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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심 돌입한 안희정 성폭력 사건… 쟁점은 ‘위력·진술 신빙성’

등록 2018-11-29 09:59수정 2018-11-29 19:56

[‘위력 성폭력’ 혐의 안희정 전 지사 2심]
“위력의 존재와 행사는 ‘수단-행위’일뿐, ‘원인-결과’ 아냐”
“‘합의 관계 아니었다’ 안 전 지사 진술 등 살펴봐야”
“‘피해자다움’ 갇히지 않는 판단 필요” 목소리도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8월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를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8월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를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29일 업무상 위력 등에 추행·피감독자간음 등의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한 2심 판단이 본격 시작되는 가운데, 재판부 판단 변화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8부(재판장 홍동기)는 29일 오후3시30분 안 전 지사에 대한 첫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연다. 공판준비기일은 심리가 시작되기 전, 양쪽 주장의 주요 쟁점과 입증 계획 등을 정리하는 자리다. 쟁점은 △위력의 존재와 행사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다. 해당 쟁점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2심 판단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 “위력의 존재와 행사는 구분” vs “위력의 존재가 곧 행사”

“존재만 하는 위력은 없다.” 지난달 21일 안희정 성폭력 대책위원회는 2심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주장했다.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에서 위력이란 피해자의 자유 의사를 제압하는 유·무형적인 힘을 뜻한다. 폭행·협박 뿐 아니라 사회·경제·정치적 지위나 권세 또한 해당된다. 1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갖는 위력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이를 ‘행사’하지는 않았다고 봤다. 위력의 존재와 행사를 구분해서 판단한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회는 23일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위력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언급 등 별도의 위력 행사 행위가 없더라도, 지위와 권세를 가진 사람이 상대의 의사를 무시하고 추행·간음을 한다면 그것이 곧 ‘위력을 이용한 추행 또는 간음’에 해당된다”고 짚었다. 위력과 성폭력 행위는 ‘수단-행위’의 관계일 뿐 ‘원인-결과’의 관계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피해자를 대리하는 정혜선 변호사 또한 “피고인의 막강한 권력·피해자와의 지위 차이·폐쇄적인 조직 분위기 등이 ‘위력’에 의한 범죄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이지만 1심 재판부는 이를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성인을 상대로 한 위력에 의한 성폭력 판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2심 재판부가 주요한 선례를 남길지 주목된다.

지난 8월18일 제5차 성차별 성폭력 끝장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규탄하며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을 출발해 행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 8월18일 제5차 성차별 성폭력 끝장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규탄하며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을 출발해 행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만… 피고인 진술은?

1심 검찰 공소사실 따르면, 안 전 지사는 올해 2월 마포 오피스텔에서 “미투를 보며 그때 내가 너한테 했던 것들이 상처가 된 걸 알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안 전 지사는 김지은씨가 방송을 통해 피해를 폭로하고 난 뒤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다”라는 입장 또한 페북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이와 같은 다소 모순된 행동에 대한 판단을 판결문에 밝히지 않았다.

성폭력 사건은 대부분 폐쇄된 공간에서 피해자·가해자만 존재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폐회로텔레비전(CCTV) 등이 없으면 성폭력을 증명할 물리적인 증거도 찾기 어렵다. 민변 여성인권위는 “성폭력 범죄의 특성에 비춰볼 때,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피고인의 진술 아니면 피해자의 진술 둘 중 하나에 있을 가능성이 커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뿐만 아니라 피고인 진술의 신빙성 역시 중요한 비중을 두고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초기 어떤 대응을 했는지 면밀히 살펴보는 게 보통이다. 지난 2016년 한 방송 프로그램 제작 회사의 상사가 부하 직원을 추행한 사건(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을 심리한 재판부는 피고인이 사건 발생 당일 피해자에 보낸 메시지(“○○아, 죽을 죄를 졌다. 무릎꿇고 사죄할 기회를 주라”)도 살펴봤다. 피고인은 ‘피해자를 안정시킬 목적이었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 주장대로라면, 피해자에 항의·반박하는 메시지를 보냈어야 한다. 범행을 인정하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낸 피고인의 주장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차혜령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사건 직후 가해지목자가 처음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사건에 대해 즉각적으로 내놓은 반응이 진실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1심에선 안 전 지사에 대한 피고인 신문이 진행되지 않은 만큼,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따져보기 위해 피고인 신문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제5차 성차별 성폭력 끝장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지난 8월 18일 오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규탄하며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을 출발해 행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제5차 성차별 성폭력 끝장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지난 8월 18일 오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규탄하며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을 출발해 행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직장 내 성폭력 특성 이해하는 ‘성인지 감수성’ 판결 나올까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을 심리할 때는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지난 4월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은 학생들을 상대로 성희롱 발언을 한 교수가 해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취지 판결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성범죄 사건에서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두려움 등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 피해자 입장을 기준으로 사건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6년 한 체육관 대표가 소속 직원을 성폭행한 사건(피감독자간음 혐의)을 심리한 재판부는 가해자에 징역 3년6월·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80시간을 명령했다. 피해자가 상당기간 피해사실을 감췄고, 범행 후에도 피고인 요구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피해사실을 부인하는 사실확인서까지 작성했지만 재판부는 종합적 상황을 고려해 “피해자가 스스로 고통을 참고 감내하는 것에 대해 익숙한 성격인 데다가, 피고인과 부모의 금전관계, 타인에 알려질 경우 수치심, 자신이 무고로 몰릴 수도 있겠다는 부담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행동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와 비교해 안 전 지사의 1심 재판부는 ‘성인지적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심은 김씨의 거절·저항 행위, 텔레그램 메시지 등을 근거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했다. 민변 여성인권위는 “피해자의 합리적인 대응방식을 재판부가 인정하는 특정 행위만으로 한정한 뒤 그와 같이 행동하지 않은 피해자를 의심했다”고 짚었다. 박수진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또한 “1심은 ‘원치 않는 성관계였다면 이렇게 했어야 했다, 하지만 행동하고 진술한 걸 보니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피해자스러움’을 기준으로 신빙성이 없다고 본 것”고 지적했다. 김씨의 사건은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인 만큼,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결정하기 전까지 피해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이에 대한 1심 재판부의 이해도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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