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대 A 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는 서울대학교 재학생들과 함께 ㄱ교수 연구실 문에 포스트잇을 붙이며 항의 행동을 했다. 포스트잇에는 ‘당신은 범죄자입니다’ ‘파면 나가주세요’ 등이 적혀있다. 특위 제공.
대학원생을 성추행했다가 고발돼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ㄱ교수가 이번에는 제자와의 공동연구 논문을 베껴 자기표절을 한 뒤 이를 연구실적으로 등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ㄱ교수가 외국인 강사로부터 논문을 상납받아 국외 학회에 다녀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25일 <한겨레>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와 스페인어문학회 관계자, 서울대 교수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ㄱ교수는 2014년 한국언어학회 학술대회지에 낸 제자와의 공동연구 한국어 발표문을 스페인어로 번역한 뒤 2016년 스페인 어학잡지에 단독저자 논문으로 게재했다. ㄱ교수는 두 논문을 모두 서울대 업적관리시스템에 실적으로 입력했고, 이를 바탕으로 성과급을 받았다. 공저자가 아닌 단독저자는 성과급 평가에서 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앞서 ㄱ교수는 지난 1월6일 대학원생을 성추행했다는 미투 폭로 대자보가 서울대 학내에 붙으면서 현재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27일 ㄱ교수에 대한 2차 징계위원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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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 제자에게 “처녀는 부담되고 유부녀가 좋다”…밥 먹듯 성희롱한 서울대 교수들) 학술진흥법은 연구자가 자신의 이전 연구 결과와 동일하거나 또는 실질적으로 유사한 저작물을 출처표시 없이 게재해 연구비를 수령하거나 별도의 연구업적으로 인정받아 부당한 이익을 얻을 경우, ‘부당한 중복게재’인 연구부정행위로 본다. 스페인어문학회 ㄴ교수는 “2014년 연구는 학회 발표문으로 대학원생과 함께 중남미 원주민 언어인 ‘아이마라어’를 분석한 내용이다. 2016년 논문에서 자료와 이론적 논의가 어느 정도 보완되었으나 논의와 결론이 80∼90%가 동일하다. 이전 논문에 쓰인 기본 자료가 2016년 논문에서 사용됐지만 인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동연구의 공동저자를 고의로 배제한 것이다. 연구윤리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부당 중복게재 사례는 또 있다. ㄱ교수는 2014년 스페인 나바라 대학 학회논문집에 한 발표문을 실었는데, 이 발표문은 같은해 ㄱ교수가 고려대 학술지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에 게재한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다. 표절검사 결과, 두 연구는 87%의 유사도가 나왔다. ㄱ교수는 이 역시 중복해서 연구실적으로 보고했다. ㄴ교수는 “이는 국외 학회에 낸 발표문을 논문실적으로 중복 입력한 것이다. 역시 자기표절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대학교 A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지난 4일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특위는 피해자가 쓴 한국어 대자보를 영어, 스페인어, 핀란드어, 현대 그리스어 등 9개 외국어로 번역해 전시했다. 이정규 기자.
또한 ㄱ교수가 2014년 외국인 강사에게 논문을 상납받아 홍콩에서 열린 학회에 다녀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해당 논문은 이 외국인 강사가 아이티(IT) 기술을 활용한 어학 교습 발전 방안을 연구한 내용이다. 이 외국인 강사는 지난 3일 <한겨레>와 만나 “2014년에 ㄱ교수가 갑자기 `발표 주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계가 확실히 느껴져 논문을 써서 드렸다”며 “ㄱ교수는 국외 학회 가는 걸 좋아한다. 논문에는 공동저자라고 나오지만 ㄱ교수가 전혀 기여하지 않은 논문”이라고 말했다.
ㄱ교수는 외국인 강사로부터 상납받은 이 논문도 역시 서울대 업적관리시스템에 실적으로 등록했다. 이 외국인 강사는 “나는 대필했지만 돈은 하나도 받지 못했다. 그는 타인의 노동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거짓으로 자기 명성을 쌓았다. 학생도 속이고
대학도 속인 것”이라고 말했다. 서어서문학과 졸업생 ㄹ씨도 “외국인 강사가 재직할 때 학과 조교는 본인 입으로 자기 일도 외국인 강사에게 떠넘겼다고 자랑하듯 말했다”고 했다.
ㄱ교수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받은 성과급 총액은 2098만원이다. 서울대는 교수들의 성과급을 교육과 연구, 봉사업적 등을 평가기준으로 해서 에스(S)~이(E)등급으로 나눠 지급하는데, 연구실적 13건 가운데 자기 표절 연루 논문 2건, 상납 의혹을 받고 있는 논문 1건 등이 포함된 2014년 ㄱ교수는 에이(A)등급으로
820만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하지만 서울대는 연구실적을 감독하는 시스템이 없다. 윤의준 서울대 연구처장은 “교수 개인 양심에 따라서 연구 업적을 입력한다. 그것을 어떻게 자체적으로 검증을 할수 있나”라고 말했다. 임정묵 서울대 연구처 부처장은 “학과에서, 단과대에서, 연구처에서 세번 검증을 거치면 지나친 규제가 된다”고 말했다.
학과에서도 제대로된 검증은 없었다. 2016년도에 학과장을 맡은 서어서문학과 한 교수는 “중복게재나 단독저자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능력 밖이다. 전공 분야도 아니기에 상호신뢰가 중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에 대해 “서울대는 대학본부도 모르는 깜깜히 인센티브 규정을 용인하며 사실상 부조리를 방조했다”며 “교육부와 감사원 등 외부기관에 감사 실시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ㄱ교수는 <한겨레>에 보낸 이메일에서 “단독저자 표기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연구진실성위원회에서 관련 자료를 가지고 상세하게 소명할 예정”이라며 “아이마라어 논문과 관련하여 4번의 학회 발표가 있었고 4편의 논문이 있어서 모두 유사해 보일 수 있지만, 각 논문의 이론적 전개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중복게재나 연구실적 부풀리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외국인 강사와 나는 상당한 우정을 나누던 친구 같은 동료였다. 논문은 외국인 강사의 제안으로 공동 연구한 결과물이지, 내가 강요해 공저로 논문을 출판한 것이 전혀 아님을 밝힌다”고 덧붙였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