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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유치원 전수감사·명단공개, 전남·울산은 어떻게 해냈나

등록 2018-10-27 09:27수정 2018-10-27 09:49

[토요판] 뉴스분석 왜
지역간 편차 큰 유치원 감사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사태 뒤
교육당국 대책, 전수감사·실명공개?
전남·울산 진작부터 전수·실명 감사

2014년 전남은 사립유치원 전수감사
서울은 단 한 곳도 감사 나가지 않아
심각한 ‘지역 편차’ 교육부는 알았나

국무조정실도 비공개한 유치원 명단
알고보니 아무런 법적 근거 없어
“다른 지역이 감사 원칙 안 지킨 것”
▶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사태’ 이후 교육부가 앞으로 사립 유치원 감사를 강화하고 감사 결과를 실명 공개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법과 원칙에 따라 이미 사립 유치원을 전수 감사하고 비리가 적발된 경우 감사 보고서를 실명으로 공개해온 지역이 있다. 사립 유치원 감사의 ‘지역간 편차’를 들여다봤다.

지난 25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치원 공공성 강화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지난 25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치원 공공성 강화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지난 11일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사태’ 이후, 2주째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교육당국의 대책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18일 전국 시·도교육청 부교육감들을 모아 회의를 한 뒤 앞으로 사립 유치원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하고 전수감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그리하여 25일부터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지난 2013년부터 현재까지 비리를 적발했던 사립 유치원의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홈페이지에 공개하게 됐다.

이렇게 공개하고 감사하면 되는데 그동안은 왜 안 됐을까. 감사 인력이 부족하다거나, 사립 유치원 원장들의 반발이 커 전수감사와 실명 공개가 어려웠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도대체 사립 유치원 감사는 그동안 얼마나 주먹구구 식으로 이뤄진 것일까. 이번에 공개된 17개 시·도 교육청의 감사 내용을 자세히 살폈다. 그 결과, 이상한 ‘지역간 편차’가 드러났다. 1년에 한 곳도 감사를 하지 않거나 비리 적발 유치원의 실명을 꽁꽁 감춘 교육청이 있는 반면,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사립 유치원에 대해 ‘전수 감사’는 물론 ‘비리 적발 때 실명 공개’까지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잘한 게 아니라 원칙 지켰을 뿐”

교육부의 대책이 무색하게도 ‘사립 유치원 전수감사·실명공개’ 작업을 이미 해온 지역들은 전라남도·울산시·세종시 세 지역이다. 때문에 전남교육청, 울산교육청, 세종교육청 세 곳은 이번 교육부의 대책 발표와 상관 없이 앞으로도 ‘해오던 대로’ 전수 감사와 감사 결과 공개를 하면 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교육지원청 홈페이지에 공개해오던 유치원 감사 결과를 상급 기관인 시·도 교육청 홈페이지에도 올린다는 정도다.

지역 안에 사립 유치원이 3곳 뿐인 세종시는 논외로 하더라도 전남과 울산 지역에는 사립 유치원만 100개가 넘는다.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했다고 아우성인, 때문에 뒤늦게 교육부가 나서 ‘비장하게’ 향후 대책이라고 발표한 ‘사립 유치원 전수 감사·감사 결과 실명 공개’가 전남·울산에서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특별한 ‘비법’이 있나 해서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모두 “법률에 따라, 원칙에 따라 감사를 한다면 사립 유치원도 전수 감사, 실명 공개가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이들 교육청은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감사 대상인 사립 유치원을 상대로 정기적인 종합감사를 해왔고, 문제가 적발된 곳에 대해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법률을 지켰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지역이 원칙을 따르지 않은 것이어서 우리가 뭘 잘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동안 전수 감사·실명 공개를 해온 교육청들의 답변이었다.

전남교육청 관할에는 117개, 울산교육청에는 115개의 사립 유치원이 있다. 우선 전남 지역에는 순천·목포·광양·여수 등 22개의 교육지원청이 있다. 전남교육청은 2014년도부터 유치원 감사 업무를 교육지원청으로 넘겼다. 전남 지역 교육지원청들은 2015년 29개, 2016년 39개, 2017년 28개, 올해 27개의 사립 유치원에 대해 감사를 실시했다. 사립 유치원에 대해서도 초·중·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3년 주기 종합감사를 적용해 전수 감사에 착수한 것이다.

