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10개월간 투병하다 숨진 고 백남기 농민의 1주기가 됐지만, 물대포 사건 책임자들은 형사처벌은 물론 내부 징계조차 받지 않고 있다.
2015년 11월14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자 백남기 농민의 유족과 농민단체 등은 책임자였던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관 7명을 나흘 뒤 살인미수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했다. 당시 백남기 농민이 숨지기 전이라 살인이 아닌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구은수 전 서울청장, 신윤균 전 서울청 4기동 단장, 살수차 운전 요원 2명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만 알려졌을 뿐, 검찰이 그간 수사를 어떻게 해왔는지, 기소 여부는 왜 판단하지 않고 있는지 등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강신명 전 청장은 검찰의 소환조사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고소 대상이 모두 전·현직 경찰이라 소환조사가 힘들지 않고, 목격자 및 시시티브이 영상 등 관련 증거가 많은데도 검찰이 사건처리를 미룬 것을 두고 비판이 많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수사 경험상 오래 걸릴 수사가 아니다. 정치적 이유로 수사는 끝내놓고 판단만 미룬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백남기 농민 유족을 대리하는 송아람 변호사는 “검찰이 사건처리를 계속 미루면서 (재판에서) 당시 상황을 진술해야 하는 주요 증인들의 기억내용이 흐릿해질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2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외국 등의 사례를 찾아보느라 처리가 늦어졌다. 오늘도 구은수 전 서울청장을 재소환하는 등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조만간 결론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와 별개로 살수차 규정 위반 등 확인된 사실에 대한 단순 징계도 미루고 있는 경찰에 대한 비판도 크다. 경찰은 물대포 사건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자체 조사 결과 시위자가 살수차로부터 20m 이내에 있을 때는 7기압 이내로 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10기압 이상의 압력으로 발사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공개된 시시티브이 화면에서 가슴 아래로 물포를 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긴 사실도 확인됐다. 그러나 경찰은 ‘검찰 수사 결과를 봐야 징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검찰과 경찰이 판단을 미루는 사이 유족 등이 물대포 사건 책임자로 지목한 경찰들은 내부 징계도 받지 않고 퇴임하거나 승진해 현직에서 일하고 있다. 강신명 전 청장은 백남기 농민 사망에 대한 사과 없이 지난해 8월 퇴임했고, 구은수 전 청장은 재작년 12월 퇴임한 뒤 지난 2월부터 경찰공제회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신윤균 전 서울경찰청 4기동단장(총경)은 현재 경찰청 성폭력대책과장으로 있고, 공춘학 전 서울청 4기동단 장비계장은 지난해 경위에서 경감으로 승진해 현재 서울 강서경찰서 방범순찰대장으로 있다. 살수차 운전 요원 최아무개 경장(충남청 1기동대)과 한아무개 경장(충남청 1기동대)도 징계받지 않고 계속 근무 중이다.
이런 와중에 내달 공식 출범 예정인 경찰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유남영 위원장)는 첫 조사대상으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을 선정하는 내용을 위원들과 논의 중인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진상조사위원회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경찰의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사건 감찰 내용에 대한 국민 불신이 크고 검찰 수사도 계속 미뤄지고 있어 이 사건부터 진상조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위원들의 논의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최종 결정은 위원회 출범 뒤 공식 회의를 거쳐 진행될 예정이다. 진상조사위는 경찰개혁위원회가 설립을 권고해 경찰청이 꾸린 위원회다.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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