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베트남 껀터에 위치한 한베함께돌봄센터에서 만난 쩐응옥아인(가명·31)은 베트남에서의 ‘재판 이혼’을 앞두고 있다.
“지금이라도 이혼이 가능할까요?”
지난 8월27일 베트남 껀터에 있는 한국 시민단체 유엔인권정책센터(KOCUN·이하 코쿤껀터)에서 운영하는 한베함께돌봄센터 상담실의 문을 두드린 레티투이
(가명·29)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주섬주섬 한국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발급받은 ‘협의이혼 의사 확인신청서’를 꺼냈다. ‘진의에 따라 이혼하기로 합의됐음이 틀림없음을 확인합니다.’ 빛바랜 A4용지에 스테이플러심까지 녹슬어버린 이 서류의 발급 날짜는 2008년 6월이었다.
투이는 19살 때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다. 업체 설명과 달리 남편은 심한 간질을 앓고 있었다. ‘속았다’는 배신감에 협의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이혼했더라도 베트남에서 한번 더 이혼신고 절차를 밟아야 비로소 혼인 관계가 완벽히 청산되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법원은 사법청에 가라 하고, 사법청은 법원에 가라 하고…. 절차도 복잡하고 비용도 부담됐어요.”
투이의 삶은 거기서 ‘정체’됐다. 3년 전 베트남 남성을 만나 아이 둘을 얻었지만 이 아이들은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기혼 상태여서 새 남편과의 혼인신고는 물론 두 아이의 출생신고도 못 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조급하다. “아이들 출생신고라도 꼭 해야 해요. 이제는 정말 이혼하고 싶어요.”
■ 국제이혼 증가… 본국으로 돌아오는 귀환 여성
] 베트남 호찌민에서 서쪽으로 160㎞ 떨어진 곳으로 차를 타고 4시간 이동하면 5개 직할시 중 하나인 껀터가 나온다. 한-베 국제결혼 6쌍 중에 1쌍이 이곳 출신으로 추정된다.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5명 중 1명꼴로 가족 해체를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남성과 결혼했다가 베트남 껀터로 돌아오는 ‘귀환 여성’도 꾸준히 늘고 있다.
귀환 여성 3명 중 2명은 투이처럼 한국에서의 결혼생활이 끝났음에도 혼인 관계를 법적으로 완전히 청산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무늬만 기혼’인 탓에 새 배우자와 혼인신고도 못 하고 자녀의 출생신고도 할 수 없다.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다 타지로 재이주를 하기도 한다. 지난달 26~30일 베트남의 코쿤껀터를 찾아 귀환 여성과 한-베 자녀를 만났다.
베트남 껀터에 위치한 사법청 건물. 껀터시 인민위원회 직속 전문기관으로 베트남 법무부와 껀터시 인민위원회의 위임을 받아 행정 관리 등의 역할을 한다.
베트남 껀터에 위치한 껀터법원 건물. 베트남 껀터 지역에 거주하는 귀환여성들의 재판이혼 등이 이뤄진다.
■ 결혼은 속성인데 이혼은 언제쯤?
] 이혼에는 법적 절차가 수반되는데, 국제 이혼의 경우 양국 법률이 달라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국에서 이혼 수속을 마친 경우 베트남에서 한번 더 이혼신고를 해야 이혼이 비로소 완성되는 식이다. 판결문, 협의이혼확인서 등 이혼 상태를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미처 서류를 챙기지 못하고 도망치듯 본국으로 돌아온 귀환 여성들은 바다 건너 한국에서 관련 서류를 발급받는 첫 단계부터 막막함을 느낀다. 지역마다, 관계기관 담당자마다 안내하는 이혼 절차가 달라 일관된 정보를 얻는 것도 어렵다. 귀환 뒤 코쿤껀터에 상담받으러 찾아오기까지 평균 3년 이상이 소요되는 이유다.
하지만 이는 비교적 해결이 간단한 경우에 속한다. 28일 한베함께돌봄센터에서 만난 쩐응옥아인(가명·31)은 베트남에서의 ‘재판 이혼’을 앞두고 있다. 아인은 19살 때 한국으로 건너가 제 나이만큼 많은 남성과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어도 한국 문화도 낯설었을 때 교회에서 베트남 국적의 언니를 알게 됐다. 함께 장을 보러 가는 등 외출이 늘자 남편은 외출을 막았다. 수개월 동안 집 안에 갇혀 있다 갈등이 폭발했고 남편은 아인을 폭행했다. 시누이집으로 몸을 피한 뒤 이혼수속도 밟을 새 없이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왔다.
