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국군사이버사령부가 정부에 비판적인 누리꾼들의 정보를 수집해 경찰에 통보(작전명 레드펜)한 정황을 확인했다는 ‘국방부 사이버 댓글 사건 조사 티에프(TF)’(이하 티에프)의 발표에 대해 경찰이 진상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경찰청 보안국은 티에프가 진행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관련자 진술을 듣고 자료를 확보하는 등 사실상 수사에 준하는 수준으로 관련 내용을 살피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티에프는 지난 14일 “당시 사이버사령부가 포털 사이트 댓글을 검색한 뒤 북한 찬양지지, 대통령 및 국가정책 비난, 군 비난 아이디 분석현황(2012년 기준 961개 아이디)을 경찰청 등에 통보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군 사이버사와 경찰청이 ‘2인3각’처럼 레드펜 작전 협조를 진행해온 정황을 밝힌 <한겨레> 보도(<한겨레> 2월5일치 13면)를 사실로 확인한 것이다.
당시 군 사이버사와 업무 공조를 한 경찰 부서는 경찰청 보안국 보안사이버수사대다. 보안사이버수사대는 군 사이버사 설립을 일주일 앞둔 2009년 12월 설립됐으며, 2016년 보안4과로 통합됐다. 일주일 차를 두고 설립된 경찰 보안사이버수사대와 군 사이버사 사이엔 ‘2012년 사이버심리전 작전지침’, ‘청와대 현안업무보고’ 등 작전 공조를 의심할 만한 숱한 정황이 발견됐다.
그러나 군 사이버사가 건넨 정보로 경찰이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경찰청 보안국 산하 진상조사팀은 군 티에프를 접촉해 군 사이버사가 어떤 경로로 업무 공조를 했는지 확인 작업을 벌이는 등 진상조사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초기 보안사이버수사대 요원들의 진술을 듣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청 보안국 관계자는 “현재는 군 사이버사와 업무 공유하는 것이 일체 없다. 과거에 벌어진 일이더라도 문제점 여부를 철저히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자체 조사가 실효성 있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 진상조사팀은 군 사이버사와의 업무 협조 관련 문건이 경찰청 서버 안에 남아 있지 않아 조사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청 문서접수대장에도 관련 기록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다. 보안국이 공식 보고를 누락했거나, 이미 ‘흔적 지우기’에 나섰을 가능성이 짙어 보이는 정황이다. 군 티에프는 앞서 “이번 (레드펜) 의혹에 대해 민간 검찰과 공조해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군 티에프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국정원과 군에 이어 경찰 역시 ‘정치개입’ 정황이 드러날 수 있는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수집된 정보(레드펜)로 여론 단속 차원에서 누리꾼에 대한 수사를 벌였다면 직권남용 혐의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