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꿈꾸는 여성 100명을 찾습니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녹색당이 진행한 ‘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에 참여해 비례대표 예비후보자로 성장한 성지수(왼쪽부터), 김혜미, 정다연, 김기홍씨가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기 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녹색당 ‘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를 통해 내년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예비후보자들에게 ‘한국 정치에서 어떤 존재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답은 명쾌했다. “평균 나이 55.5살, 83%의 남성 의원으로 구성된 국회는 너무 힙하지 않다. 우리는 완전 힙한 존재가 될 것이다.” ‘힙’(hip)과 ‘~하다’를 붙인 단어 정의는 다음과 같다. ‘고유한 개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하다.
‘대통령을 꿈꿨던 여성 100명을 찾습니다.’
지난 3월, 녹색당은 이 같은 표어를 내걸고 ‘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다. 기성 정당처럼 총선을 코앞에 앞두고 청년·여성 후보들을 ‘영입’하는 것이 아니라, 당에서 직접 정치인을 발굴하고 양성하겠다는 뜻으로 기획된 1년짜리 ‘장기’ 프로젝트다. 50대 이상 남성 국회의원이 과잉 대표하는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 여성, 소수자, 청년 대표성을 지닌 이들을 키우겠단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리더십을 쌓는 ‘인큐베이팅’, 준비된 후보자가 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액셀러레이팅’ 등 6개월의 훈련 기간을 거친 프로젝트 참가자 40명 가운데 출마에 ‘자원한’ 4명이 내년 총선에 출사표를 던졌다(녹색당은 당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선발하지 않고, 자원한 인물이 녹색당 당권자의 2% 이상 추천을 받아 비례대표 경선에 후보 등록을 한다). 각자의 영역에서 여성, 소수자 정체성을 지니고 일하다 ‘선거’라는 교집합에서 만난 정다연(29)·김기홍(36)·김혜미(25)·성지수(28) 예비후보자를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만났다.
직접 체험한 정치인이 되는 과정
―전직 기자(정다연), 전직 음악 교사(김기홍), 현재 연극연출가(성지수), 활동가(김혜미). 네 명 모두 각자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다 선거에 뛰어들었다. 녹색당의 ‘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에 참여한 계기가 궁금하다.
기홍 “더 다양한 사람들과 ‘팀을 이뤄’ 정치를 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겠다’고 발언했고, 이에 항의하는 성소수자들을 향해 지지자들이 ‘나중에’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 모습을 목격하면서 ‘논바이너리’(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자 트랜스젠더인 나 같은 퀴어 당사자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제주 도의원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이렇게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더 잘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다. 프로젝트에는 ‘여성’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라 그동안 기성 정치권에서 소외되어 있던 여성·성소수자·청년 등을 모두 아우르는 표현이어서 좋았다.”
지수 “원래 직업은 연극연출가다. 2018년 미투 이후 연극계에도 자성의 목소리가 일었고, 이후 ‘성폭력반대 연극인 행동’ ‘페미니스트 연극인 연대’ 같은 반성폭력 예술인 단체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열심히 활동을 하다보니 거리에서 집회에서 자꾸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마주치더라.(웃음) 신 위원장이 먼저 “혹시 출마 안 하실래요?” 하고 제안했다. 처음엔 무슨 소린가 싶어 손사래를 쳤지만 프로젝트 의미에 대해 자세히 듣고, 나라도 가서 머릿수를 보태야겠다는 마음에 참여했다. 그때만 해도 출마는 생각도 못 했다.”
녹색당의 ‘2020여성 출마 프로젝트’는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에 출마했던 신지예 공동운영위원장이 올 초 당에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프로그램은 실제 정치인에게 필요한 조직 운영, 선거 전략 등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채워졌고, 당내 활동가들은 ‘언론 대응의 전략’ ‘선거를 위한 실용 조직론’ 등 정치에서 쌓은 경험을 참가자들과 공유했다. 지난 8월3일 진행된 ‘쇼케이스’(발표회)에서는 국회의원 당선을 가정해 당선 소감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후보자들은 “참가자들이 직접 선거를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캠프를 꾸리고, 선거 운동을 기획하는 학습 과정을 거치면서 누구나 ‘정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혜미 “‘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의 첫 번째 활동이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여성들의 인터뷰’였는데, 그 영상을 촬영하면서 나 스스로 묻게 됐다. ‘나는 왜 대통령이 될 생각을 못 했지?’ 한국 사회에서 정치인은 마치 유권자의 소원을 들어주는 권력 가진 기득권 집단이자 사회적 아버지로 여겨진다고 느꼈다. 청년이자 여성으로서 이런 문화와 담론을 깨기 위한 정치적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꼈다.”
