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지사(왼쪽)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안희정(53) 전 충남지사의 1심 무죄 선고의 핵심은 ‘업무상 위력’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에 있었다. 여기서 위력이란 ‘사람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무형적 힘’을 의미한다. 재판부의 판단을 정리하면, ‘안 전 지사와 피해자 김지은씨가 업무상 위력관계에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지만,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 등을 볼 때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해 간음했다는 증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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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상 위력 관계’ 맞지만 ‘위력’ 행사되지 않아 우선 재판부는 안 전 지사와 김씨가 ‘업무 상 위력관계’였으나 그 ‘위력’이 행사되지는 않았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선고문에서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명되고 있는 점,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의 임면 등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위력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피고인이 위력을 일반적으로 행사해 왔다거나 이를 남용해 ‘위력의 존재감’ 자체로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김씨가 수행비서로 근무했던 충남도청은 위력이 상시적으로 행사되는 수직적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에 재판부는 개별 피해 사례를 살펴가며 ‘위력 행사’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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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이 떨어져 재판부는 김씨의 행동이나 지인들과 주고받은 문자 등에서 ‘위력의 행사’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김씨 진술이 ‘그대로 신빙하기 어렵고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김씨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 등이 피해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바닥을 쳐다보며 중얼거리는 방식으로 거절의 의사를 표현했다고 하지만 피고인의 요구에 살짝 안는 행위로 나아가기도 했다”거나 “피해자는 피고인의 행위가 미투 운동에 반한다고 언급하거나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가는 등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등의 대목이 재판부의 이러한 인식을 보여준다.
재판부는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하더라도 김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피고인이 성적인 길들이기를 하여 ‘그루밍’ 상태는 아니었는지, (성폭력 피해자 특유의) ‘학습된 무기력 상태’는 아니었는지 등을 살펴보았으나 그런 상태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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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는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 높아”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재판부의 인식도 무죄 판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성범죄 처벌규정이 보호하는 법익은 성적자기결정권”이라며 “여성이 자유의사의 제압이 없는 상태에서 성관계를 맺기로 결정했음에도 사후적으로 상대방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성적자기결정권을 스스로 부인하는 행위”라고 부연했다.
“주체성과 자존감이 결코 낮지 않”은 김씨가 안 전 지사와의 관계에서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안 전 지사 변호인단이 김씨를 “학벌 좋은 여성”, “주체적이고 결단력 있는 여성” 등으로 묘사했던 변론 전략이 수용된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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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상 처벌할 수 없어 재판부는 현행법상 한계로 안 전 지사를 처벌하기 힘들다는 논리도 폈다. 재판부는 현행법상 처벌가능한 성폭력 범죄를 3가지로 분류했다. △폭행이나 협박이 동반된 성폭력(강간) △성숙하지 않은 피해자에 대한 성폭력(미성년·심신미약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위력에 의한 간음)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폭행과 협박이 없었고, 피해자가 미성년자가 아니고, 위력 행사도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를 처벌한 것인지의 문제는 입법정책적 문제이고, 사회 전반의 성인식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문제”라고 봤다.
한편, 검찰은 “피해자는 피해사실을 일관되게 진술했고, 여러 인적·물적 증거에 의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됨에도 법원은 달리 판단했다”며 “항소심에서 공소사실을 입증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