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매트레킹을 찾은 여성 등반객들. 세자매트레킹 제공
히말라야 안나푸르나가 마을을 굽어보는 네팔 포카라. 우기가 끝나지 않은 관광 비수기라 거리가 한산하던 지난 9월13일, 포카라에 있는 트레킹 업체 ‘세 자매 어드벤처 트레킹’(3 Sisters Adventure Trekking)은 유달리 북적였다. 한달 일정의 초급 가이드 교육을 막 끝낸 여성 교육생 44명이 발표를 마친 뒤 과정을 수료하는 날이었다. 공가 쿠마리 라나(20)는 함께 교육을 받은 동료들과 선생님들이 보는 자리에서 긴장된 목소리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영어로 설명했다. “이건 구아바잎입니다. 네팔어로는 ‘벨로디’라고 하고요.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설사를 멎게 하는 데 효능이 있습니다.” 공가는 1박2일 현장실습으로 떠난 산에서 직접 본 보리수와 금잔화·장미·히비스커스 등의 잎이나 꽃을 따 왔고, 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식물의 특징을 마저 설명했다. 관광객에게 가이드는 그 지역에 관한 ‘만물박사’여야 한다. 공가는 한달 동안 네팔의 부족별로 다양한 문화와 종교, 동식물, 지리, 환경 등을 배웠다. 공가는 “네팔을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에게 제가 알고 배운 것을 알려주는 가이드가 되고 싶고, 저도 그들한테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러키·디키·니키 세 자매
25년째 여성 등반객 가이드 사업
“여자가 무거운 짐 어떻게?
“영어는 할 줄 아냐?” 비아냥
손님 데리고 산장 가면
“가족은 어쩌고? 이혼 했나?”
남녀 가이드 임금차별 없애고
‘포터’ 대신 ‘어시스턴트’라 불러
작년 등반객 1490명 이용
“여성 손님들이 편하게 느껴”
여성 가이드 무료교육 외에도
‘자신감 프로젝트’ 등 자립교육 힘써
공가가 씩씩하게 “가이드가 되고 싶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건 25년 전 그의 이모뻘인 ‘세 자매’가 씨를 뿌려둔 덕분이다. 네팔 국경과 가까이 있는 인도 다르질링 지역에 살던 러키·디키·니키 체트리 세 자매는 1993년 이곳에 이주해 관광객들을 상대로 식당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장사를 시작해보니 흉흉한 소문이 들렸다. 남성 가이드가 종종 여성 등반객을 성폭행한다는 얘기였다. 등반객은 가이드에게 서비스에 대한 값을 지급하는 ‘갑’이다. 그러나 일단 히말라야에 올라서면 등반객은 자신의 안위를 절대적으로 가이드에게 의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때 여성 등반객과 남성 가이드 사이의 권력관계가 역전되는 것이다. 큰언니 러키는 동생들에게 제안했다. “여자들이 가이드를 하면 어떨까?”
■ “가이드가 아니라 의사나 선생님을 하지 그래?”
만년설이 쌓인 아득한 해발고도 7000~8000m의 봉우리. ‘히말라야 여성 가이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여성이 할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러키는 일자리 없는 여성들은 괜찮은 일자리를 얻게 되고, 안전한 트레킹을 하고 싶어 하는 여성 등반객들도 안심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이듬해 변변한 간판 하나 없는 이곳에 ‘세 자매 어드벤처 트레킹’이라고 내걸고 여성 관광객들을 위한 트레킹 가이드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재 ‘세 자매 트레킹’ 사업을 총괄하는 막내 니키 체트리(48)는 사업 초기를 이렇게 회고했다. “주변에서 모두 무시하고 비웃었죠. ‘여자들이 가이드를 해?’ 믿어주지를 않아서 정부에 정식 등록할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여자들이 무거운 짐을 어떻게 메는지, 어떻게 산에 오를 수 있는지 의문을 나타내고, 영어는 할 줄 아느냐며 비아냥이 쏟아졌다. 자매는 꿋꿋했다. 경력이 16년 된 선임 가이드 마나 쿤와르(37)도 자신이 처음 가이드를 시작할 때를 뚜렷이 기억했다. 다른 남성 가이드들은 “좋은 직업 많잖아. 의사나 선생님 하면 되지 여자가 왜 가이드를 하고 그래?”라며 마나를 조롱했다. 손님을 데리고 산에 올라서면 로지(산장) 주인들도 그에게 물었다. “가족은 어쩌고 여길 올라온 거야? 이혼한 거 아니야?”
