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전남대 법전원 교수 ㄷ씨가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ㄱ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중 일부. ㄷ씨는 법전원 학생 ㄱ씨에게 26일 오후 7시에 공개토론회가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리고 참석을 요구했다. ㄱ씨 제공.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의 한 교수가 교내 성폭력 사건에서 학교의 미온적 대처를 짚은 <한겨레> 보도(
▶관련 기사 : 대학내 잇단 ‘학생간 성폭력’…신고해도 피해자 보호는 허술)를 두고 ‘공개토론회’를 제안하면서 피해 학생에게 참석을 요구하고 “다른 사람의 명예를 위해 진실규명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학생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2차 가해’를 한 것이란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25일 전남대 관계자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 22일 오전 10시께 전남대 법전원 교수 ㄷ씨는 교내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법전원 학생 ㄱ씨에게 “다음주 화요일 저녁 7시에 <한겨레> 기사 반박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개최한다. 장소는 추후 통보하겠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해당 토론회는 법전원 1∼2학년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열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는 지난 20일 ㄱ씨가 지난해 12월 교수들이 연 술자리에 참석했다가 술자리가 끝난 뒤 같은 과 학생 ㄴ씨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고, 지난 3월 이를 학교와 경찰에 신고했지만 학교 쪽에서 ㄱ씨와 ㄴ씨의 분리 조처를 하지 않고 징계도 유보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21일에는 전국 법전원 학생들이 낸 ‘전남대 법전원 성폭력 사건 은폐를 규탄한다’는 성명에 대해 후속 보도했다.
(▶관련 기사 : 전국 법전원 학생들 “전남대 법전원 성폭력 사건 은폐 규탄” 한목소리) 공개토론
제안은
관련 보도가 나온 뒤 ㄱ씨에게 전달된 학교 쪽의 첫 반응이었다.
ㄷ교수는 ㄱ씨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학생의 참석을 희망하니 나와서 서로 질문을 주고받아 진실을 규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바랍니다. 필요하면 ㄴ씨의 참석도 권유하겠으니 참석 의사를 밝혀주세요”라고 제안했다. ㄷ교수는 또 “본인 출석이 곤란하면 시민단체나 변호사 대리출석도 좋습니다”라면서도 ㄱ씨가 2차 가해를 우려한 것에 대해선 “언론 기사에 노출된 이상을 넘지 않고, 반론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 됩니다. 학생도 다른 사람의 명예를 위해 진실규명에 협조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요? 진실이 뭔지 말해주기 바랍니다. 물론 학생의 도움 없이도 진실규명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엔 상식이라는 게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ㄷ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학교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내가 고소 취하를 하라고 종용했는지 등 언론 보도에 대한 진실규명만 다룰 것”이라며 “학생이 어떤 추행을 당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3일 광주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서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에게 보낸 공문 중 일부. 광주여성민우회 제공.
하지만 학교 내 성폭력 사건을 두고 전례 없는 ‘공개토론’ 제안이 나오고 심지어 피해 학생에게 참석해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광주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민우회)는 23일 전남대 법전원장에게 ‘공개토론회 개최 취소를 요구한다’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성폭력 사안을 기반으로 기사화된 보도 내용에 대해 공개 토론방식으로 반박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그 자리에 피해자를 불러 피해자가 공개되게 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며 “헌법과 형사소송법 등 법적으로 보장된 피해자 권리가 법률가를 양성하는 귀 기관에서 오히려 훼손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인권정책팀장은 “‘피해자가 없이도 진실규명이 가능하다’는 말은 사건의 실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배제하겠다는 것으로, 이미 정해놓은 프레임으로 사건의 본질을 은폐하겠다는 의도이자 이에 따르지 않으면 피해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건을 공개하겠다는 위협이나 다름없다”며 “징계 절차를 지연시키고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며 피해자를 위협하는 행태는 심각한 2차 피해를 야기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고려대 인권센터 자문위원인 박찬성 변호사도 “양성평등기본법은 조사가 완결되지 않은 단계에서의 피해자 구제 과정에서도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함을 명하고 있다”고 짚었다.
ㄱ씨는 ‘스승’의 대처에 절망하고 있다. 그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문자를 받자마자 공개 처형 장면이 떠올랐다. 저를 무고로 몰아서 퇴학시키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며 “철저히 가해자에 대해서만 감정이입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