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따뜻했던 지난 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기운을 모아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에서 편지를 쓴다. 이 집에서 삶을 함께 나눈 식구이자 동지인 고 김복동 할머니에게 보내는 글이다. 기력이 쇠한 손에 펜을 쥐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눌러쓴 편지에는 ‘복동 언니’를 향한 그리움과 정이 함께 담겼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240명, 그중 생존자는 이제 21명으로 평균연령이 91살에 이른다. “내가 살아 있는 증거”라고 외치는 피해자들을 앞에 두고도 일본은 전쟁범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물며 피해자들이 모두 사라진 뒤에는 어찌할 것인가?
고개 숙인 채 편지쓰기에 집중하는 길원옥 할머니. 이정아 기자
27년간 이어지고 있는 ‘수요 시위’가 상징하듯이,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정의기억연대(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나 민족문제연구소 같은 여성·시민단체의 몫이었다. 피해자들을 찾아가 증언을 듣고 기록하며 공공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데도 이들의 구실이 컸다. 이 때문에 관련 기록의 많은 부분이 각 단체를 비롯한 현장에 흩어져 있었다. 이뿐 아니라 아직 찾지 못한 사료들도 확인하고 발굴해야 했다. 지난해 8월 여성가족부는 피해자 관련 자료를 한데 모으고 각종 연구사업을 지원하겠다며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를 열었다. 그러나 여성가족부가 산하 기관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1년 위탁해 운영하다 보니 연구소가 독자적으로 판단해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초대 소장을 맡았던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립성과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임명 3개월 만에 사퇴했다. 지난 1월 여가부는 연구소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관련 사업을 재정비하겠다고 밝혔지만 다음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할 일이 많을수록, 마음이 조급할수록 시간에는 가속도가 붙은 듯 느껴진다. 하루가 다르게 세월의 무게를 드러내는 생존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직 우리가 다하지 못한 책임을 생각한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을 등에 지고서 너무 먼 길을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시위를 떠난 활처럼 날아가는 저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지만, 준비하지 않은 자의 편은 아닐 것이다.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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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0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순간 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