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검사로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폭력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서 법적으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와 국가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서 검사는 “검찰 조직 안팎으로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지만, 성폭력 피해자로서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 피해자에 주어진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6일 서지현 검사와 서 검사를 대리하는 서기호 변호사는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관에서 민사소송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설명했다.
■ “피해자로서의 주어진 권리 적극 행사할 것”
서 검사는 지난 2일 안태근 전 검사장과 국가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서 검사는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기 위해서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 검사는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민사소송 진행하길 꺼린다. ‘결국 돈 받아내려는 것 아니냐’, ‘꽃뱀 아니냐’는 말을 듣는다”며 “민사소송은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다. 이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서 검사는 “인사보복·성폭력 피해자임에도 형사 소송 절차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고도 했다. 안 전 검사장은 2015년 검사 인사 때 검찰국장의 권한을 남용해 강제추행 문제를 제기한 서 검사를 통영지청에 전보시키는 인사안을 작성시킨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로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 서 검사는 “인사보복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증거기록 등 재판 과정에 대한 기록을 전혀 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안 전 검사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가고 나서야 관련 기록 일부를 살펴볼 수 있었다는 게 서 검사의 설명이다. 형법상 직권남용 혐의는 국가적 법익을 침해한 죄로 분류돼있기 때문이다.
서 검사를 대리하는 서기호 변호사는 “실제 직권남용의 피해자는 서지현 검사이지만, 검찰은 피해자는 국가이지, 서지현 검사가 아니라고 한다”며 “형사 소송 절차에서 피해자의 권리가 상당 부분 제한돼 있다”고 지적했다. 서 검사측은 ‘인사보복’ 피해자로서 재판 기록의 열람·복사, 피해자의 의견진술권 등을 적극 행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준 의혹을 받고 있는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5월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각종 음해 시달려… 정치 생각도 없어”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성폭력 피해자는 왜 가만히 있어야 할까. 피해자들은 왜 ‘평소 행실에 문제가 있었다’, ‘꽃뱀이다’ 이런 말을 들으며 손가락질을 당해야 하는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입 열면 또 ‘음모가 있다, 사주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말투와 행동이 정말 피해자다운지 아닌지도 평가받아요. 도대체, 왜 성폭력 피해자들이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합니까.”
서 검사는 지난 1월 성추행 피해를 폭로한 뒤 각종 2차 가해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조직 안팎으로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 등 평소 행실과 능력을 문제 삼는 뜬소문에 시달렸다. 무대응으로 일관하니 소문이 사실인 양 확대됐다. ‘자유한국당 출마한다더라’, ‘민주당으로 나온다더라’는 출마설까지 돌았다.
서 검사는 “검찰 내부에서 ‘쟤 좋은 자리 가려고 저런다’는 이야기도 떠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내부 고발하는 사람이 좋은 자리 가는 것 봤느냐”고 반문하면서 “저는 (피해 사실을 폭로하면서) 검찰을 그만두려고 했다. 후배들은 이런 환경에서 일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는 제가 도움이 좀 되지 않을까 해서 앉아 있는 것”이라며 “인터뷰하니 적극적인 줄 아시는데, 수줍음도 많고 낯도 많이 가린다. 정치는 안 한다”고 출마설도 일축했다.
■ “법원 개혁만 문제 아니다… 검찰 개혁도 필요”
서 검사측은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 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안 전 검사장의 직권남용 형사 재판에서 안 전 검사장의 변호를 맡은 유해용 변호사(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도 언급했다. 유 변호사는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재직 당시 법원을 떠나기 전 재판연구관 보고서와 판결문 초고 등 수만 건을 갖고 나갔다가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르자 이를 모두 파기했다.
서 검사는 “제 사건을 수사하면서 법무부 검찰국의 한 검사가 검찰 인사기록카드를 갖고 나간 사실이 드러나 처벌해달라고 조사단에 의뢰했지만 그 검사는 조차조차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똑같은 일을 했는데 검사는 주의만 받고 판사는 구속영장을 청구한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 검사는 “검찰 개혁은 가만히 있다고 해서 저절로 되지 않는다. 누군가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개혁은 진행될 수 없다. 검찰을 망신주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개혁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법원만 개혁해야 할 게 아니
”라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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