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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919 한겨레] 독립선언 영향 준 일본의 ‘두 얼굴 민주주의’

등록 2019-02-08 15:00수정 2019-02-08 21:35

[2·8독립선언 100돌]
쌀폭동 후 만개한 ‘대정 민주주의’
보통선거권 요구, 노조 결성 나서
도쿄 유학생들 독립선언에 영향
대외적으로 제국주의 지지 모순
쌀폭동으로 불타버린 고베시의 스즈키 본점 건물. <한겨레> 자료사진
쌀폭동으로 불타버린 고베시의 스즈키 본점 건물. <한겨레> 자료사진

<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숨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동경 유학생들의 독립선언은 일본 내의 민본주의 확산과도 무관하지 않다. 무오년(1918) 일본 전역을 들끓게 했던 쌀폭동을 계기로 일본 사회는 보통선거권의 요구와 농민·노동조합 결성 등 아래로부터 변화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당시 동경 유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이러한 분위기에 노출되었다. 민본주의는 부국강병론을 신봉하는 사상적 흐름과 만나면서 ‘안으로는 민주주의, 밖으로는 제국주의’의 색채를 띠는 이중적 양태를 보였다.

작년 7월22일, 일본 도야마현 우오즈항에서 300여명의 부녀자들이 회집해 홋카이도로 가져갈 쌀 선적을 막으며 주민 판매를 호소하였다. 출동한 경찰이 이들을 곧바로 해산시켰지만 이미 소문은 주변 동리로 퍼져 군중심리를 자극하였다. 이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조선처럼 쌀값 폭등으로 쌀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년 초 일본의 쌀값은 1석에 15엔이었으나 7월 들어 30엔으로 두배나 앙등하였다. 세계전란을 계기로 공업화가 진전되면서 도시 인구가 크게 늘었는데 농업 생산력이 이에 미치지 못한데다 호황에 따른 인플레이션도 물가고를 부추겼다. 러시아혁명 파급을 막기 위한 시베리아 출병 계획이 확정되자 쌀값 상승을 노린 미곡상인들이 사재기를 벌인 점도 한 원인이었다.

조선의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 전 총리대신. <한겨레> 자료사진
조선의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 전 총리대신. <한겨레> 자료사진
8월3일, 도야마시에서 200여명의 시민들이 집회를 열어 쌀도매상과 부자들에게 쌀을 공출하지 말고 판매해달라는 탄원을 낸 사건을 기화로, 폭동은 교토와 나고야 등 대도시로 번져나갔다. 성난 군중들은 매점매석으로 쌀값을 올린 상인들과 지주들을 공격하였고, 고베에서는 유통재벌 스즈키 본점 건물이 불타기도 하였다. 탄광으로까지 번진 폭동은 9월엔 일본 전역을 뒤흔들었다.

폭동은 군대와 경찰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되었지만, 권력 교체를 불러왔다. 강경 진압 일변도였던 데라우치 마사타케(67) 총리는 사태 확산에 책임을 지고 9월21일 결국 사퇴하였다. 24일에는 데라우치의 최측근인 하세가와 요시미치(69) 조선총독도 사의를 표명하였지만 수리되지는 않았다. 27일, 민심 수습책의 일환으로 번벌(藩閥)에 속하지 않고 귀족 작위도 받지 않은 언론인 출신 하라 다카시(63) 입헌정우회(立憲政友會) 총재가 총리대신에 임명되었다. 이는 메이지유신의 개국공신으로 군국주의 최대 파벌인 조슈벌(長州閥)이 실각하고 정당세력인 정우회가 부상한 것을 의미하였다.

민중들은 나아가 보통선거권을 비롯해 원로의 폐지, 육·해군 대신 무관제 폐지, 정당내각제의 확립, 노동조합의 자유 등 더 많은 민본주의를 요구하였다. 소위 ‘다이쇼 데모크라시’(대정 민주주의)의 시대가 만개한 것이었다. 일본 유학생들은 이러한 일본 사회의 변화에 자극을 받았다. 보도 통제에 맞서 쌀폭동을 적극적으로 보도한 <아사히신문>은 정론지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만약 일본 민중이 조선 민중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안으로는 민본주의를 갈망하는 그들이지만 밖으로는 일본의 침략적 제국주의를 지지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러한 모순은 군국주의의 화신인 천황제 위에서 민주정을 구현하려는 소위 ‘임페리얼 데모크라시’(황제 민주주의)의 이중성에 기인한다.

오승훈 기자

쌀폭동 뒤 민심 수습책으로 정당세력을 대표해 총리에 오른 하라 다카시. <한겨레> 자료사진
쌀폭동 뒤 민심 수습책으로 정당세력을 대표해 총리에 오른 하라 다카시. <한겨레> 자료사진

△참고문헌

유지아, ‘1910-20년대 일본의 다이쇼 데모크라시와 제국주의의 변용’(한일관계사연구·2017)
이명원, ‘동아시아 근대와 일본의 대응’(정치와 평론·2016)
김종식, ‘1919년 일본의 조선 문제에 대한 정치과정’(한일관계사연구·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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