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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순간] 교복과 실습복 사이, 길을 잃다

등록 2018-01-12 09:25수정 2018-01-19 17:12

특성화고 학생들의 미래는
교복 차림의 이유진 양(왼쪽)이 조리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교복과 조리복을 입은 채 거울을 마주보는 사진을 각각 촬영해 좌우 대칭되도록 붙였다.
교복 차림의 이유진 양(왼쪽)이 조리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교복과 조리복을 입은 채 거울을 마주보는 사진을 각각 촬영해 좌우 대칭되도록 붙였다.

“나는 청소년일까요, 노동자일까요?”

교복과 조리복을 갈아입으며 거울을 바라보던 서울의 한 특성화고 2학년 이유진양이 혼잣말처럼 물었다. 교복 차림에선 아직 앳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지만, 실습복 차림의 그에게는 업무와 현장에 대한 책임감이 더해진다. 겨울방학 동안 일과를 묻자, 컴퓨터 활용 능력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에 다닌다고 한다. “조리 전공 과정에 필요한가 봐요?” 되물었더니 “아니요”란 답이 돌아왔다. 전공대로 취업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보험 삼아 준비하고 있단다. 최근 조기취업 제도가 전면 폐지되면서 취업 기회가 더욱 적어진 탓이다.

조기 취업이 가능하단 점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장점이었으나, 그렇게 일찍 만난 사회에서 이들은 학생으로도, 노동자로도 보호받지 못했다.
조기 취업이 가능하단 점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장점이었으나, 그렇게 일찍 만난 사회에서 이들은 학생으로도, 노동자로도 보호받지 못했다.

제주 실습생 이민호 군 사고로 정부는 조기 취업이 가능한 현장실습 제도를 전면 폐지했다. 좀 더 일찍 길을 찾아 나선 이들이었지만, 이제 새 길을 찾아야 하는 처지다.
제주 실습생 이민호 군 사고로 정부는 조기 취업이 가능한 현장실습 제도를 전면 폐지했다. 좀 더 일찍 길을 찾아 나선 이들이었지만, 이제 새 길을 찾아야 하는 처지다.

‘특정 산업분야 교육과정을 마련해 학생들의 취업을 돕겠다’는 뜻으로 세워진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조기취업’이 가능한 현장실습은 큰 장점이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실행되었을 때, 학생으로도, 노동자로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면서 사고가 잇따랐다. 결국 지난해 이민호군의 사고에 이르러서야 정부는 급히 대책을 내놓았고, 그 결과 조기취업의 길은 막혔다.

교복 차림의 조민성 군에게는 아직 앳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지만, 실습복 차림의 그에게는 업무와 현장에 대한 책임감이 더해진다.
교복 차림의 조민성 군에게는 아직 앳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지만, 실습복 차림의 그에게는 업무와 현장에 대한 책임감이 더해진다.

교복을 입은 조민성 군 뒤 거울에 실습복을 입은 그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교복과 조리복을 입은 채 거울을 마주보는 사진을 각각 촬영해 두 장을 붙였다.
교복을 입은 조민성 군 뒤 거울에 실습복을 입은 그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교복과 조리복을 입은 채 거울을 마주보는 사진을 각각 촬영해 두 장을 붙였다.

지금은 막막하지만, 아직 희망으로 사방을 두드리고 있는 조민성 군이다.
지금은 막막하지만, 아직 희망으로 사방을 두드리고 있는 조민성 군이다.

“불의의 사고는 너무 안타깝고 우리도 깊이 애도하지요. 그러나 제도를 전면 폐지하는 것은 보여주기 위한 임기응변식 대책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요”라고 조민성(18)군이 지적했다. 조군은 충남 서산의 한 특성화고에서 바이오식품 가공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3학년 때 선생님의 지도 아래 조기취업을 준비하며 취업 과정을 거쳤던 선배들과 달리 정군은 당장 학교 차원의 조기취업 지원을 받지 못한다. 사실상 취업 지원은 3학년 2학기 겨울방학부터나 가능해진다.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을 전면 적용하겠다는 정부 대책은 나왔지만, 그로 인해 막힌 길을 돌파하는 해법은 다시 학생들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대책을 내놓기 전, 좀 더 학생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줄 수는 없었을까 많이 서운해요.” 조군이 말했다. 그는 최근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에 가입해 현장실습 폐지 반대 서명운동을 벌였다. 자신보다 겨우 한 살 많았던 이민호군의 사고를 보며 제 일로 느껴져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청소년과 노동자 사이, 그 어디쯤에서 길을 찾고 있는 이민호군의 후배들은 그 못지않은 간절함으로 여전히 우리 사회의 관심과 지혜를 구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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