베트남 남성과 재혼해 아이를 두고 있는 아인은 이제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의 삶을 살고 싶다. “소송에 필요한 서류가 너무 많아요. 한국 남편이 지금이라도 이혼에 동의해줘 절차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대부분의 결혼이주여성은 속성 결혼의 특성상 가정폭력·불화에 시달리다 도망치듯 베트남으로 돌아오는데 이 경우 베트남에서 재판 이혼을 해야 한다. 관련 서류가 국제특급우편(EMS)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지난한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상대 의견을 묻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포함해 최소 1~3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복잡한 이혼 절차와 부족한 정보 때문에 고민하다 이혼 수속을 도와주겠다는 결혼중개업체에 사기를 당해 빚을 지기도 한다. 장밋빛으로 시작된 국제결혼이 평생의 족쇄가 되는 순간이다.
오승연 대한변협법률구조재단 변호사는 “서류 발급, 이혼 소송은 한국에선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귀환 여성에게는 매우 어렵고 복잡한 문제다. 필요한 서류를 한국 해외 공관에서도 발급받을 수 있게 하거나 베트남과 한국이 법률적 도움을 주고받는 루트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귀환 여성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빈곤에 한숨
] “한국에서 왜 돌아왔냐고 다들 물어요. 그건 시간이 흘러도 똑같아요.” 지난달 26일 만난 하꾸인뉴옌(가명·33)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2011년 결혼해 임신한 옌은 베트남 음식이 간절했지만 시어머니는 옌이 베트남 음식을 만들 때마다 눈을 흘겼다. 갈등 끝에 한국에서 협의이혼하고 부른 배로 베트남에 돌아왔다. 어렵게 돌아온 고향이건만 이혼 여성을 향한 주변의 시선은 달갑지 않았다. 국제결혼으로 ‘집안을 일으킨’ 결혼이주여성들과 비교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경제적 도움은커녕 혹까지 달고 왔다며 친정엄마까지 옌을 구박했다. “참았어야지, 왜 성급히 이혼을 해서….” 옌은 친정에 차마 살지 못하고 그에 딸린 작은 판잣집에 아들과 둘이 산다.
베트남에서의 이혼신고도 못 했다. 그보다 아들을 돌보며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이 급했다. 베트남에서 태어나 베트남 국적을 얻은 아이는 목에 혹이 있다. 엄마의 돌봄이 절실해 고정적인 일자리는 꿈도 꾸지 못한다. 식당에서 매일 4시간 설거지해 하루 6만동(약 3천원)을 버는 것이 수입의 전부다. “언젠가 아이가 목 수술을 해야 할 텐데 수술비를 어떻게 구할지 눈앞이 깜깜해요.”
귀환 여성은 학력이 높지 않고 어린 나이에 결혼을 택해 직업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건도 경제활동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코쿤과 껀터여성연맹이 2016년 11월~2017년 8월 베트남 껀터와 허우장 지역에 거주하는 귀환 여성 301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여성들이 한달 200만동(약 10만원) 미만의 소득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44.1%). 사회적 낙인과 경제적 빈곤으로 떠밀리듯 타지나 외국으로 재이주하는 비율도 절반에 가까웠다(47.7%).
조사에 참여한 부티짱 코쿤 연구원은 “귀환 여성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는 존재이자 결혼에 실패하고 돌아온 여성’이라는 싸늘한 시선에 시달리게 된다”며 “이혼 과정에서 받는 정신적 상처에 더해 부모에 대한 죄책감, 사회로부터의 고립감까지 겪게 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2018년 기획취재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한국이 초래한 문제, 한국이 풀어야
] 전문가들은 한국이 결혼이주여성을 필요에 의해 불러들인 만큼 귀환 여성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한다. 국제결혼은 2000년대 들어 저출산 문제, 결혼시장 내 성비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결혼중개업체들이 영리 목적으로 그 통로를 열었고 정부는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결혼이주여성으로 분류돼 다문화가정 지원정책 대상자였던 이들은 한국 국경을 벗어나는 순간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구체적으로 파악이 안 됐을 뿐 베트남 외에 몽골·필리핀 등 한국과의 국제결혼 비율이 높은 국가의 공통된 문제이기도 하다.
김현미 연세대 인류학과 교수는 “귀환 여성의 법적 청산에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은 한국 정부가 수행해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 의무로,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의 생존을 위해 초국적 연대와 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진성 코쿤 대표는 “여성 인권의 관점에서도 귀환 여성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할 문제”라고 짚었다.
껀터/글·사진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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