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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우리 여기 있다” 외친 지 20년…올해도 무지개 ‘활짝’

등록 2019-06-01 19:54수정 2019-06-01 23:05

1일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열려
‘다양성 존중되는 평등한 사회’ 요구
퀴어퍼레이드, 처음으로 광화문광장 통과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스무번째 도약, 평등을 향한 도전!’ 참가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을 출발해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서울퀴어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스무번째 도약, 평등을 향한 도전!’ 참가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을 출발해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서울퀴어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우리가 바깥세상에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성 소수자가 있는 줄도 몰라요.”

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온 성 소수자 ‘쌩’(닉네임·43)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 최초의 성 소수자 교회 ‘로뎀나무그늘교회’의 임원이기도 한 그는 “축제가 있었기에 한국 사회에 성 소수자 존재를 드러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성 소수자들의 명절로 불리는 이 축제가 어느덧 20회를 맞았다. 올해의 주제는 ‘스무 번째 도약, 평등을 향한 도전’이다. 강명진 축제 조직위원장은 “다양성이 존중되는 평등한 사회를 이루는데 정부와 정치권이 좀 더 의지를 갖고 움직여달라는 바람을 주제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강 위원장은 “지난 20년 동안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평등한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정책 결정권을 가진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은 아직 미온적”이라고 지적했다. 2007년 첫 발의 이후 진전이 없는 차별금지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강 위원장은 “이제까지 성 소수자를 가시화하는 노력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성 소수자들이 어떻게 안전하게 살아나갈 것인가에 더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서울퀴어퍼레이드’ 출발에 앞서 열린 축하공연을 즐기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서울퀴어퍼레이드’ 출발에 앞서 열린 축하공연을 즐기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올해도 광장은 무지갯빛으로 물들었다. 무지갯빛 망토를 두르고 무지갯빛 깃발을 든 시민 15만명(주최쪽 추산)이 나와 스무살이 된 축제를 즐겼다. 지난해 6만여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참가자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이아무개(17)양과 이아무개(16)양은 각각 인천과 부산에 살면서 장거리 연애 중이다. 이들은 “10대 레즈비언 커플인 우리는 밖에서 스킨십하기도 쉽지 않은데 여기선 자유롭다”며 “광장이 주는 개방감이 좋다”고 말했다. 편견 없이 자신들을 바라봐줬으면 한다는 이들은 “학교에서 성교육하는 것처럼 성 소수자 교육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퀴어 유튜버’ 헤이든이 자신의 부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퀴어 유튜버’ 헤이든이 자신의 부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구독자 1만여명을 둔 ‘퀴어 유튜버’ 헤이든(30)은 “성 소수자들은 일상에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기 힘들다. 여기서만큼은 자기 자신을 편안하게 표현할 수 있다”며 축제의 의미를 되새겼다.

권희섭씨는 올해 세 번째로 퀴어축제에 나왔다. 그는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 성 소수자 이해를 돕는 동화책을 샀다.
권희섭씨는 올해 세 번째로 퀴어축제에 나왔다. 그는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 성 소수자 이해를 돕는 동화책을 샀다.
초보 아빠도 광장에 나왔다. 권희섭(35)씨는 태어난 지 150일 된 아이가 있다. 올해 세 번째로 축제에 참가했다는 권씨는 “만약 내 아이가 성 소수자인 경우에 어떻게 잘 교육을 할 수 있을지를 배우고 간다”고 말했다. 나중에 아이에게 읽어줄 동화책도 샀다. 개신교인이기도 한 권씨는 올해도 어김없이 일부 개신교 단체들이 광장 주변에서 ‘반동성애’ 집회를 연 것을 두고 “기독교 정신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재독 호스피스이자 성 소수자인 김인선(69)씨도 축제를 찾았다. 김씨는 독일 베를린에서 동성의 한국인 파트너와 29년째 동거 중이다. 그는 한국사회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레즈비언 할머니’로서 퀴어 이슈와 관련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에서 열리는 퀴어축제는 두 번째로 와본다는 김씨는 “젊은 열기가 팍팍 느껴져서 너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씨는 “이번이 20회라고 하길래 놀랐다. 이렇게 오랫동안 열리고 있었는지 몰랐는데 한국도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재독 호스피스이자 성 소수자인 김인선씨가 무지갯빛 십자가를 들고 있다.
재독 호스피스이자 성 소수자인 김인선씨가 무지갯빛 십자가를 들고 있다.
김씨는 이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적힌 무지갯빛 십자가를 들고 나왔다. 김씨는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외치는 광장 밖 개신교인들을 향해 “인간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개인의 삶을 정죄해선 안 된다. 그게 더 죄”라고 비판했다. 젊은 성 소수자들을 두고는 “이들이야말로 앞으로 대한민국을 책임질 사람들”이라며 “자기 인생은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자유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응원의 말을 덧붙였다.

1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 인근에서 ‘반동성애’ 집회가 열리고 있다.
1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 인근에서 ‘반동성애’ 집회가 열리고 있다.
성 소수자 단체, 인권·시민단체, 대사관, 종교기관, 기업 등은 행사 부스 74개를 꾸렸다. 부스에서는 성 소수자 관련 각종 상품을 팔거나 무지개 문양의 기념품을 나눠줬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동성 군인 사이의 성관계 등을 처벌하고 있는 ‘군형법 92조6’ 폐지 서명을 받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손 카드를 마련해 참가자들에게 혐오차별에 대한 생각과 입장을 쓰게 했다.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도 이날 광장에 부스를 마련했다.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에서 활동하는 나영정(41)씨는 “우리나라 성 소수자들에게 성 소수자 난민도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나씨는 “난민 심사 과정에서 성소수자에게 체위를 묻는 등 인권 침해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부스에서 난민법 개악 반대 서명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성 소수자를 지지하는 기독교, 불교 관련 부스도 인기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스님들이 직접 참가자들에게 오방색 끈 팔찌를 묶어줬다. 오방색은 건강과 가정의 평화, 안녕을 비는 뜻이 있다. 무지개색과도 비슷하다. 조계종의 지몽 스님은 “부처님은 남자와 여자 이전에 한 인간, 하나의 존재로 본다. 불교에서 성 소수자 차별은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을 지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을 지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오후 4시께부터 시작한 ‘퀴어 퍼레이드’였다. 퍼레이드는 서울광장을 시작으로 을지로입구역, 종각역, 광화문광장을 지나 다시 서울광장까지 약 4.5㎞를 행진했다. 퍼레이드가 광화문광장을 지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행진 차량 역시 11대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성 소수자 바이크팀인 ‘레인보우 라이더스’가 선두에 섰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차별금지법제정연대’, 성 소수자 기독교인 모임 ‘무지개 예수’ 등이 뒤를 이었다. 행진 차량이 빠져나가자 광장에 있던 시민들도 따라나섰다.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시작하자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남성이 도로에 뛰어들어 행렬을 가로막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시작하자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남성이 도로에 뛰어들어 행렬을 가로막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우려했던 큰 충돌은 없었다. 퍼레이드 초입에 한 남성이 도로로 뛰어들었다가 경찰에게 끌려나가는 등 작은 소동들이 있기도 했지만 행진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퍼레이드가 명동을 지날 때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인도에서 손을 흔들며 크게 반겼다. 퍼레이드가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대한애국당 농성 천막 인근을 지날 땐 태극기를 든 중년 남성들이 행렬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다가 경찰에 제지당했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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