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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국가대표 ‘창살 없는 감옥’ 합숙훈련 이제 끝내자

등록 2019-01-15 07:59수정 2019-01-15 09:31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긴급 기고
10일 오후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웰컴센터 모습. 연합뉴스
10일 오후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웰컴센터 모습. 연합뉴스

“운동 그만두고 싶어?”

조재범 전 코치가 심석희 선수한테 폭력 또는 성폭력을 행사할 때마다 했다는 이 말에는 한국 스포츠의 서글픈 현실이 함축돼 있다.

조 전 코치는 심 선수에게 운동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조 전 코치가 초등학교 때부터 한국체대에 진학하기까지 심 선수를 지도해온 과정에는 한국 스포츠계의 ‘비정상적인 현실’이 모두 담겨 있다.

심석희 선수는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운동선수와 마찬가지로 쇼트트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학교 수업을 거의 받지 못했다. ‘학생선수’가 아니라 ‘선수학생’이었던 것이다. 학교와 태릉(진천)선수촌 등에서 장기간 합숙훈련을 하고, 크고 작은 대회에 출전하면서 서서히 ‘운동기계’가 되어갔다. 운동 외의 길을 선택하기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번 사건을 <아에프페>(AFP), <신화통신> 등 외국 언론이 연일 보도하면서 ‘국위선양’이라는 명목 아래 수십년간 쌓아온 스포츠 강국의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폭력을 바탕으로 쌓은 허상으로 무너졌다.

이번 사건에 직간접으로 책임이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그리고 국회는 잇따라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같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나온 대책의 재탕, 삼탕에 지나지 않는다. 썩을 대로 썩은 체육계를 정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한국 스포츠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와 국회가 다 같이 머리를 맞대 한국 스포츠의 패러다임을 바꿀 백년대계를 만들어야 한다.

“운동 그만두고 싶어?”
한마디에 참고 견뎌야 하는
한국 스포츠의 서글픈 현실

심석희 선수의 용기 헛되지 않게
스포츠 패러다임 대전환할때

①‘창살 없는 감옥’ 합숙훈련 그만
②금메달 지상주의 이젠 벗어나자
③비리 온상 ‘체육특기 입학’ 없애야
④공부하며 운동하는 문화 정착을

우선 1966년 지어진 이후 ‘창살 없는 감옥’이라 불리는 태릉(진천)선수촌을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마치 수용자처럼 일년 열두달 가둬서 훈련을 하는 시스템은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 선진국처럼 평소에는 소속팀에서 훈련을 하다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주요 대회를 앞두고 길어야 보름 정도 합숙훈련을 하도록 하고, 평소에는 일반인들에게 개방해 모든 국민이 최고의 운동기구나 시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내셔널스포츠센터를 지역민에게 어른 5달러, 어린이 3달러를 받고 개방하고 있다.

둘째, 성적(금메달)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은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지구촌 가족이 모여 한바탕 축제를 벌이는 종합 스포츠 제전일 뿐, 국력을 과시하는 장이 아니다. 따라서 1974년 국제대회 입상에 따른 포상으로 지급되기 시작한 경기력향상연구연금 같은 당근책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세계에서 운동선수들에게 특별 연금을 지급하는 나라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말 많고 탈 많은 병역특례도 마찬가지다. 그 대신 일시적인 포상금을 주거나 입대 연기 등으로 대체하면 된다.

셋째, 학원 스포츠의 고질적 병폐인 ‘체육특기자 입학제도’를 없애야 한다.

대학 스포츠계에서는 ‘대학 스포츠 감독이 되는 것은 교도소 울타리 위에 올라서는 것과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대학들이 고등학교 3학년 선수를 스카우트(진학)하는 과정에서 물밑으로 불법적인 돈거래가 오갈 가능성이 항상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운동선수들도 일반 학생들처럼 공부하면서 운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 초·중·고·대학까지 모든 선수들이 학교 수업에 빠지지 않고, 일정한 학력이 갖춰져야 운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큰 부상을 당하거나 기량이 떨어져 운동을 계속할 수 없을 때도 다른 진로를 모색할 수 있다.

일본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마친 뒤 미술, 음악, 야구, 축구 등 평소 관심있는 분야에서 활동하는 ‘방과후 학습’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체육특기자가 아니라 일반 학생으로 공부하면서 특기를 살리는 것이다. 이런 학교 클럽이 활성화돼 고시엔 고교야구대회에는 무려 해마다 4000개가 넘는 팀이 참가한다. 이 열기는 일본 프로야구 발전의 젖줄로도 이어진다.

성폭행 피해 폭로로 받을 수 있는 추가적인 피해와 또 자신만큼 큰 상처를 입을 가족을 생각해 수년간 참아오다가 용기를 낸 심석희 선수의 용기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에야말로 우리나라의 스포츠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스포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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