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9일 일본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제1원전에서 도쿄전력 관계자가 2011년 후쿠시마원전 사고 때 수소폭발로 지붕이 날아간 원자로 1호기를 취재진에게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대만은 올해 6월 멈춰 있던 핵발전(원전) 2기를 재가동했습니다. 올해 초 대만은 2025년까지 보유한 6기의 핵발전을 모두 폐지하겠다고 선언한 터였습니다. 이런 상황에 8월에는 가스발전 사고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를 놓고 한국 원자력계와 일부 언론은 “대만이 탈원전 정책을 선회한 것이다. 탈원전 정책 때문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대만은 탈핵 정책에서 유턴한 것일까요? 이를 확인하려면 우선 대만의 탈핵 정책 결정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순서입니다. 대만의 탈핵 운동에는 상징적인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2014년 완공률 98%에 이른 제4핵발전소의 건설을 중단한 것입니다. 대만은 모두 6기의 원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1999년 제4핵발전소가 추가로 착공됐지만 민진당 천슈이벤 총통이 2000년 10월 건설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이후 2001년 의회(입법원) 표결로 건설이 재개됐지만 가동 예정일이 계속 미뤄지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원전 사고가 터집니다. 대만 시민들 사이에 탈핵 운동이 활발히 전개돼 2013년 3월에는 22만명이 탈핵 행진에 참여하고 2014년 4월에는 5만명이 거리 시위에 나서 시민불복종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국민당 마잉지우 총통은 제4핵발전소 건설 중지를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2016년 집권한 민진당의 차이잉원 총통은 이런 배경 속에서 탈핵정책을 표방했으며, 대만 의회는 올해 1월17일 보유하고 있는 원전 6기를 2025년까지 폐쇄하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당시 가동하던 원전은 마안산 1호기뿐이었습니다. 2025년은 가장 늦게 지어진 마안산 2호기의 설계수명 40년이 끝나는 해입니다. 현존하는 원전들의 수명연장을 승인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핵발전이 전면 중단되는 시점입니다.
대만은 지난 6월 궈성 1호기와 마안산 2호기 재가동을 승인했습니다. 여름 폭염 시기 전력 수급에 차질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서라고 대만 정부는 밝혔습니다. 지난 8월15일에는 대만 전체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예고 없이 전력 공급 중단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수도 타이베이 남부에 있는 ‘다탄’ 천연가스 화력발전소 직원의 조작 실수로 연료 공급이 중단돼 발생한 사고입니다. 리스광 대만 경제부장(장관)이 사임하고 차이잉원 총통이 사과했습니다. 대만 야당은 정부가 탈핵 정책을 강행하면서 원전을 세워둬 작은 사고에도 큰 피해가 발생했다고 공격했습니다. 최근 선룽진 신임 경제부장은 그린 에너지로 전력 공급이 충분하지 못할 경우 국민의 지지와 법적 조치를 전제로 핵발전의 추가 재가동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대만이 탈핵 정책 기조를 바꾼 것은 아닙니다. 차이잉원 총통은 대정전 사태의 근본 대책은 분산식 에너지 발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탈핵 정책은 변함없이 추진하겠다고 재차 확인했습니다.
일본의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후쿠시마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당시 간 나오토 총리는 2030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탈핵’을 선언했습니다. 핵발전소 54기 중 12기는 폐로가 결정됐으며, 2013년 9월까지 모든 핵발전소 가동을 멈췄습니다. 하지만 2014년 아베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했습니다. 가동할 수 있는 핵발전소 42기 가운데 26기가 재가동을 신청했으며 이 가운데 14기가 신규제 기준에 적합하다고 허가가 났습니다. 니가타현 소재 가시와자키카리와 6·7호기 재가동에 대한 ‘심사서안’은 지난 4일 일본 핵규제위원회에서 최종 승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들 핵발전소는 지역 동의 절차 때문에 현재 가동 중인 것은 5기에 불과합니다. 가시와자키카리와 6·7호기는 후쿠시마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이 사고 수습과 손해배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특별히 재가동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진 핵발전소입니다. 그러나 실제 재가동은 쉬워보이지 않습니다.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는 “도쿄전력이 니가타본사까지 만들어가며 홍보를 하고 있지만 니가타현 지사가 몇 가지 조건을 내세워 충족하지 않으면 재가동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혀 최소 3년 이상은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현 지사가 내세운 3가지 조건은 △후쿠시마사고의 원인을 규명할 것 △후쿠시마사고에서 나온 방사능이 건강과 생명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할 것 △방재(피난)계획의 실효성을 보장할 것 등입니다. 일본은 아베의 보수적 중앙 정부가 ‘탈핵’ 정책을 바꿨지만 지역 정부와 주민들은 아직 ‘탈핵’ 기조를 유지하는 모양새입니다.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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