다연 “이 프로젝트는 신인 정치인을 키워서 배출하겠다는 분명한 목표와 구체적 커리큘럼이 있었다. 6개월의 훈련 과정이 끝나고 난 뒤에는 ‘차별·불평등/ 기후변화/ 정치개혁’ 의제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 각자 이슈 파이팅을 진행했다. 나 같은 경우 장자연 사건과 버닝썬 사태에 대한 경찰의 부실 수사를 규탄하는 시위를 진행했고, 12월 초까지는 전국을 돌며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자 토론회에 참여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활동 계획은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겠다’라고 결정한 내게 큰 도움이 됐다. 어느 순간 기자 정다연이 아니라 정치인 정다연이 됐다는 자각이 들었다. 배지를 달아본 적은 없지만 그건 감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떤 선거 전략을 취할 것인가’ ‘어떤 의제로 싸울 것인가’ 정치인처럼 생각하고 고민하는 습관이 이제 일상이 됐다.”
삶에서 정치를 만난 순간
“고등학교 3학년 때 고향에서 열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나가 자유발언을 했다. 이를 목격한 이웃집 아저씨의 고발로 엄마에게 꾸지람을 들었다.”(다연) “트랜스젠더 추모 주간이 있는 이번 11월에만 내가 알기로 자살 시도를 했던 퀴어 친구가 셋이나 된다. 당장 사람이 죽어가는데 정치에 우리 존재는 다 빠져 있다.”(기홍) “2016년 이대생들의 시위 현장을 영상으로 봤다. 아직도 당시 집회 참가자들이 불렀던 ‘다시 만난 세계’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지수) “사회복지 운동을 하면서 더 이상 가난 속에 들어와 본 적 없는 기득권자들의 거짓에 속고 싶지 않았다.”(혜미)
자신의 삶에서 정치가 필요하다고 느낀 순간이 언제인지 묻는 말에 이렇게 각양각색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들은 “삶에서 느낀 나름의 부당함이 나를 정치로 이끌었다”고 입을 모았다.
다연 “2018년부터 의료전문지 기자로 일했다. 그때 전공의 모집 과정에서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 지원자는 차별하고, 임신 금지 서약을 받는 등의 실태에 대한 기획 기사를 작성했다. 그런데 팀장의 데스킹을 거치니 인터뷰의 3분의 1이 삭제됐다. 의사 사회의 여성혐오가 심각하다고 쓴 서두도 삭제됐다. 기사가 발행되고서야 알았다. 항의하니까 ‘여성혐오는 통계적 근거가 없으니 쓸 수 없다’고 하더라. 그때 내 안에서 팽팽하게 버티던 줄이 끊긴 느낌이었다. ‘이럴 거면 기자를 왜 하지? 내가 직접 나서서 스피커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지수 “2018년부터 시작된 미투 운동이 기억난다. 처음엔 ‘연극판은 더러우니까 내가 도망가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도망만 치면 ‘윗자리에 있는 결정권자들이 진짜로 (연극계) 물을 썩게 만드는구나’ ‘그래서 실제로 사람이 죽는구나’ 그런 것들이 눈에 보였다. 정치가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 바꾸려는 사람은 별로 없구나. 이것이 정치혐오의 한 단면일 수 있겠다. ‘나 역시 그랬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젊고 잃을 것 없는 내가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혜미 “나도 비슷하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뒤 2017년부터 복지운동단체에서 일했는데, 어느 순간 사회적 소수자들과 약자들의 요구를 국회 ‘앞’에서만 외치는 것에 장벽을 느끼게 됐다. 국회 앞에서 하는 기자 없는 기자회견, 1인시위, 농성을 국회 ‘안’에서 하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출마 고민을 하던 와중에 민주당 비례대표 초선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문을 읽게 됐다. 그들을 보며 (충분한 책임감이나 자기 성찰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한국 정치가 이래서 문제다’라면서 불출마를 선언하는 건 무책임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총선 출마를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기홍 “난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이 정치였던 것 같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 대학을 다녔는데 노동조합 탄압,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대추리 진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정권에 실망한 일이 많았다. 가장 크게 실망했던 것은 교육정책이었다. 당시 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이름을 계승했는데 교육을 자원의 수단으로 보는 관점에 매우 실망했다. 2008년부터는 진보신당의 노회찬·심상정·조승수를 지지했다. 진보 정치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차별금지법 제정 활동처럼 그들의 신념과 행동이 일치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좋은 정치인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거대 양당제 중심의 정치가 아니라 소수 정당도 힘을 받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절감했다.”
