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성폭력은 교사-학생 간 수직적 위계관계 때문”
‘스쿨미투’ 뒤 학교·가해자 2차 가해 경험담 쏟아져
3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전국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등 34개 단체의 공동주최로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스쿨미투 1차 집회가 열리고 있다.
학생의 날을 맞아 중·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성폭력을 규탄하는 ‘스쿨미투’ 참가자들의 첫 도심 집회가 열렸다.
전국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등 34개 단체는 3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는 제목의 집회를 열어 ‘스쿨미투’ 뒤 교내 성폭력을 은폐하기 바쁜 학교현장을 비판하고, 교육당국의 학교 성폭력 전수조사와 가해자 처벌 강화 등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이날 발표한 선언문에서 “스쿨미투가 고발한 것은 ‘일부 교사의 비상식적 만행’이 아니라 성폭력이 만연한 학교 현장”이었다며 “그렇기에 학내 성폭력 고발은 가해교사 몇 명을 징계하는 것으로 마무리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교사가 생활기록부, 추천서 등 학생의 진로를 좌지우지할 권력을 갖고 있고 교사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교칙을 학생이 지켜야 하는 수직적인 위계관계 속에선 학생이 교사의 부당한 행위를 거부하거나 고발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며 “학생인권법 제정과 사립학교법 개정을 통해 평등하고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집회에선 ‘스쿨미투’에 참여한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겪은 성폭력 피해와 이를 고발한 뒤 학교와 교육당국으로부터 겪은 2차 가해 경험담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3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전국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등 34개 단체의 공동주최로 열린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스쿨미투 1차 집회 참가자들이 자유게시판에 쓴 학교 성폭력 사례.
지난 4월 20여년 전 자신을 성폭행한 서울의 한 사립초등학교 테니스 코치를 교육부에 신고한 ㄱ씨는 발언에 나서 “20년 전 테니스 대회를 앞두고 ‘학교 명예를 위해 열심히 싸워달라’고 말하기 바빴던 학교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에 6개월 넘게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충분한 징계심의 없이 가해자의 사표를 수리했다”며 “이런 범죄가 지금 바뀌지 않는다면 10년, 20년 뒤에도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피해는 그대로일 것”이라고 호소했다.
ㅅ고등학교 성폭력 공론화 계정을 운영하는 졸업생 ㄴ씨도 대독을 통해 “학교에 다닐 당시 가해교사들로부터 성적 수치심이 드는 발언을 셀 수 없이 들었지만, 이를 문제 삼으면 취업과 대학진학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학교 밖에서야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며 “우리가 성폭력을 참고 견뎠기 때문에 후배들은 더한 상황에 놓이게 됐지만, ‘스쿨미투’ 이후 학교로부터 돌아온 건 ‘뭘 그렇게 예민해?’라는 반응이었다”라고 교내 성폭력 예방과 근절에 여전히 둔감한 학교 관계자들을 비판했다.
이들은 △학내 구성원 모두에게 정기적인 페미니즘 교육을 시행하라 △학생들이 안심하고 말할 수 있도록, 2차 가해 중단하라 △학내 성폭력에 대한 전국적인 실태조사를 이행하고, 규제와 처벌을 강화하라 △학생들을 성별 이분법에 따라 구분하고 차별하지 말라 △사립학교법 개정, 학생인권법 제정을 통해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어라 등 5대 요구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주최 쪽 추산 3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친구야 울지마라 우리가 끝까지 함께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파이낸스센터를 출발해 서울시교육청까지 행진했다.
스쿨미투 2차 집회는 오는 18일 대구 동성로에서 열릴 예정이다.
글·사진 선담은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