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양승태 전 원장 등 고발 놓고 장고
‘의견수렴’ 계속에 내부 논란과 법원 안팎 반발 가중
‘재판 거래’ 사건 당사자들, 재심 및 자료 공개 요구
케이티엑스(KTX) 해고 승무원들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김환수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 대법원 관계자들을 만나 케이티엑스 승무원들의 해고를 인정한 2015년 대법원 판결을 김명수 대법원장이 직권으로 재심 결정해줄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사법 농단’을 놓고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고발이 잇따르는 등 사법불신 기류가 확산하는 가운데, 김명수 대법원장의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 김 대법원장이 의견수렴을 이유로 검찰 수사와 고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서 법원 안팎의 반발과 논란도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김 대법원장은 30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의 조사결과에 대한 향후 처리방안에 대해, 일선 판사들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각급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조만간 열린다”며 “그와 같은 의견 또한 제가 경청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어 “이와 같은 중차대한 문제에 있어서 일선 법관들이 의견을 내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다”며 “(향후 방안은) 판사들의 의견과 조사보고서, 개인별 보고서 등 대내외 의견을 종합해 결정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법원장의 이런 언급은 다음 달 4일로 예정된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와 서울가정법원 판사회의 등을 통해 일선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고발 등 향후 조처 방안을 내놓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전국법관대표회의도 다음 달 11일 열리는 임시회의에서 관련 내용을 논의할 예정이어서, 김 대법원장의 ‘장고’가 6월 중순께 끝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법원행정처는 29일에 이어 30일 오전 김창보 행정처 차장 주재로 실장(고법 부장판사)과 총괄심의관(부장판사) 및 일부 심의관(판사)이 참석한 간담회를 열어 이번 사태에 대한 대법원의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간담회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 등 관련자들에 대한 고발 및 수사 의뢰 여부, ‘재판 거래’에 동원된 판결 당사자들의 재심 요구 등에 대한 대응 방안을 놓고 다양한 법률적 가능성과 예상되는 파장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조사단장인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현재로서는 (특별조사단이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 등을) 재조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법원 내부에서는 특별조사단의 조사 이후 대책을 놓고 검찰이나 특검의 수사, 국정조사를 통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주장하는 의견부터, 법원 내부 징계와 자정작용을 통한 해결을 주장하는 의견 등이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다. 일부 판사들은 행정처 문건이 확대해석 됐다며 특별조사단의 조사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등 내부 혼란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법원이 입장을 정하지 못하는 사이 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 문건에 거래대상으로 거론된 사건 당사자들과 변호사단체, 법원노조 등은 “재판 중립성이 훼손됐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케이티엑스(KTX) 해고 승무원들은 29일 대법원 대법정을 기습 점거해 항의시위를 한 데 이어 이날 오후 대법원에서 김환수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과 만나, ‘케이티엑스 승무원은 철도공사 정규직이 아니다’라고 선고한 2015년 대법원 판결에 대해 김 대법원장이 직권으로 재심을 결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현행법상으로 대법원장의 직권 재심결정이나 법원의 자체 재심청구는 가능하지 않다. 승무원들은 또 이번 ‘사법 농단’의 피해자 모두가 대법원장과 면담하도록 해줄 것과 자료 공개 및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사건 당사자인 키코 공동대책위, 통합진보당 대책위,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참여연대는 이날 오후 대법원 동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다음 주 중 14개 ‘사법 농단 피해자 단체’가 공동으로 양 전 대법원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회견에서 김 대법원장에게 양 전 대법원장 등을 고발 또는 수사 의뢰하고 관련 문건의 전면 공개와 재발 방지대책을 촉구했다. 민변은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수사와 국회 국정조사도 요구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법원노조)도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이민걸 전 행정처 기조실장, 이규진 전 양형위 상임위원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법원노조는 3453명의 법원 공무원이 서명한 고발장에서 “사법부 내부의 조사가 아닌 수사기관의 수사가 필요하다”며 관련자 전원의 처벌을 주장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콜텍 노동자, 쌍용자동차, 통상임금 사건 등에서 정당하게 판결한 원심을 대법원이 뒤집은 판결이 모두 대법원과 청와대의 정치적 거래의 결과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수사와 이들 사건의 재심을 주장했다.
지금까지 검찰에 접수된 사법 농단 의혹 관련 고발 사건은 10여건에 이르며, ‘재판 거래’ 의혹 사건 당사자들의 고발 등이 이어질 예정이어서 고발 사건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여현호 선임기자, 고한솔 기자 yeop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