청년을 ‘이용하지 말고’ ‘키워야 한다’
지난 19일 오후에 진행된 자유한국당의 ‘청년정책’ 비전 발표회에 참석한 청년들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한국당은 ‘청년’을 부르짖지만 청년이 설 자리를 당에서 마련해주는가?” “너무 많은 정책이 육아·출산에 집중돼 있다. 1인가구 청년 여성을 위한 정책이 너무 부족하다” “청년 목소리를 듣겠다면서 평일 오후 2시에 행사를 열었다. 그냥 부르면 오는 여의도 청년들, 금수저 백수 청년들만 청년으로 생각하고 행사를 기획한 것 아닌가?”
‘자유한국당’이라는 주어를 바꾸더라도 ‘혁신 경쟁’의 수단으로 청년을 이용하는 기성 정치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청년·여성 후보 공천 등 온갖 선심성 공약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청년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후보자들은 평가했다.
지수 “청년정책의 방향이 잘못됐다. 청년을 ‘일자리 찾는 (예비) 노동자’ 아니면 ‘곧 결혼할 (예비) 신혼부부’로만 간주한다. 나는 취직이나 결혼을 하려는 청년도 아니고, 청년에 여성이라는 한 겹(레이어)을 더 가진 사람이다. 더구나 나 같은 예술가나 프리랜서, 돌봄노동자는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최근에도 내가 활동하는 극단이 고용보험을 들려고 했는데, 누군가에게 고용된 형태가 아니라서 배우들은 가입할 수 없다고 하더라. 그럼 그 배우들은 노동자가 아닌가? 분명히 이 사회를 좋게 만들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인데, 너무 가난하다. 청년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불공평한 현실을 정치는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혜미 “‘청년정치’를 두고 쇼를 진짜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민주당만 봐도 그렇다. 당 안에 전국청년위원회·대학생위원회가 다 있지만 정작 총선기획단이라는 중요한 자리는 당에서 열심히 활동한 사람이 아닌 유튜브 스타에게 돌아간다. 이게 정치적 쇼가 아니면 뭘까? 녹색당에는 35살 이하의 당원으로 구성된 청년녹색당이 있는데 여기서만 4명의 후보가 비례대표 경선에 나간다. 이건 다른 정당과 가장 큰 차별점이다. 당에서 여러 위원회 전전하며 경험만 쌓는 것과, 실제로 청년들이 공직 선거에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기존의 청년 정치인 양성은 소수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이어져왔다. 정의당은 2018년부터 ‘청년 노회찬’을 키우겠다는 뜻으로 ‘진보정치 4.0 아카데미’를 운영해왔고, 청년 몫의 부대표직을 할당하고 있다. 민중당은 지난 6일 13명의 청년들이 모인 ‘청년 돌진국회로 특별위원회’를 발족해 청년 의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고, 2030 청년들을 중심으로 모인 ‘미래당’(우리미래) 역시 2017년 창당해 활동하고 있다.
예비후보자들은 청년들이 ‘좀더 쉽게’ 정치에 도전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큰 장벽은 단연 ‘돈’이다. 현행 선거법상 선거 기탁금은 적게는 200만원(자치구·시·군의원)부터 많으면 5천만원(시·도지사)에 이른다. 본격적으로 선거에 뛰어들려면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데, 자본이 없는 청년들은 도전하기 어렵다. 20대 국회의원의 평균 나이 55.5살, 평균 재산 24억이 현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녹색당은 2016년 총선 이후 출마가 확정된 후보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논의를 시작했고, 2018년 지방선거부터 이를 시행했다. 후보자들의 기탁금 역시 당에서 마련해 지원한다. 더불어민주당 총선기획단 역시 금전적 문제로 청년들의 선거 출마가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28일, 만 39살 이하 청년 도전자의 경선 비용
과 선거비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기홍 “나는 2018년 제주녹색당 당내 경선을 통해 성장했다. 당에 영입되어 함께 정책을 만들고 일하면서 성장했고, 수많은 퀴어의 지지를 받고 있다. 지금도 토론회마다 ‘녹색당에서 가장 잘한 성과는 바로 나’라고 말한다.(웃음) 성소수자를 후보자로 만들었고, 안전하게 정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후보자들을 위한 비용을 지원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면서 당과 사람이 함께 커야 한다. 다른 당도 이런 철학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
다연 “동의한다. 기존 정당들은 1박2일 캠프를 하거나, 청년 공간을 별도로 분리하거나, 기존 정치인의 밑에 들어가서 잡일부터 하면서 배우라는 식으로 신인 정치인을 만든다. 밀착해서 신인 정치인을 정성스럽게 키우려는 시도가 없다. ‘청년 대변인’이라는 직함도 웃기다. 청년 대변인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그냥 대변인 자리를 청년이 맡으면 될 일 아닌가? 청년,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게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리,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자리를 내줘야 한다.”