전남교육청이 교육지원청으로 유치원 감사 업무를 넘기면서 교육지원청별로 감사 인력도 1~3명 정도씩 보강했다. 전남교육청 감사 인력이 교육지원청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현재 전남 지역에서는 교육지원청별로 유·초·중학교 감사 인력을 3~5명 수준으로 운용하고 있다. 전남 지역 역시 초·중·고교 감사에 유치원 감사까지 더하면 감사 인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2016년에는 감사 인력 부족과 학교 수 증가로 인해 순천, 목포 지역의 교육지원청만 유치원 감사 주기를 3년에서 4년으로 늘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치원 전수 감사의 원칙을 바꾼 적은 없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사립 유치원 감사를 제대로 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됐다. 순천교육지원청은 재무, 행정, 급식 등 각 분야 전문가들 8명으로 테스크포스(TF)팀을 꾸려 1년 동안 사립 유치원 감사를 지원하기 위해 연구를 벌였다. 지난 5월 순천교육지원청은 감사 지적 사례과 관련 법규를 모아 <사립유치원 행정 및 감사 길라잡이>를 자체 제작해 전남 지역 유치원 감사 담당자들과 공유하기도 했다.

전남교육청과 지역 교육지원청 감사 업무 담당자들 사이의 소통도 꾸준했다. 전남교육청 감사총괄팀 안정임 주무관은 “감사를 더 잘하려면 새로운 감사 방법도 공부해야 하고, 행정 업무가 미숙한 사립 유치원 운영자들도 교육해야 하니 감사 업무 담당자끼리 자주 교류한다”며 “교육청과 22개 교육지원청 감사 담당자들이 감사 현황을 챙기거나 궁금한 것이 있을 때면 즉각 문자메시지로도 소통하는 등 다들 ‘적극행정’의 자세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비리유치원 명단 공개 사태 이후 ‘정치하는엄마들’이 서울 시청역 앞에서 첫 거리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치하는엄마들’은 사립유치원 감사를 게을리하고 비리 유치원 실명을 감춰온 교육당국을 가장 먼저 규탄했다. 정치하는엄마들 제공
지난 20일 비리유치원 명단 공개 사태 이후 ‘정치하는엄마들’이 서울 시청역 앞에서 첫 거리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치하는엄마들’은 사립유치원 감사를 게을리하고 비리 유치원 실명을 감춰온 교육당국을 가장 먼저 규탄했다. 정치하는엄마들 제공
서울은 2014년 0개, 2016년 5개 감사

‘실명 공개 원칙’은 2013년에 마련했다. 전남교육청은 사립 유치원 감사권을 교육지원청으로 내리기 직전인 2013년 12월31일 유치원 감사 결과 공개에 대한 기준을 공식적으로 만들었다. ‘감사 결과는 원칙적으로 공개한다’는 짤막하지만 강력한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 제26조를 근거로 감사보고서 전문의 투명한 공개 방침을 못박은 것이다. 안 주무관은 “기준이 마련된 것은 2013년이지만 우리 교육청은 이미 그 전부터 홈페이지에 사립 유치원 감사 결과를 초·중·고등학교 감사 결과와 똑같이 올려왔다”고 말했다. 법률에 근거한 기준이 있기에 일선 교육지원청들도 고민없이 홈페이지에 비리 적발 유치원의 실명을 포함한 감사보고서를 공개할 수 있었다.

울산교육청도 맥락은 비슷하다. 울산 지역에는 교육지원청이 두 곳 뿐이고, 유치원 감사는 교육지원청이 아닌 울산교육청이 직접 담당한다는 점이 전남과 다르다. 울산교육청은 2014년부터 115개 사립 유치원을 4년 단위로 전수 감사하고 있다. 울산교육청이 사립 유치원에 대한 감사를 4년 주기로 하게 된 것 역시 인력 문제였지만 전수 감사의 원칙을 꺾진 않았다. 울산교육청 관계자는 “사립유치원이 교육 기관으로서 형태가 덜 갖춰진 상태에서 종합적인 감사를 하자니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감사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전남교육청과 울산교육청에서 ‘사립 유치원 전수 감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감사 결과 비리가 적발된 기관의 감사보고서를 실명으로 공개하는 문제도 두 지역에서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난해 2월 55개 사립 유치원을 상대로 특정 감사를 벌여 그 중 54개 유치원의 비리를 적발해 놓고도 유치원 실명을 숨긴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의 행동이 납득되지 않는 이유다. 국무조정실은 이 부분을 이상히 여긴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비리 유치원 이름을 공개 하지 않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에 나서자 그제서야 “비리 적발 유치원은 실명을 공개하는 것이 맞는데 착오가 있었다”며 명단을 건넸다.

