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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가해자의 ‘불법촬영물’이 친밀 증거? 검찰 ‘성인지 감수성’ 논란

등록 2019-03-05 18:23수정 2019-03-08 11:22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검찰청 앞 기자회견
“사회적 위치와 상관없이 누구라도 불법촬영 피해 볼 수”
대구지검 서부지청 “동의하고 찍은 사진이라 판단”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디지털 성범죄 솜방망이 처벌을 규탄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디지털 성범죄 솜방망이 처벌을 규탄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가해자가 증거로 제출한 성폭력 피해자의 나체사진에 대해 검찰이 오히려 두 사람 사이가 친밀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며 불기소 처분을 했다. 여성단체는 불법촬영물을 증거로 사용한 검찰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을 지적하고 나섰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 편파수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6년 5월 ㄱ씨는 ㄴ씨로부터 강제로 성관계를 강요당했다고 한다. ㄴ씨가 ㄱ씨의 옷을 벗기고 나체 전신사진을 동의 없이 촬영했다고 한다. ㄱ씨가 바로 삭제를 요구했고 ㄴ씨는 ㄱ씨의 요구를 수용한다고 했다. 그런데 2016년 7월 ㄱ씨는 삭제한 줄 알았던 사진이 검찰에 증거사진으로 제출된 사실을 확인했다. ㄴ씨는 2016년 4~7월 사이 ㄱ씨에게 성적 수치감과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들을 카카오톡 메시지 등으로 보낸 혐의(통신매체이용음란)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는데,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라며 불법촬영한 ㄱ씨 나체사진을 검찰에 제출한 것이다.

ㄱ씨는 불법촬영 혐의(카메라등을이용한촬영)로 ㄴ씨를 추가로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했고 현재 대구고검에 항고한 상태이다. 통신매체이용음란 혐의에 대해서는 지난해 2월 대법원이 벌금 300만원을 확정판결했다.

검찰이 ㄴ씨의 불법촬영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은 ㄴ씨가 제출한 사진을 두 사람이 친밀한 사이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인정했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 이유로는 △서로 호감을 갖고 성관계를 한 적 있고 △ㄱ씨와 ㄴ씨 모두 나이가 많고 전문직에 종사하며 △사건이 발생한 뒤 ㄱ씨가 신고를 하지 않고 나체로 침대에 엎드려 울고 있었으며 △사진 속 이불이 흐트러지지 않아 강압적인 상황으로 보기 어려우며 △불법촬영물이라면 이렇게 쉽게 증거로 제출하지 못했을 것 등으로 알려졌다.

사건을 맡았던 대구지검 서부지청 관계자는 “수사검사, 부장검사, 차장검사 모두 사진을 봤을 때 동의하고 찍은 사진이라고 판단했다. 사진뿐 아니라 두 사람의 행적을 조사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친밀한 관계에서도 성폭력은 발생할 수 있으며 △어떤 사회적 위치의 여성도 불법촬영을 경험할 수 있으며 △성폭력 피해 상황을 피해자의 행동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며 △사진 속 이불 모양이 증거가 아니라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며 △나체사진으로 친밀한 관계였다고 입증할 수는 없다고 검찰 주장을 반박했다. 법무법인 GL의 김현아 변호사는 “여러 정황을 근거로 촬영에 동의했다고 추단할 수 없다”고 짚었다.

지난해 12월 시행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4조 개정안에 따르면 불법촬영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는다. 불법촬영물을 유포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영리를 목적으로 불법촬영물을 유포하면 7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는 “법이 개정돼 전보다 나아진 상황이지만 피해자들이 느끼기에는 여전히 처벌 수위가 낮다. 불법 포르노사이트에 동영상을 유포해도 집행유예가 나오거나 검찰에서 아예 불기소 처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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