니키는 “네팔 여성들은 집안일을 하거나 돈 될 만한 일로는 농사나 수공예 이상을 생각하기 어려웠고, 자립할 만한 충분한 돈을 받지도 못했다”며 “이들이 영어와 가이드 교육을 받는다면 특히 고산 지역 출신 여성들은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5년이 흐른 지금, 이젠 손님을 데리고 산에 올라도 이들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나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없다. ‘여성 가이드’의 도움을 받고 싶어서 지난해에 세 자매 트레킹을 찾은 이들만 1490명에 이른다. 세 자매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네팔의 여성 가이드 비율은 정확히 집계되지 않지만 이들의 추정으로는 여전히 전체 가이드의 5~10% 구간에 놓여 있어 여전히 ‘소수’다. 로지에선 보통 가이드가 모이는 방이 별도로 있는데, 대부분 남성 가이드라 여성 가이드들은 주방에 있는 의자에서 자기 일쑤라고 한다. 마나는 “처음 가이드를 할 때 받았던 편견과 비교하면, 그 정도는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9월12일 세자매트레킹에서 초급 가이드 교육을 받는 교육생들이 인근 산으로 현장실습을 떠났다. 세자매트레킹 제공
■ 정해진 무게를 들고, 동등하게 존중하며
어떻게 이들은 등반객들과 주변 업체들로부터 신뢰를 얻었을까? 차별화한 원칙을 몇 가지 세웠다. 다른 업체처럼 고용된 여성과 남성의 임금을 차별하지 않는다. 등반객의 짐을 메고 산을 오르는 ‘포터’(짐꾼)라 불리는 이들을 ‘어시스턴트’(조수)로 칭한다. 통상 정식 가이드가 되기 전 수습 과정처럼 거치는 ‘포터’라는 말에 이들을 하대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메는 짐 무게도 제한했다. 여성은 최대 10㎏, 남성은 13㎏이다. 무게 제한에 대한 자체 기준 없이 일부 무리한 무게까지 지도록 하는 업체도 여전히 많다. 이들은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운영하면서 20년 넘도록 ‘사고율 제로’였다는 점에 자부심을 보였다. 지난해에만 등반객 1490명이 ‘세 자매 트레킹’의 도움을 받았다. 유럽(53%)과 미국(26%) 국적이 대부분인데, 여성들끼리 온 등반객이 70%에 이른다. 나머지는 커플·가족 단위로 오는 경우가 많다. ‘세 자매’의 가이드 다와 키파(33)는 “여성 손님들이 아무래도 가이드가 같은 여자여서 더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며 “특히 생리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여자들끼리 더 잘 알고 이해하기 때문에 체력과 건강을 고려해 스케줄을 관리하기 쉬운 편이다”라고 여성 가이드의 장점을 설명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네팔 여성들에게 가이드는 힘들지만 남자들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를 의미하는 것일까. 가이드들은 “그게 전부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경력 10년차 가이드 부스바 푼(38)은 포카라에서 차로만 12시간 넘는 거리에 있는 외딴 지역에 살았다. 그곳에도 가끔 트레킹하러 오는 외국인들을 종종 보면서 가이드의 꿈을 키웠다. 그러다 여성 가이드를 교육하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세 자매’로 왔다. 이곳에서 처음 영어도 배웠다. 부스바는 “가이드를 하지 않았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왜 히말라야를 찾는지, 또 어떤 넓은 세상이 있는지 전혀 몰랐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강고한 가부장제에서 한정된 시야로 살던 네팔 여성들한테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직업이라는 뜻이었다.
왼쪽부터 러키, 디키, 니키 체트리. 세자매트레킹 제공
■ 소녀들에게 희망을
‘세 자매 트레킹’은 여성 가이드 양성기관 구실까지 맡고 있다. 세 자매는 트레킹 사업을 꾸린 지 5년 만인 1999년, ‘여성역량강화’(EWN: Empowering Women of Nepal)라는 엔지오(NGO·비정부기구)를 만들었다. 트레킹 사업의 수익과 개인 후원으로 굴러가는 엔지오다. 가이드가 되고 싶은 여성들 누구에게나 무료로 교육을 해오고 있다. 집이 포카라에서 멀어 숙식을 해결하기 어려운 교육생들에게는 숙소까지 제공한다. 이곳을 거쳐간 교육생만 2000명이 훌쩍 넘는다. 물론 이들이 모두 세 자매 소속 가이드가 된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배운 여성 중 소수만 가이드가 되고, 또 그중엔 다른 업체에서 일하거나 다른 여성 등반객들을 위한 가이드 업체를 차리기도 했다. 니키는 그래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한다. “실제로 가이드가 될지 여부보다도 교육을 마치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홈스테이를 하더라도 손님 대하는 법을 배웠던 것을 써먹을 수 있다”며 “여기서 배운 뒤 무엇을 하더라도 이전에 할 수 없던 걸 할 수 있다고 느끼는 그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이들은 매해 10대 소녀들을 대상으로 9개월짜리 이른바 ‘자신감 프로젝트’ 교육을 한다. 대체로 여전히 성차별이 심한 시골 마을에 있는 소녀들을 만나 함께 배구·축구 등 스포츠를 하고, 성교육을 해 이들이 제대로 된 성 관련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한다. ‘세 자매’의 조카이자 이더블유엔에서 ‘골(목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딥자야 체트리(26)는 “아직까지 네팔 시골에선 아들은 학교에 보내도, 딸은 보내지 않는 경우가 잦고 13~14살에 조혼으로 내몰리기도 한다”며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가정을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녀들이 ‘나는 약하다’거나 ‘빨리 결혼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스스로 강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소극적이고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길 꺼리던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스스로의 이야기를 똑똑히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는 게 딥자야의 설명이었다. 딥자야는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강해지는 것”이라며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고, 스스로 돈을 벌며 독립적이고 자신감 있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그의 세 이모가 이미 25년 전부터 해온 일이었다.
포카라/글·사진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