지난 7월5일 전국 시·도교육청들은 회의를 열어 ‘감사 결과 실명 공개’와 관련해 법률 자문을 받았다. 비리 적발 유치원의 이름을 공개하라는 ‘정치하는엄마들’의 정보공개 청구가 이어지고 행정소송까지 시작된 상황이었다. 이 회의에서 교육청의 유치원 합동점검 관련 업무담당자들이 서울고등지방검찰청 송무과와 정부법무공단의 법률자문을 받은 결과 유치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그동안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들며 비리 유치원의 이름을 숨겨운 국무조정실, 교육부, 교육청들이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전남과 울산 지역에서는 전수 종합감사와 그 결과의 실명 공개에 사립 유치원 원장들의 공개적 저항도 없었다. 전남교육청, 순천교육지원청, 울산교육청 감사 담당자들에게 모두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원칙대로 일처리를 한 것이기 때문에 감사에서 지적을 받은 유치원의 실명을 공개한다는 이유로 유치원 관계자에게 항의를 받거나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전남교육청과 울산교육청은 이번 사태 이후 유치원 감사 주기를 3년으로 줄이고 특정 감사도 추가하는 등 감사를 더 확충할 계획이다.

서울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차이는 뚜렷해진다. 무려 650개(2018년4월 기준)의 사립유치원이 몰려있는 서울 지역에서는 2014년 단 한 곳의 유치원도 감사를 받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이 산하 교육지원청으로 유치원 감사 권한을 내려보낸 2015년에도 11개 교육지원청들은 단 한 곳의 사립 유치원에도 감사를 나가지 않았다. 2015년 서울시교육청이 직접 ‘사립유치원 특정감사’에 나서 12개 유치원을 돌아봤고 12개 유치원 모두에서 비리를 적발했지만 감사를 확대하지도, 유치원 실명을 공개하지도 않았다. 서울에선 2016년에도 5개, 2017년 20개 사립 유치원만 감사를 받았다. 2014~2017년 감사를 받은 서울 사립 유치원 중 2곳을 제외한 모든 유치원에서 비리가 적발됐지만 어느 하나도 실명이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는 이같은 ‘지역간 편차’를 알고 있었을까. 비리 유치원 실명 공개 사태가 발생한 뒤인 18일 교육부의 보도자료를 보면 이런 편차를 의식한 대목이 나온다. 전국 시·도교육청과 함께 사립유치원 감사 대책을 마련했다는 18일 교육부 보도자료에는 “정기적인 시·도 감사관 협의를 통해 감사 운영 기간 및 방법 등을 공유, 시도별 감사 운영의 편차를 줄이겠다”고 적혀 있다. 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교육부가 유치원 감사에 이토록 큰 지역별 편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도 있다.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 관계자는 “그동안 유치원 감사가 시·도 교육청의 업무이다보니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알지 못했고 감사보고서도 받아보지 않았다”며 “우리는 유아교육 관련해 정책만 만든다”고 말했다.

지역별 격차, 조정과 기준 마련 시급

교육당국이 현장을 살피지 않는 사이, 유아 교육 현장 감시는 제각각이었다. 한 해 2조원 가까운 예산이 사립 유치원에 지원금 명목으로 흘러들어가지만 감사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유치원이 수두룩 했다. 사립 유치원을 제대로 감사하지 않고, 비리 적발 유치원의 이름을 숨겨준 교육당국 때문에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를 위해 노력한 이들은 먼 길을 돌아와야 했다.

지난 11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정감사에서 ‘비리 적발 유치원 명단’을 공개하는 날까지도 의원실로 명단을 보내지 않은 교육지원청이 여럿이었다. 1년여 전부터 비리 적발 유치원 명단 공개를 요구해온 ‘정치하는엄마들’도 국무조정실뿐 아니라 100여개 교육지원청을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했으나 반복적으로 거부당했다. ‘정치하는엄마들’ 남궁수진 활동가는 “‘교육자치’라는 말이 좋기는 한데 유치원 감사를 하는 방식부터 비리 내용을 어느 정도 상세히 밝히는지 여부까지 지역마다 너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앞으로 유치원 감사를 제대로 해나가기 위해서는 이런 지역별 격차에 대한 조정과 감사 기준 확립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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