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제개발협력 미투 기자회견에서 전·현직 활동가들이 공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전직 기자였던 변영건(27)씨는 2015년 12월부터 2016년 4월까지 근무했던 한 언론사의 부장급 기자로부터 여러 차례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 하지만 당시 갓 입사한 수습기자 신분이었던 변씨는 가해자에 대한 고소는 물론 문제 제기조차 할 엄두가 안 났다. 회사에 성폭력 피해를 알렸을 때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는 불이익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2년 가까이 ‘침묵’했던 변씨는 지난해 초 서지현 검사의 ‘미투’에 용기를 얻어 뒤늦게 가해자의 성폭력을 세상에 알렸다. 이에 가해자는 지난해 10월 그를 정보통신망법의 명예훼손 혐의로 ‘역고소’했지만, 변씨는 더 이상 문제제기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과거처럼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을 위해 그를 경찰에 고소했다.
변씨처럼 지난해 본격화한 ‘미투’ 운동을 계기로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행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기 위해 고소와 고발 등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6일 발표한 ‘2018 상담통계현황’을 보면, 2018년 전체 성폭력 피해자 지원 내용(중복응답 가능) 1189건 가운데 변호사 법률자문, 수사·재판 동행 등 ‘법적 지원’을 요청한 사례가 60.8%(723건)로 집계돼 전체 지원 건수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미투’ 운동이 본격화하기 이전인 2017년(전체 지원 건수 1421건) 40.2%(571건)보다 비중과 요청 건수 모두 크게 늘었다.
반면, 2017년 53.8%(764건)를 차지해 피해자 지원 내용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심리·정서지원’(전화·면접을 통한 피해자 심리상담)은 지난해 59.7%(710건)로 비중에서 2위로 밀려났다. ‘미투’ 이후 성폭력 피해가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인식 변화에 따른 것이다.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과거에 미처 성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피해 경험을 상담하는 사례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전체 성폭력 피해상담 사례를 피해 시기에 따라 분류한 결과 ‘성인시기’(20살 이상)에 겪은 피해는 76.5%, ‘청소년기’(14~19살) 11.3%, ‘어린이’(8~13살) 7% 등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상담 가운데 ‘미투’를 언급했거나 과거의 피해를 뒤늦게 인식한 ‘미투 상담’(181건) 사례에선 성인 때 겪은 피해가 59.1%에 그쳤지만, ‘청소년기’ 13.8%, ‘어린이’ 20.5% 등 10대 시절 경험한 성폭력 피해 비율이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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