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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효피디의 청사진] 사진기자의 흔한 악몽

등록 2018-05-07 08:07수정 2018-05-07 10:54

외국에서 온 한 주요 인사 취재였습니다. 취재할 수 있는 시간은 그 인사가 승강기에서 내려 로비를 통과한 뒤 승용차에 탈 때까지 뿐. 이정아 기자와 함께 갔습니다. 사진기자가 한 현장에 2명 이상 나간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찍어야’ 하거나 ‘다양하게 찍어야’ 하거나, 혹은 ‘반드시 다양하게 찍어야’ 하거나. 이때는 자리 배치도 중요합니다. 이 기자는 승용차쪽에 서게 했습니다.

제가 설 곳이 문제였습니다. 이미 많은 기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마땅한 곳이 없었습니다. 1층 로비에서 동선을 점검하며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뿔싸! 승강기 쪽에서 플래시가 터집니다. 예상보다 빨리 움직였나 봅니다. 급히 카메라를 드는데 제 카메라에 플래시가 없네요. 설상가상! 허둥지둥 플래시를 찾아 끼우는데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제 쪽으로 걸어오는 그 인사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겨우 플래시를 끼운 뒤 카메라를 들어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가니 보이는 건 옆 모습. 셔터를 눌렀던가? 낭패!

재빨리 반대쪽 출구로 뛰었습니다. 이런! 그쪽은 경호원이 통제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창 밖으로 멀리 그 인사가 승용차에 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정아가 찍었겠지?’ 생각하며 눈으로 이정아 기자를 찾는데 보이지 않습니다. 머리 속이 하얘집니다. “망했다”

4월27일 역사적인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시작을 서울도서관 옥상에서 기다렸습니다. 꿈에서는 이런 때 급박한 상황이 생기고 모두들 허겁지겁 카메라를 챙기는데 제 카메라만 사라지고 없습니다. 효피디
4월27일 역사적인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시작을 서울도서관 옥상에서 기다렸습니다. 꿈에서는 이런 때 급박한 상황이 생기고 모두들 허겁지겁 카메라를 챙기는데 제 카메라만 사라지고 없습니다. 효피디
정신을 차려보니 꿈이었습니다. 사진기자가 꾸는 흔한(이라고 믿습니다. 저만 그런 건 분명 아닐겁니다) 악몽입니다. 결정적 순간이 눈 앞에서 벌어지는데 셔터가 눌리지 않는다거나, 렌즈, 카메라 혹은 카메라 가방이 통째로 없어진다거나 하는 따위의 꿈. 스트레스 때문이겠거니 생각합니다.

중요한 취재가 예정돼 있으면 미리 상황을 그려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럴 땐 이렇게 해야겠다’ 생각한 뒤 그 현장을 만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도움이 됩니다. 청와대 출입을 ‘명’ 받았지만 곧이어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탓에 출입신청조차 하지 못한 채 아쉬운 마음으로 중계화면을 봤습니다. 남북정상회담 앞뒤로 며칠을 보내며 아마 저도 모르게 이런저런 상황들을 머리 속에서 되풀이해 그려봤나 봅니다. 그 중 한 장면이 꿈으로 나온 걸까요? 이정아 디지털사진팀장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 이 연재물에 대한 압박이었을까요? (고백합니다. 연재를 시작은 했는데 마땅히 쓸 게 없었습니다.)

지난 2일 춘추관에 들러 출입신청서도 냈고 꿈 덕분에 이 글도 썼습니다. 그 꿈을 부른 스트레스는 이제 없어졌겠죠?

아, 청와대 출입증이 나오기까지 2~3주 걸린다고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27일 오전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처음 만나는 모습이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재단 광고전광판에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출입자 교체 사실을 안 한 선배는 “너 왜 판문점 안 가고 여기 왔냐”며 놀렸습니다. 효피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27일 오전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처음 만나는 모습이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재단 광고전광판에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출입자 교체 사실을 안 한 선배는 “너 왜 판문점 안 가고 여기 왔냐”며 놀렸습니다. 효피디
출입기자 교체신청서와 신원진술서, 출입기자 등록자료를 작성해 증명사진과 함께 제출하면 됩니다. 예상보다 서류가 간소해 놀랍습니다. 효피디
출입기자 교체신청서와 신원진술서, 출입기자 등록자료를 작성해 증명사진과 함께 제출하면 됩니다. 예상보다 서류가 간소해 놀랍습니다. 효피디
지난 2일 출입신청 서류를 제출하러 청와대 춘추관에 갔습니다. 마침 그 시각 한-터키 정상회담이 청와대에서 열렸습니다. 터키쪽 경호원들이 춘추관 앞에 대기하고 있네요. 효피디
지난 2일 출입신청 서류를 제출하러 청와대 춘추관에 갔습니다. 마침 그 시각 한-터키 정상회담이 청와대에서 열렸습니다. 터키쪽 경호원들이 춘추관 앞에 대기하고 있네요. 효피디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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