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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청소노동자·운영요원…정상회담 조명 뒤 그림자가 된 사람들

등록 2018-09-20 15:10수정 2018-09-20 21:22

24시간 불밝힌 서울 프레스센터
운영지원요원 80여명 묵묵히 제자리
식음료 판매처 온종일 북적거려
“역사 현장에 함께 있는 것 감동적”
900여석 행사장 청결관리 청소노동자
“휴식공간 열악하지만 그래도 영광”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프레스센터.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프레스센터.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서울 프레스센터가 위치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디디피)에 들어가기 전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은 프레스센터 운영요원 김유나(24)씨다. 김씨는 내외신 기자들이 프레스센터로 출근하는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프레스센터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푯말을 들고 서 있다. 굽이굽이 굽어진 형태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디디피)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다. 김씨는 “지금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정말 뜻 깊은 자리”라며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역사의 현장에서 기여하고 있다는 뿌듯함은 장시간 서 있어야 하는 다리의 통증을 잊게 만드는 힘이다.

서울 프레스센터는 ‘24시간’ 불이 켜져 있다. 취재환경이 지극히 제한적인 평양 프레스센터를 대신해 사실상 메인 프레스센터 역할을 하는 서울 프레스센터는 28개 나라, 309개 매체의 2690명의 기자가 종일 북적인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의 ‘최일선’에 선 프레스센터에는 기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프레스센터의 ‘24시간’에는 ‘역사의 순간’에 함께 한다는 자부심으로 모인 운영·지원 인력의 ‘보이지 않는 헌신’이 자리잡고 있다.

프레스센터 운영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재범(24)씨. 권지담 기자
프레스센터 운영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재범(24)씨. 권지담 기자
프레스센터 내부로 들어오면 운영요원 박재범(24)씨가 환하게 웃으며 반겨준다. 박씨는 국제 행사의 ‘베테랑’이다. 지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2015년 광주유니버사이드, 올해 평창겨울올림픽까지 국제행사 운영요원으로 20여차례 일했다. 박씨는 지난 평창겨울올림픽을 경험한 게 이번 정상회담 운영요원에 지원하게 된 계기라고 한다.

“평창에서 선수들 약물을 검사하는 도핑관리부에서 일해서 선수들을 비교적 가까이서 접했거든요. 아버지가 군인이라 북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데, 하키 단일팀을 보니 다 같은 사람이더라고요.” 프레스센터 곳곳에는 박씨처럼 각종 지원 업무를 맡고있는 운영요원 80여명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퇴근이 없죠.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프레스센터에서 사용되는 인터넷·방송회선 등 통신망을 관리하는 문화체육관광부 박홍규(51) 사무관은 회담 기간 내내 프레스센터 옆 호텔에서 묵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통신장치에 물이나 커피를 쏟거나 갑자기 정전되는 등 돌발상황에 대비하느라, 박 사무관은 종일 프레스센터를 뛰어다닌다. 특히 이번 디디피 프레스센터는 지난 ‘4.27 정상회담’ 당시 프레스센터가 설치된 킨텍스보다 장소가 좁아 자리 사이가 좁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회담 일정을 불과 하루 앞두고 선발대가 평양에 도착해 막판까지 북쪽 통신망이나 현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탓이다. “평양에서 안정적으로 통신망을 확보해야 영상이나 사진들이 이곳 프레스센터로 제대로 전달될 텐데, 통신망의 안정성이 막판까지 확인이 안 되는 거예요. 그나마 10여년 전 평양 회담 경험이 있는 인력들은 이미 모두 현업을 떠난 상태고요.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죠.”

식음료 부스 앞에 결제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파리바게뜨 제공
식음료 부스 앞에 결제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파리바게뜨 제공
프레스센터에서 가장 붐비는 곳 가운데 하나는 파리바게뜨 부스다. 프레스센터 안에서 유일하게 식음료를 판매하는 곳이다. 파리바게뜨 부스도 프레스센터와 마찬가지로 24시간 운용된다. 지난 4월에 이어 이번 정상회담 부스에서 일하는 손도희(38)씨는 주문 물량을 추리고 전반적인 운영 계획을 짜는 일을 한다.

파리바게뜨 부스는 운영을 시작한 지난 17일부터 19일 오전까지만 1500여명이 이용할 정도로 정신없이 바쁜 곳이다. 손씨는 “오전에만 커피가 300잔 정도 나가기 때문에 확실히 바쁘고 정신없긴 한데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어요. 역사적인 순간을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경험은 어디서 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라며 웃었다.

10여명의 청소노동자들은 새벽 5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오후 1시부터 밤 9시까지 2교대로 근무하며 프레스센터의 청결도를 유지하고 있다. 900여석이 있는 프레스석, 인터뷰룸, 식음료 부스 등 모든 공간에서 나오는 쓰레기와 오물을 정리하는게 이들의 역할이다.

프레스센터 청소업체 담당자 이영재(36)씨는 “국무총리, 홍보수석 등 고위 관료는 물론이고 외신기자들도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에 다른 행사보다 위생에 철저히 신경 쓴다”며 “새벽 일찍부터 나와 힘들지만 깨끗한 프레스센터를 보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이씨는 ‘덕분에 쓰레기 관련 민원없이 행사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행사 주최 쪽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며 뿌듯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프레스센터 한구석에 자리잡은 청소노동자들의 쉼터. 청소도구와 쓰레기봉투 옆으로 눕거나 앉아서 쉬기 위한 종이상자가 놓여있다. 권지담 기자
프레스센터 한구석에 자리잡은 청소노동자들의 쉼터. 청소도구와 쓰레기봉투 옆으로 눕거나 앉아서 쉬기 위한 종이상자가 놓여있다. 권지담 기자
깔끔한 행사장 방송 카메라 뒤쪽 2평(6.6㎡) 남짓한 공간에는 프레스센터 청소노동자들의 쉼터가 마련돼 있었다. 청소용구가 놓여있는 한켠에 깔려있는 종이박스가 이들의 휴식 공간이었다. 청소노동자 이아무개(48)씨는 “휴식 공간이 열악하긴 하지만, 이런 공간 자체가 아예 없는 행사장도 많다”며 “찬바닥에 종이박스 위지만 잠깐이나마 누울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보다 좀 있다가 문재인 대통령도 오실지 모른다는데 너무 영광스럽다”며 “깨끗한 프레스센터를 보면 100점을 맞은 기분”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임재우 권지담 기자 abbado@hani.co.kr

[화보]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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