 분위기라고 보고했나?”

“네. 그 내용 보고하기 전에 청와대 행정관과 굉장히 이야기를 많이 했다. 대통령을 보좌하시는 분들이 없냐, 왜 이런 분한테 우리가 자문을 받아야 하느냐, 굉장히 자존심 상한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보고 직후 점심시간 무렵에 박 전 전무가 증인에게 전화해 매우 서운하다, 어떻게 나를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말했나?”

“네. 청와대 교문수석실 자료가 어떻게 민간인에게 바로 유출된 건지 모르지만 굉장히 놀랐다.”

“박 전 전무의 항의가 협박으로 느껴졌나?”

“네. 제가 박 전 전무의 신상에 대해 좋은 이야기가 아닌 걸 보고한 거에 대해 얘기하는데 앞으로 신분상 안 좋은 일 있겠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진 전 과장은 박 전 전무의 항의에 관해 묻는 최씨의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의 질문에 “‘어떻게 진 과장님이 저를 그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는데 당황했다. 공무원이 사실을 알게 되면 보고하는 게 당연하다 했더니, 비서관이 너무 걱정하지 말라 했다며 박 전 전무가 말하는데 소름이 끼쳤다”고 답했다. 이 변호사는 진 전 과장이 기억하는 전화 시점에 “박 전 전무는 독일에 있었다”고 다그쳤다가, 검찰이 국내에 있었다는 출입국 내역을 제시하자 “변호인이 질문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진 전 과장의 직감은 현실이 됐다. 노 전 국장은 2013년 9월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인사조치됐다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의 압박에 2016년 5월 사직서를 제출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예술종합학교로 발령 난 진 전 과장도 “대통령이 아직도 이런 사람이 근무하고 있느냐는 얘기에 노 전 국장이 그만두게 됐다는 경위를 듣고 앞으로 2년 반 동안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해서 바로 명예퇴직을 신청했다”고 진술했다.

증인신문을 마칠 무렵 최순실씨가 입을 열었다. “안민석 의원이 얘기한 공주 승마 의혹을 알고 있나? 자료를 직접 넘겼나?” “저희 딸이 2등 해서 청와대 지시로 수사했다는데 그게 아니라 1등 아버지가 강력하게 항의했다. 조사 제대로 한 건가?” 최씨는 원하는 답은 듣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의 18가지 혐의 중 하나는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김종덕 전 장관과 공모하여’ 노 전 국장의 사직을 강요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황병헌)는 지난 7월27일 ‘공범’인 김상률 전 수석과 김종덕 전 장관의 혐의를 인정하며 노 전 국장을 “의사에 반하여 사직시키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공무원의 신분보장과 직업공무원제도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위법·부당한 지시임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박근혜의 ‘좋은 사람’ 김기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말 멸사봉공의 자세가 확실하고 존경스러운 분이다. 대단히 말씀이 명쾌하다. 공직자로서 자세가 매우 훌륭했다.” 박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전 비서관은 6월9일 김 전 실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존경심을 거듭 밝혔다. 김 전 실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좋은 사람’이었다. 2013년 8월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실장을 비서실장에 임명했는데,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은 “입법·사법·행정에 걸쳐 탁월한 경륜과 역량을 갖춘 분으로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면서 종합적인 균형 감각을 갖춘 분”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깊다. 김 전 실장은 박 전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씨의 이름을 딴 정수장학회 출신이고, 유신헌법 제정에 기여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는 ‘박근혜 후보 경선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2013년에는 재단법인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의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김 전 실장은 2014년 1월 수석비서관들에게 “대통령께서 국회의원 시절부터 국가 개조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계셨다. 지금은 대통령 혼자 뛰고 계시는데 내각은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한 지시가 잘 먹히지 않는다. 좌파 척결의 진도가 잘 안 나간다”고 다그쳤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실장의 ‘법정 상봉’은 불발됐다. 유영하 변호사는 24일 오는 9월14일 증인신문이 예정된 김 전 실장 관련 증거들에 “건강상태도 안 좋고 진술조서 등 검토했는데 굳이 법정에서 현출(실제로 보여주는 것) 안 해도 될 것 같다”며 갑자기 동의했기 때문이다. 검찰도 이날 증인신청을 철회하면서 김 전 실장은 박 전 대통령을 볼 필요가 없어졌다.

두 사람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공범으로 묶여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등과 공모해 직권을 남용해 문체부와 산하기관 직원들에게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를 집행하도록 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7월27일 김 전 실장의 혐의는 인정했지만, 박 전 대통령에게는 면죄부를 주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좌파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계 권력을 되찾아야 한다. 나라가 비정상이다”라는 말을 했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관련 공무원들의 진술도 인정했다. “문화예술계가 좌편향되어 있어 시정이 필요하다는 대통령의 인식에 따라 청와대 내에서 ‘좌파 배제, 우파 지원’의 기조가 형성된 것으로 보이고, 문화예술계 개인·단체에 대한 지원 배제 범행을 실행할 때 대통령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보고받았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대통령은 보수주의를 표방하여 당선되었고 보수주의를 지지하는 국민들을 그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좌파에 대한 지원 축소와 우파에 대한 지원 확대를 표방한 것 자체가 헌법이나 법령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재판부는 결론 내렸다. 블랙리스트가 구체적으로 대통령에게 보고돼 승인, 지시한 것으로 인정할 근거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죄 없는 박근혜”

“‘문제 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보고서’(‘좌파’에 지원된 정부 보조금을 확인하기 위해 만든 ‘민간단체 보조금 티에프(TF)’ 활동 결과 보고서)를 2014년 5월 말께 대통령까지 보고했나?”(검찰)

“네.”(신동철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

“(2015년 1월9일께) 대통령이 ‘보조금 집행이 잘되어야 된다. 정치 편향적인 것에 지원이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김종덕 전 장관)

“부산국제영화제 지원 전액을 삭감하는 계획을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보고하고, ‘흔들림 없이 추진하라’는 대통령의 말을 김상률 전 교문수석에게 들은 걸 분명하게 기억하나?”(김 전 수석 변호인)

“네.”(김소영 전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

24일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선 블랙리스트 재판 피고인들의 증언에 대한 증거조사가 있었다.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다”는 증언들을 박 전 대통령 재판부는 다르게 판단할까.

자신과 생각이 다르거나 반대편에 선 사람은 무조건 배척하는 태도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17일에는 재판이 끝나고 난 뒤 검사들에게 “너희도 처벌받을 거다. 총살감이다”라고 소리친 방청객에게 감치 5일이 선고됐다. 21일에는 재판이 시작된 뒤 “죄 없는 피의자 박근혜 유죄 만드는 오판 하면 우리 사법부 전체 살처분당한다”고 외친 방청객에게 감치 10일이 선고됐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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