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로 불거진 파장이 거세다. 시민들은 그의 용기를 응원하고 나섰고, 검찰 일부에서도 “이 일이 7년간 감춰진 것은 검찰의 폐쇄적인 조직문화 때문”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정작 씁쓸한 건 이런 분위기와 큰 온도차를 보이는 소위 엘리트 검사들의 반응이다. “얼마 전 인사 때 원하는 곳으로 가지 못해 불만을 품고 글을 올렸다”, “실력 때문에 물을 먹은 것”이라는 말도 스스럼없이 나왔다.
서 검사의 폭로 직후 법무부가 내놓은 공식 반응은 검찰과 법무부가 얼마나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조직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첫 문장이 “당사자의 인사 불이익 주장에 따라 2015년 인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충분히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문제점을 기록상 발견하지 못했다”고 돼 있다. 성폭력 피해를 고백했는데, 진실 규명이 아니라 ‘인사 불이익이 없었다’는 답부터 한 것이다.
두번째 문장은 더 가관이다. 법무부는 “대상자는 근속 기간이 경과되지 않아 금번 상반기 평검사 인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서 검사는 ‘상반기 인사’를 언급한 적도 없다. 인사 문제부터 끄집어내 ‘대체 뭐가 문제냐’고 몰아세우는 법무부의 반응은 “서 검사가 이번 인사 때 원하는 곳으로 가지 못한 불만 때문에 글을 올렸다”고 비난하는 이들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법무부는 공식 반응 말미에 “성추행과 관련된 주장은 8년 가까운 시일의 경과, 당사자들의 퇴직으로 경위 파악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제2, 제3의 서지현’이 앞으로 또 얼마나 외롭게 싸워야 하는지를 예고하는 대목처럼 다가온다.
‘영민한’ 검사들이 벌써부터 엉뚱한 걱정을 하는 소리도 들린다. 한 검찰 간부는 “서 검사의 문제제기 방식에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검찰개혁과 연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소위 ‘주류’라고 불리는 검사들이 지금껏 공들여 만들어온 ‘그들만의 리그’가 지금의 사태를 만들었다는 반성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서 검사가 주장한 ‘인사 문제’는 정말 없었을까? 누구는 강제추행 같은 비위가 있어도 쉬쉬하며 무난히 검사장도 됐다. 그런데 누구는 사무감사에서 지적을 받았다고 수년째 한직만 전전했다. 이게 정말 공정한가? 서 검사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검사라는 사실을 잊은 채 검찰 내부의 힘없고 작은 부품인 존재가 되었다.” 다른 검사들은 어떤가?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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