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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919 한겨레] 조선인 목숨이 하마보다 못하오?

등록 2019-01-30 07:43수정 2019-01-30 14:01

군소리ㅣ황실권위 능멸하려 궁 허물고 지은 창경원
민생고 외면하고 동물 순산 알리는 매일신보 가관
일제 강점기 창경원 동물 연못을 소개한 관광엽서.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일제 강점기 창경원 동물 연못을 소개한 관광엽서.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숨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광무황제(고종)의 서거로 3일 동안 음주가무를 금지한 조선총독부가 추모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동식물원이자 박물관인 창경원을 장례식인 3월까지 임시 폐원하기로 하였다. 황실의 권위를 능멸하고자 만든 창경원이 개원 10년 만에 잠시나마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창경원 동식물을 가꾸고 기르느라 조선인을 금수만도 못하게 여긴 총독부인데 서운해서 어쩌나.

정미년(1907) 광무황제의 강제 퇴위 뒤 즉위한 이왕(순종)이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하면서 창덕궁 동쪽에 위치한 창경궁에 동식물원을 짓는다는 계획이 수립되었다. “왜놈이 한국 황제를 동물원 속에 집어넣고 500년 이씨의 종사를 멸하게 한다”거나 “단군 자손이 삼천만이나 되는 것을 금수와 같이 압제한다”는 등 반대가 빗발쳤다. 하지만 “이왕이 새로운 생활에 취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문명국이라면 동식물원과 박물관이 있어야 한다”는 명목을 내세운 통감부는 무신년(1908) 4월 공사를 강행하였다. 1년6개월가량 진행된 공사에서 화려하고 웅장한 창경궁의 전각은 허물어졌고 일부는 해체돼 경매에 부쳐지기도 하였다. ‘문명국’ 일본이 벌인 문화재 파괴의 증좌인 셈이다. 국권의 상징인 왕궁을 허물고 그 위에 신문물인 박물관과 동식물원을 세워 식민지배의 발전상을 선전하기 위함이라는 걸 삼척동자도 다 아는바.

창경원 내에 있었던 경성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창경원 내에 있었던 경성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도 지난 9년여 동안 창경원을 선전하느라 부단히도 애썼다. 일제 강점 직후 3건에 불과했던 창경원 관련 기사는 임자년(1912)에 23건으로 급증한 뒤, 매년 10여건을 기록해오다 무오년(1918)에는 무려 35건에 달하게 되었다. 기사 내용으로 보면 계절 변화에 따른 창경원 소개와 동식물원 소식이 57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왕과 총독 등 관람객 관련 내용도 42건이나 됐다. 특히 정사년(1917)에는 ‘하마가 순산을 했다’(10월26일자)거나 ‘사자가 둘째 수놈을 낳았다’(12월6일)는 기사를 써댔고, 작년에는 ‘강치(물개)가 질환으로 죽었다’는 내용을 보도하는 등 <동물신보>다운 면모를 보였다. 전염병과 쌀값 폭등으로 조선인이 죽어 나가던 소식보다 금수들이 나고 죽는 게 그리 중요하더냐. 독재적 권력에 기생하는 언론의 몰골이니 이는 언제나 반복될 수 있을 터.

총칼 찬 헌병경찰이 걸핏하면 태형을 휘두르기 일쑤였고 노예의 삶만이 허락된 무단통치 시대에 창경원은 소수 특권층만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여가 문화였다. 이왕은 창경원의 식물원 온실에서 의친왕 등과 함께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 등 총독부 관리들을 초대해 오찬회를 즐겼다. 조선인들은 학정에 신음할 때 강도들과 산해진미를 드시니 참으로 맛나고 좋았겠구나 싶다. [마포 오첨지]

△참고문헌

서태정, ‘1910년대 ‘창경원’의 운영과 그 성격’(한국민족운동사연구·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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