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전 지사 “내 힘 갖고 인권 빼앗지 않아”
피해자 “위력에 인한 착취 더는 없도록”
내달 1일 선고 예정… 2심 ‘속전속결' 진행
최근 ‘위력 성폭력' 유죄 판결 잇따라 주목
지난해 7월27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자신의 결심공판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서부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자신의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안희정(54) 전 충남도지사의 항소심 선고가 두달여 만인 다음 달 1일 속전속결로 이뤄진다.
9일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홍동기)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안 전 지사에 대해 1심과 같이 징역 4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 사건은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로, 지위와 권세를 이용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면 처벌을 받는 것이 법 앞의 평등”이라고 강조했다.
안 전 지사는 이어진 최후진술에서 “도덕적, 정치적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제가 경험했던 사실들은 고소인의 주장과 상반된다. 어떤 경우라도 제가 갖고 있는 힘으로 상대의 인권을 빼앗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판에서는 안 전 지사 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하기 위한 피고인 신문이 진행됐다. 앞서 1심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신문만 있었을 뿐 안 전 지사에 대한 피고인 신문은 한 번도 진행되지 않았다. 안 전 지사는 지난해 2월 성폭행 사실이 폭로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렸다가, 1심 재판이 시작되자 ‘합의에 따른 성관계’였다고 입장을 바꾸는 등 모순된 태도를 보여왔다.
피해자 김지은씨 또한 피해자 변호인의 입을 빌려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김씨는 “성실히 살아왔던 인생이 재판 중 가해자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 사용됐다. 살아가기 위해 들인 성실함은 피해자다움과 배치되는 모습으로 평가받았다”고 말했다. 수행비서의 업무인 숙소 예약은 성관계를 원해 한 ‘셀프 호텔 예약’으로 둔갑했고, 안 전 지사가 갑자기 일정을 취소하고 통역인 부부와 함께 간 레스토랑은 ‘단둘이 간 와인바’로 포장됐다는 것이다. 김씨는 “아무리 힘센 권력자라도 자신이 가진 위력으로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해 8월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선고 공판이 다음 달 1일로 예정된 가운데,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다른 판단을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최근 비슷한 사건에서 유죄 판결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도지사라는 지위에 따른 업무상 위력이 존재한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 위력이 피해자에게 행사되지는 않았다는 ‘기계적 구분’을 통해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달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는 부하 직원을 추행해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가해자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직속 상사의 지위를 내세워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피해자를 불러냈고 위력으로 간음했다. ‘위력을 행사하지 않아 위력이 없었다’는 가해자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밝혔다.
같은 달 수원지법도 집무실에서 부하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던 조기흥 전 평택대 명예총장의 항소를 기각했다. 조 전 총장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지 않아 업무상 위력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세력이 미치는 영역과 상황에서 명시적 동의 없이 피해자를 추행했다. 피해자가 소극적으로 저항했더라도 이는 가해자의 세력에 눌린 것일 뿐”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