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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919 한겨레] 하늘도 돕는 신한청년당 독립투쟁

등록 2019-02-08 17:18수정 2019-02-08 21:59

[2·8독립선언 100돌]
여운형 블라디보스토크행 등
청년 망명객 독립진영 구심점

동경 급파된 장덕수 상해항서
이광수와 조우해 여비 조달

배편 만석에 곤란했던 김규식
여씨와 친분 중국 수행원이
흔쾌히 배표 양보해 파리행
파리강화회의의 기회를 이용하고자 국내외에서 민족의 거사를 도모하던 신한청년당 주요 인사들. 왼쪽부터 이광수, 여운형, 장덕수.
파리강화회의의 기회를 이용하고자 국내외에서 민족의 거사를 도모하던 신한청년당 주요 인사들. 왼쪽부터 이광수, 여운형, 장덕수.

<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 숨 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1919년 2월8일 동경/엄지원 기자】

암흑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나라가 망하고 종묘사직이 끊기었어도, 독립을 향한 조선 사람들의 열망은 도리어 안팎에서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동경에서 유학생들이 독립선언식을 한 것은 본지에서 대서특필하고 있거니와, 일본·미주·노서아(러시아)·중국·조선의 독립운동 진영은 모두 발 빠르게 소식을 주고받으며 움직이는 중이다. 청년 망명객들이 망라된 상해 신한청년당은 그 구심점이 되고 있다. 미주 방면의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추대되며 기대를 모았던 이승만(44) 박사가 여권 발급에 실패해 주저앉은 가운데, 신한청년당이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추대한 김규식(38)씨가 지난 1일 불란서 우편선에 올라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각 방면의 독립운동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본지 기자는 8일 동경 유학생들의 독립선언식 뒤 신전(간다)구 현장 인근에서 신한청년당 핵심 당원인 장덕수(25)씨를 조우하였다. 장씨는 1월 하순 상해를 출발해 동경에 들어왔다고 했다. 김규식씨의 파리행을 뒷받침하기 위한 파견이었다. “나뿐만이 아니오. 우리 신한청년당 동지들은 전부 각지로 흩어졌소.” 지난 1일 김규식씨는 상해에서 포르토스호를 타고 불란서로, 신한청년당의 실질적 구심점인 여운형(33)씨는 지난달 하순 무렵 노서아 블라디보스토크 방면으로 출발하였다. 국내로는 선우혁(37)씨가 평북 선천·정주 방면에, 김규식씨의 부인 김순애(30)씨가 부산·대구 방면에 각각 파견될 것이라고 한다. 김씨가 파리에 도착하더라도 조선 독립을 희구하는 ‘민족적 의사 표시’가 없다면 세계의 정상들은 김씨의 의견을 “해외 망명객의 잠꼬대”로 여길 것이 불 보듯 뻔하였으므로 민족적 호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특히 상해 독립운동 진영의 대표 격인 신규식(40)씨는 장씨를 일본으로 보내며 몇가지 주의사항을 내렸다. “일본 관헌이 이 운동의 진상을 해외에 보도하는 것을 금할 것은 명약관화하므로 귀하는 일본인을 가장하고 동경 및 경성으로 들어가 운동 정황을 상해 <중화신보> 기자인 조동호(27·신한청년당 당원)에게 통신하기 바란다. 만일 일본 관헌에 체포되더라도 당의 행동은 절대로 비밀을 엄수하라.” 이처럼 자세는 엄격하지만 호주머니는 가벼운 것이 이즈음 독립운동가의 처지다. 장씨는 “다행히 오는 길에 우연찮게 이광수 형을 마주쳐 그의 남은 여비를 털어왔다”며 웃음을 지었다. 동경 유학생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이광수(27)씨는 지난달 동경을 떠나 상해로 이 소식을 타전하러 갔는데, 부두에서 하필 조도전(와세다)대학 후배인 장씨와 맞닥뜨려 장씨의 손에 여비 25원을 내어줬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조우를 듣고 보니 조선의 독립운동에 천운이 따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규식씨가 불란서행 선박에 오르기까지 겪은 곡절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경비 마련에 신한청년당 당원이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한겨레> 1월1일치 1면)은 이미 보도하였거니와, 여권 문제 해결에 중국 신해혁명 지도자 손문(53·쑨원) 선생의 조력이 컸다는 후문이다. ‘중국인으로 위장하면 파리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김규식씨의 판단에 따라 손문 선생은 중국 귀화 한인 ‘김중문’으로 위장해 여권을 받을 수 있도록 손을 써주었다고 한다. 배편을 마련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남중국해를 지나 인도양을 건너는 배는 3~4월까지 만석이었다. 파리강화회의는 이미 1월18일 개회하였으므로 그보다 늦어지면 만사가 허사일 터였다. 그리하여 발을 구르던 찰나, 파리강화회의 중국 대표단 수행원 중 한 사람이 여운형씨와의 친분 덕에 흔쾌히 본인의 배표를 김규식씨에게 양도하였다고 한다. 국경과 민족을 넘어 핍박받던 혁명가들 간의 교감이 아니었던들 김규식씨의 파리행은 성립되기 어려웠을지 모를 일이다.

동경을 방문한 장덕수씨가 전한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는 유학생 독립선언 준비에 한층 활력을 더했다. 그는 지난 3일 한발 먼저 상해에 와 있던 조용은(32·이명 조소앙)씨와 함께 동경 유학생들을 만나 김규식씨의 파리강화회의 파견 소식을 전해주었다. 장덕수와 조용은만이 아니다. 미국 프린스톤대학 유학생 여운홍(28)씨도 최근 동경을 찾아 유학생들에게 미주 방면의 운동 소식을 전하였다고 한다. 여씨는 신한청년당 총무 여운형씨의 친동생인데, 파리강화회의에서 발언권을 얻기 위해 독립 청원서에 조선 사람 100만명의 서명을 받으러 가는 길이다. 미주 방면 대한인국민회의 안창호(41) 회장이 그의 뜻에 동의해 무려 여비 300불을 내주었다고 한다. 이렇듯 각 방면의 명망가들이 독립운동에 전폭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 동경 유학생들이 가일층 용기백배하였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참고문헌

정병준, ‘1919년, 파리로 가는 김규식’(한국독립운동사연구·2017)
이준식, ‘김규식의 파리평화회의 민족대표 활동’(신한청년당 결성 10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 자료집·2018)
이명화, <김규식의 생애와 민족운동>(독립기념관·1992)
이경남, <설산 장덕수>(동아일보사·1981)
강덕상, <여운형 평전1>(역사비평사·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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