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때 판단을 잘못했구나, 내가 스스로 내 발등을 찍었구나 생각하곤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 위원장을 맡아 국가정보원의 적폐청산 작업을 이끌었던 안병욱(69·사진)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25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위원회 등의) 안이한 사고와 접근법이 결국 정권교체 이후 ‘원세훈 국정원’의 ‘장난’에 빌미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며 “적폐청산을 제대로 하려면 지금이라도 개혁위원회가 국정원 서버를 확보해 검찰이 수사하듯 조사를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왜 스스로 발등을 찍었다고 생각하나?
“한 3년 정도 국정원 사람들과 같이 일했다. 그러다 보니 정도 들고. 그래서 마지막에 보고서를 쓰는데 처음 들어갈 때 가졌던 생각을 바꿨다. ‘완전 해체 이후 국가적인 필요와 목표에 따른 재설립’이 맞다는 생각에서 후퇴를 한 것이다. 당시에는 ‘이만큼 했으니 국정원이 더는 뒤로 가지는 않겠지’ 싶었다. 그런데 정권 바뀌고 불과 몇달 만에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안이하게 생각했구나, 많은 반성을 했다.”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조사 결과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려면 ‘철저한 검증’이 담보돼야 한다. 개혁위나 적폐청산 티에프 등 ‘외부’ 참여자들이 서버 검색부터 그 이후까지 모든 과정을 바로 옆에서 검증해야 한다. 서버를 개혁위가 확보하고 수사하듯 하는 게 맞다. 국정원이 검색해서 보여주는 문서만 본다면 애초 개혁위의 목표에 부합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 것이다. 국정원이 과거 잘못을 ‘벌금’ 정도 물고 털겠다는 것인데, 그런 ‘씻김굿’을 도와주는 차원이라면 곤란하지 않겠나.”
-당시 조사는 어떻게 했나?
“우리 때는 지금처럼 서버에 저장돼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이크로필름에서 일일이 찾아야 했다. 전체 목록에서 예를 들어 ‘김대중’을 쳐서 문서 제목이 죽 뜨면 그중 어느 어느 문서를 특정해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제출받기까지 석달, 넉달이 걸렸다. 보안검토 하고, 기밀사항 지우고서야 가져다주니 우리(진실위) 의도대로 충분히 조사했다고 말할 수 없다. 또 과거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시절 공작 문서는 제대로 보관돼 있지 않아 조사에 제약이 많았다. 그래도 국정원 보안요원들이 검색을 할 때면 우리도 옆에 붙어 앉아서 검색을 제대로 하나 안 하나 지켜보곤 했다.” 강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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