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9개 여성단체 회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민원실 앞에서 ’고 장자연 사건’, ’김학의 전 차관 성범죄’ 수사에 항의해 기습 시위를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검찰이 최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그의 ‘스폰서’ 윤중천씨를 구속한 주요 혐의의 ‘단서’를 6년 전 수사기록에서 파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전 차관을 두 차례 무혐의 처분한 과거 검찰 수사의 부실·축소 의혹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이 사건을 맡은 검찰수사단(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은 지난 16일 김 전 차관을 1억6천여만원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한 데 이어 22일 윤씨도 강간치상 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 핵심 관계자는 27일 “(수사단이) 과거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대출받아 검토했다”며 “두 사람을 구속한 혐의는 그 기록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여기저기 분산돼 있던 것을 맞춰서 (구속이라는) 성과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수사단이 동일한 수사 내용에 ‘해석’을 새로 하고, 추가 수사를 해 내용을 보강했다는 뜻이다.
재수사를 권고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관계자도 “김 전 차관의 뇌물 혐의 공소시효를 살리는 데 중요했던 ‘제3자 뇌물’ 1억원은 윤씨가 피해자 이아무개씨를 고소한 사건에 단서가 있다. (수사)기록에 있는 내용”이라고 했다. 2013년 검찰 수사팀은 이 1억원을 둘러싼 윤씨와 이씨의 법적 분쟁을 파악했지만, 수사단과 달리 김 전 차관의 성범죄와 연관시키지는 않았다.
당시 수사팀은 김 전 차관의 오랜 스폰서로 최근 드러난 사업가 최아무개씨도 조사했으나 김 전 차관에 대한 뇌물 제공 혐의는 배제했다. 반면 이번 수사단은 최씨가 김 전 차관에게 제공한 3천만원대 금품과 접대를 뇌물로 판단했다.
윤씨의 성범죄 혐의와 관련해서도 수사단은 “이씨가 윤씨에게 심리적으로 제압된 상태였다”고 봤다. 이씨가 2006년 윤씨에게 성폭행당한 뒤 그의 요구대로 다른 남성들과 성관계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6년 전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이씨가 성폭행당한 사실을 진술하고, 2008년 정신과 진료 기록 등도 제출했지만 검찰은 상습강요 혐의에만 주목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그때 수사는 경찰이 송치한 사건과 혐의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김 전 차관과 윤씨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범죄 혐의가 소명된다”고 밝혔다. 이들이 구속된 뒤 검찰 안팎에선 2013~14년 당시 검찰의 ‘수사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같은 수사기록을 놓고 과거와 지금의 검찰이 이렇게 판이한 결론을 낸 것은 우리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당시에는 짧은 기간 동안 적은 인력이 수사하기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지금 수사단 규모의 검사가 이 사건을 수사했다면 훨씬 많은 혐의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수사단 관계자)이라는 평가도 있다.
검찰 특수통 출신 변호사는 “김 전 차관이 박근혜 정부와 ‘특별한 관계’라고 알려졌으니 당시 검찰로서는 엄청난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며 “두 사람 구속만으로는 의혹이 해소되기 어렵다. 검찰 자체 판단에 따른 소극적 수사였는지, 법무부나 청와대의 적극적인 압력이 있었는지도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했다. 검찰과거사위는 오는 29일 김 전 차관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강희철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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