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부장검사.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임은정’은 최근 몇년 사이 검찰 조직 안팎에서 펄펄 살아 뛰는 이름이다. 검찰 내 성추행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며 지난해 김진태 전 검찰총장 등을 고발하고, 본인의 고발인 진술조서를 복사해주지 않는다며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최근 쓴 언론 칼럼에서는 이 사건 처리 과정을 문제 삼아 문무일 검찰총장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검찰 조직에 대한 가장 신랄한 내부 비판자인 그가 지난 15일 충북 진천 법무연수원(원장 조은석 고검장) 강단에 섰다. 올해 상반기 정기인사에서 승진한 초임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2~33기)들을 상대로 ‘검찰 내 성평등’ 강의를 했다. 사법연수원 30기인 임 부장검사는 지난해 7월 검찰 인사에서 부장검사로 승진해 청주지검 충주지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임 부장검사가 법무연수원 강단에 선 것은 7년 만이다. 임 부장검사는 2012년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검찰 내부 방침과 달리 ‘무죄 구형’을 한 뒤 검찰 조직에서 이른바 ‘눈 밖에 난’ 검사가 됐다. 그 뒤 ‘검찰 외부’에서 검찰 현안에 대한 쓴소리를 이어갔고, 특별히 검찰 내 성범죄에 대한 검찰의 미온적 태도를 겨냥해 “그러면서 누구를 수사할 수 있겠느냐”며 ‘적폐청산 자격론’까지 거론하기도 했다.
내부 고발을 멈추지 않는 ‘별난 검사’가 되면서 검찰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는 하나씩 닫히기 시작했다. 임 부장검사는 2012년 이전에는 서울대·전남대 등 외부 강연은 물론 법무연수원에서도 강의를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죄 구형’ 뒤 검찰 내부 강연뿐 아니라 외부 강연 허가도 나지 않았다. 그런 임 부장검사가 7년 만에 초임 부장검사들 앞에서 성평등 강연을 한 것이다.
1시간 가까이 진행된 강연은 주로 검찰 조직 안에서 벌어진 과거 성폭력 사건을 되돌아보는 내용이었다. 임 부장검사는 2011년부터 최근까지 검사들의 성희롱·성추행 징계 사례 등을 강의자료로 준비했다. 이날 강의를 들은 초임 부장검사 60여명 중 70%가량이 남성이었다. 임 부장검사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라” “성희롱을 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눈만 찌푸리지 말고 말려달라”고 당부했다. 또 “성폭력 사실을 알면서도 덮으면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 관계자는 임 부장검사의 강의 복귀와 관련해 21일 “미투 이후 검찰 내 성평등 문제에서 임은정이라는 ‘기준’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강연 후반부는 법무연수원의 박지영(사법연수원 29기) 검사교수가 맡았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에서 형사6부장을 지낸 박 교수는 성별이 다른 부원들과 함께 일할 때 부장검사가 갖춰야 할 리더십에 대해 강연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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