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평창겨울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성화 봉송을 마친 성화주자와 봉사활동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모두를 빛나게 하라’(Let Everyone Shine)를 슬로건으로 전국 각지를 누벼온 성화가 9일 드디어 평창에 발을 디뎠다. 평창 거리 곳곳 성화가 가는 곳마다 구름 인파가 몰렸다. 마지막 성화 봉송 주자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기보배·장혜진·최미선 양궁 국가대표 선수, 영화배우 성룡(청룽) 등이 참가해 관심을 모았다.
이날 성화 봉송은 아침 8시30분께 평창군청 앞 광장에서 시작됐다. 이어 봉평과 진부면에선 이색 진행으로 눈길을 끌었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 선생의 고향 봉평에서는 봉평중학교의 ‘대취타 퍼레이드’와 함께 성화가 옮겨졌고, 진부 평창송어축제장에서는 주자가 ‘스노모빌’을 타고 성화를 봉송했다.
곳곳에 한반도기가 휘날리며 봉송을 응원하는 모습도 펼쳐졌다. 거리마다 사람들이 운집해 이번 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이 그려진 파란색 깃발이나 한반도기를 흔들며 “평창 파이팅”을 외쳤다. 평창 주민 김영민(32)씨는 한반도기를 흔들며 “이 작은 동네에 성화가 왔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세계인의 축제에 북한 선수들도 참가하게 된 만큼 뜻깊은 결과를 낳는 올림픽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성화 봉송의 하이라이트는 중국의 유명 배우 성룡의 출현이었다. 인기를 실감케 하듯 평창군 대관령면 일대에서 성룡이 성화 봉송을 위해 대기하는 중에도 수백명의 인파에 둘러싸였다. 사인을 요청하거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일순간 폴리스라인이 무너져 성룡이 직접 한국말로 ‘조심해, 조심해’라고 외치기도 했다.
오후 3시9분께 이전 주자로부터 성화를 이어받은 성룡이 “평창올림픽 파이팅”을 외치며 달리기 시작하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성룡은 3분여간 봉송을 한 뒤 다음 주자에게 성화를 건넸다.
영화배우 성룡(청룽)이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일인 9일 오전 알펜시아 올림픽파크 인근에서 성화봉송을 하고 있다. 2018.2.9 연합뉴스
이날 성화 봉송에는 평범한 시민들도 많이 참여했다. 주자로 참여한 박진우씨는 벅찬 목소리로 “오늘 성화 봉송을 하게 되어 영광이다. 평창의 기운을 받아 꿈인 프로게이머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자 조나영씨는 “성화를 들고 뛰면서 마음속에 잃어버렸던 열정을 되찾은 기분”이라며 감격했다.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17일간 올림픽 주경기장을 밝힐 성화는 지난해 10월24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채화됐다. 101일 동안 남북한 전체 인구를 상징하는 7500명의 주자가 2018㎞를 달리며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어 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에 도착했다.
북에서 온 응원단이 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해 열띤 응원전을 펴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이날 저녁 7시께 개막식장 3층 시(C)구역과 디(D)구역에 나눠 앉아 인공기와 한반도기를 번갈아 흔들며 ‘밀양 아리랑’, ‘설날’, ‘고향의 봄’ 등 남쪽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노래를 잇달아 합창했다.
북한 태권도시범단이 무대 위로 등장하자 응원단은 “우리 선수 장하다!”, “힘내라 힘내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환호했다. 태권도단이 송판 격파를 하기 직전에는 긴장한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보는가 하면, 송판 격파를 성공하는 순간 “야호!”, “힘내라!”라고 소리치며 즐거워했다. 주변 관람객들은 응원단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고, 경찰이나 자원봉사자들은 이들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평창/글·사진 임재우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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