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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 결정권의 근거는 뭘까요

등록 2017-10-01 14:42수정 2017-10-04 11:37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와 핵발전소 - 이것이 궁금하다 ⑥

시민참여단 중대 결정권 총리훈령에 명시
500명 시민들 한달여 자료집 온라인 학습
2박3일 합숙 토론 통해 숙의 뒤 공론조사
최종 정책 결정과 책임 권한은 정부에
20여개국 70여차례 공론조사 정책 반영
몽골 지난 4월 공론조사로 헌법도 개정
지난달 16일 오후 충남 천안 교보생명 연수원 계성원에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시민참여단 오리엔테이션이 열렸다. 공론화위는 500명의 참여단 중 478명이 참석해 95.6%의 참석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천안/연합뉴스
지난달 16일 오후 충남 천안 교보생명 연수원 계성원에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시민참여단 오리엔테이션이 열렸다. 공론화위는 500명의 참여단 중 478명이 참석해 95.6%의 참석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천안/연합뉴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위원장 김지형)가 구성한 500명 규모의 시민대표참여단에게는 신고리 5·6호기의 중단 여부를 판단할, 중차대한 결정 권한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일단 법에도 시민참여단을 통한 공론화위의 결정이 명시돼 있습니다. 국무총리훈령(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보면 공론화위는 “신고리 5·6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 여부에 관하여 공론화를 통한 결과를 도출”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물론 공론화위 위원장이나 위원 개인의 의견이 결과에 반영되지는 않습니다. 공론화위의 역할은 시민배심원단을 구성하고 그들이 충분한 학습과 토론을 거쳐 ‘결정’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론화위는 시민배심원단의 ‘결정’과 그동안의 공론화 과정을 정리한 내용을 정부에 제출합니다.

지난 7월24일 공론화위가 출범한 직후 공론화위는 스스로의 ‘권한’과 ‘책임’을 두고 혼선을 빚었습니다. 출범 뒤 처음 연 정례 회의 결과 발표 자리에서 공론화위 대변인단이 “위원회가 공사 백지화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권고’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대목에서부터 논란의 불꽃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애초 정부는 “공론화위가 구성한 시민참여단이 내리는 결정을 그대로 정책에 수용하겠다”며 “시민참여단이 어떤 결정을 내리면 최종 결정권자는 그에 따를 것”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정부와 공론화위가 서로에게 신고리 5·6호기 중단 여부 결정 권한을 떠넘기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졌는데요. 결국 논란은 정부 쪽 인사들이 해명을 거듭하며 일단락됐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7월31일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이 논란에 대해 “정부가 책임과 결정의 주체라는 건 변함이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청와대도 “공론화위가 어떤 결론을 내려주든 100% 수용하겠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공론화위가 시민참여단의 결정을 ‘권고’하더라도 정부가 이를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니, 실질적인 결정 권한이 시민참여단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어떤 방식으로 신고리 5·6호기 중단 여부라는 중차대한 결정을 할까요? 정부는 ‘공론조사’ 방식으로 신고리 5·6호기 영구 중단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공론조사는 1988년 제임스 피시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제안한 여론수렴 방법입니다. 국민 모두를 대표할 수 있게 표본추출한 소수의 시민들이 자료집, 전문가 강연 등 숙의 과정을 거친 뒤 생각이 숙의 전과 어떻게,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는 것이 핵심입니다. 일반 여론조사 응답자가 수동적이라면, 공론조사 참여자는 능동적이라는 측면에서 다릅니다. 시민이 어떤 사안을 충분히 이해한 뒤 내리는 판단은 신뢰할 수 있고, 정책에도 반영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 숙의 민주주의적 조사 기법입니다.

500명 규모의 시민참여단이 중차대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일단 9월16일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뒤 10월15일 최종조사 때까지 공사 중단·재개 쪽 입장이 담긴 자료집과 공론화위가 제공한 온라인 강좌로 학습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2박3일 합숙까지 참여하면 사안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숙의 과정이 마무리됩니다. 2박3일 합숙(10월13∼15일) 마지막 날에는 최종 조사, 곧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해야 할지, 재개해야 할지를 두고 ‘투표’를 합니다. 공론화위는 최종 조사 결과와 시민참여단의 의견 변화를 담은 보고서 및 권고안을 10월20일께 정부에 제출합니다.

공론화위가 ‘투표’ 결과를 그대로 정부에 권고할지는 아직 미정입니다. 단 한 표 차이로 결과가 갈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80 대 20처럼 어떤 입장이 절반을 훨씬 넘을 때는 권고안을 내기 쉽습니다. ‘시민참여단 다수의 생각이 이러하니 공론화위도 이러한 결정을 존중해 정부에 이렇게 권고한다’고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51 대 49와 같이 중단·재개 입장이 팽팽할 경우 공론화위는 고민에 빠질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과반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론화위가 시민참여단의 결정을 있는 그대로 정부에 전달하면, 이를 근거로 정부가 결정할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시민참여단의 판단이 가장 중요합니다. 해외에서도 시민에게 정부의 중차대한 결정을 맡긴 적이 있습니다. 몽골 정부는 지난 4월 6개의 헌법 개정안에 대한 일반 시민의 의견을 묻는 공론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공론조사라는 조사 방법론을 고안해 낸 제임스 피시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공론조사 창안자 “원전 공론화, 시민에 충분한 정보량이 관건”)에서 “정부가 공론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법률에 명시한 최초의 사례였는데, 2박3일 동안의 토론이 잘 진행됐으며, 그 결과도 좋았다. 기존에 정당이 주장해온 내용과 전혀 다른 토론 결과가 나와 정치권에 충격을 줬는데, 조사 결과가 모두 헌법 개정에 반영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시민이 직접 헌법 개정이라는 중차대한 결정을 한 사례입니다.

몽골뿐만이 아닙니다. 공론조사는 해외 20여개국에서 70여 차례 이상 진행됐습니다. 특히 현재 한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처럼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공론조사가 활용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1996년 미국 텍사스주가 실시한 각종 발전소 등 전기시설에 대한 공론조사나 2007년 미국 버몬트주의 미래 에너지 정책에 대한 공론조사, 2012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누출 이후 원자력 관련 공론조사 등이 대표적입니다. 선진국들이 숙의를 거친 시민에게 중대한 결정을 한 권한을 주고, 정부 또한 그 결정을 신뢰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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