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씨가 21일 저녁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한겨레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백남기 농민이 숨지고 1년이 흐르는 사이 정권이 바뀌었다. 연이어 많은 것이 달라졌다. ‘병사’라던 서울대병원은 사인을 ‘외인사’로 고쳤다. 시신을 부검하겠다던 경찰은 청장이 나서 직접 사과했다. 그러나 유족은 이 사과를 거부했다. 큰 딸 도라지씨는 “진정성 없는 사과를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 기일을 나흘 앞둔 지난 21일 저녁 서울 연남동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도라지씨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없는 진정성 없는 사과를 받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이 청장이 저희 가족을 찾아와 사과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며 “사고 이후 아무도 내부징계를 받은 사람이 없었다. 조사가 마무리 될 때까지 직무정지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다들 승진했거나 퇴임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과를 받겠느냐”고 말했다.
정권 교체 뒤 경찰은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며 경찰개혁위원회를 꾸렸다. 이 위원회는 최근 ‘소요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살수차를 (일반)집회 현장에 투입하지마라’고 경찰에 권고했다. 경찰은 이를 수용했다. 백남기 농민의 희생이 일구어낸 변화다. 도라지씨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민주 국가였다면 애초에 이렇게 했어야한다”면서도 “지금 경찰이 진정 반성하고 변화하려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하는 제스처로밖에 안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올바른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거라면 환영한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중앙광장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1주기 추모대회’에 경찰은 살수차도, 차벽도 동원하지 않았다.
고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씨가 21일 저녁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한겨레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 사건은 국가 폭력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연대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백남기 농민이 숨지자 경찰은 부검을 시도했고,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부검을 막기 위한 싸움에 동참했다. 도라지씨는 “투쟁본부와 변호인단, 그 외에 수많은 시민들이 관심 보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감사를 표했다.
두 달 뒤면 사건 발생 2년이다. 도라지씨는 “‘책임감’ 때문에 2년 가까이 버틸 수 있었다”며 “우리 가족이 버티지 못하면 아버지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는 생각에 책임감을 갖고 버텼다”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의 사인은 ‘병사’에서 ‘외인사’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과제가 남아있다. 도라지씨는 “그동안 검찰의 수사와 경찰의 진상조사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현 정부의 의지를 믿는다. 공정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바란다”고 말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