10월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평균 55.5세 아저씨 국회! 이제는 2030 청년 여성들이 접수한다’ 기자회견에 김기홍(왼쪽부터)·김혜미·성지수·정다연 녹색당 비례대표 예비후보가 참석했다. 녹색당 제공
‘구린’ 정치, 내가 ‘바꿀’ 정치
―2020년 총선까지 4개월 조금 넘게 남았다. ‘원외’이자 ‘소수’ 정당인 녹색당 후보자로서 느끼는 현실적 한계가 궁금하다. 덧붙여 ‘이것만큼은 꼭 국회에서 주도하고 싶다’는 의제를 꼽아 보자면?
혜미 “처음 녹색당에서 정치하겠다고 나선 뒤에 지인이나 가족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녹색당은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지 않아?’였다. 독일과 같은 외국의 녹색당도 원내 진입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한국 녹색당 역시 창당하고 7년 동안 페미니스트 여성 서울시장 후보, 난개발을 막는 여성 제주도지사 후보를 내며 인지도를 높여왔다. 다만 소수 정당이 원내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혁이 꼭 필요하다. 비례대표 정당득표율 3%라는 진입 장벽이 소수 정당에겐 너무 높다. 시민들은 자기 표가 사표가 될까 봐 두려워하면서 어쩔 수 없이 차악을 선택한다. 이런 선거 구조가 정치혐오를 만들어낸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비롯해 선거제도가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결코 정치혐오를 없앨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기후위기와 불평등 의제를 국회로 가져가고 싶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 가장 타격받는 사람들이 바로 장애인·노인과 같은 취약 계층이다. 기후위기에 문제의식을 가진 국회의원이 없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다연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통과될지 지켜봐야겠지만, 원안이 통과된다면 녹색당은 정당득표율을 통해 원내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총선에서 남은 시간 동안 정당득표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국회의원으로 선출된다면 2018년 신지예 후보가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선언한 데서 한 발 더 나아가는 정책을 펴고 싶다. 국가정책 수립에서 여성, 청년, 빈곤층,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등 소수자들의 권리가 평등하게 보장되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 정치다. 현재 2030 여성들이 바라는 가장 큰 변화는 전 생애주기에서, 일터·가정·거리 등 한국 사회 모든 공간에서 여성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자기 자신답게 사는 삶이다. 그런 철학을 국회에서 펴고 싶다.”
지수 “여성 청년 창작자로서 ‘기본소득’이라는 의제를 들고 국회로 가려 한다. ‘노동을 하지만 노동자라고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 ‘스스로 노동자라 자각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에서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삶을 기본소득이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녹색당에는 이미 2016년에 구체적으로 정책화된 기본소득이 있다. 이는 ‘취직할 청년, 시집갈 청년, 애 낳을 청년’만을 상정해 시혜적으로 돈을 푸는 다른 정당의 ‘구호식 기본소득’ 정책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 역시 3년 전부터, 미비하긴 하지만 기본소득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 ‘청년 창작자 지원 사업’을 통해 매달 일정 금액을 받고 있다. 사회적 약자가 ‘온전한 개인’의 삶을 꾸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도록 노력하려 한다.”
기홍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려고 한다. 고의로 소수자들의 존재와 목소리를 지우는 사람들을 제지하는 법이 차별금지법이다. 그래서 더욱더 내 존재가 중요하다. 만약 선출직 의원이 트랜스젠더라면, 아무리 혐오자라고 해도 동료 의원에게 쉽게 혐오 발언을 내뱉지는 못하지 않을까? 체면 문제가 있을 텐데?”(웃음)
4명의 후보자는 지난 16일부터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순회 토론회를 시작으로 당내 경선 운동을 하고 있다. 오는 12월과 내년 2월 두 차례의 경선을 거치면 공식 후보자로 활동하게 된다. 성지수·김혜미 후보자는 각각 연극연출가·활동가라는 자신의 직업을 유지하면서 총선에 도전하고 있고, 정다연 후보자는 총선을 지나고 나서도 ‘페미니즘 정치’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기간제 음악 교사로 일하다 퀴어 인권·정당 활동을 이어온 김기홍 후보자는 다시 임용고사를 치러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꿈이다. 김 후보자는 인터뷰 말미 ‘공무담임권’을 명시한 헌법 제25조를 언급했다.
“헌법 제25조는 ‘모든 국민은 그 기본권으로서 법률이 정한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진다’는 내용이에요. 그 누구라도 선출직 공무원이 되는 데 생계의 부담 없이, 직장도 휴직계만 내고 도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정말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길 아닐까요?”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