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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장·학·썬’은 독려하고 ‘유재수’에는 침묵하는 문 대통령

등록 2019-12-12 16:11수정 2019-12-12 16:13

강희철의 법조외전(80)
유재수에 대한 청와대의 감찰중단
금품수수 정황에도 수사의뢰 안해
대통령은 유감표명 한 마디 없어
‘장자연-김학의-버닝썬’ 독려와 대조
책임져야 할 박형철 아직 현직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18일 청와대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을 앞에 앉혀 놓고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의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18일 청와대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을 앞에 앉혀 놓고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의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은 여전히 재직 중이다. 검찰의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감찰 무마 의혹 수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지만, 핵심 관련자인 그는 청와대로 출근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께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이정섭)의 조사를 받은 뒤 사표를 냈다는 보도가 나오자 법조에선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조사는 참고인 신분으로 받았다고 해도,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가능하겠나. 사표는 일단 내는 게 맞고, 대통령도 수리하시겠지.” 과거 민정수석실 근무 경험이 있는 검사장 출신 변호사의 예상은, 그러나 빗나갔다. 박 비서관이 여러 차례 사의를 밝혀서 청와대가 ‘후임’을 찾고 있다는 말도 들리지만, 아직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법적 책임만이 책임의 전부는 아니다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사건에서 박 비서관이 법적 책임을 질만 한 일을 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검찰에 나가 “수사 의뢰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으나 조국 전 민정수석이 ‘주변에서 전화가 너무 많이 온다. 스톱해라’고 해서 지시에 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찰은 유재수가 잠적하면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고. 기관 통보는 박형철도 동의해서 결정한 일”이라는 조 전 수석의 입장과는 정면 배치된다. 한쪽 말이 맞는지, 두 주장의 중간 어디쯤이 사실인지는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힐 일이다.

박 비서관이 “소나기(수사)를 피하려고 청와대에 있기로 한 것 아니냐” 또는 “후임자 물색에 시간이 걸린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그를 남겨 두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반부패비서관의 직무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국회에 제출한 ‘민정수석실 업무분장표’를 보면, 반부패비서관은 크게 두 가지 업무를 수행한다. ‘국가 사정 관련 정책·조정 업무’와 ‘공직 비리 동향 파악.’ 그는 휘하에 감찰반(옛 특별감찰반)을 거느리고, 행정부 소속 고위 공직자나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공기관·단체 등의 장·임원 등의 비위 또는 비리를 감찰한다.

“박 비서관 말대로 조 전 수석이 감찰 중단하고 기관 통보 선에서 끝내라고 지시했다고 치자. 그 자체로 감찰규정 위반이고, 금융위에도 위법한 지시가 된다. 둘 다 직권남용이 될 수 있다. 그럼 박 비서관은 ‘위법한 지시다. 그렇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결과적으로 동의한 꼴이 됐다. 적폐수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직권남용으로 잡아넣었나. 그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율한 게 청와대 민정수석실 아닌가. 그런데 자기들은 감찰에서 증거가 나오고 본인이 자백까지 한 뇌물 사안을 대충 덮고 나중에 당사자가 영전되도록 방치했다. 이러고도 다른 공무원들의 비리와 비위를 조사하고 단죄할 자격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나.” (검사장 출신 변호사 ㄱ)

한마디로, 다른 공직자를 사정할 자격이 소멸됐다는 것이다. “저런 상태에서 무슨 영(令)이 서겠냐.”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 게다가 박 비서관은 ‘전비’까지 있다. 지난해 말 자신이 거느리던 특별감찰반 일부의 비위와 기강 해이로 빚어진 이른바 ‘특별감찰반 사태’ 때 휘하 이인걸 특감반장은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직속상관인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넘어갔다. 조 전 수석 바로 아래 특감반 지휘 책임자였지만, 대통령은 어떤 책임도 묻지 않았다. 이번에도 박 비서관을 그냥 두고 있는 데는 대통령 또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심모원려가 있어서일까.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을…”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감동을 주는 명구가 많다. 그 유명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 말고도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로 시작하는 단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몇 문장 뒤엔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라는 다짐도 보인다.

이 사건에서 청와대의 ‘잘못’은 이미 여러 가지가 드러나 있다. 처음에는 민정수석의 직접 지시로 정상적인 감찰이 진행됐다. 유 전 국장의 금품 수수 사실이 드러났고, 휴대폰 포렌식에서는 골프채·금품 등을 요구한 증거가 나왔다. 당사자도 대면 조사에서 이런 사실을 인정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잠적했고, 70일 가까이 버틴다. 그사이 어떤 이유에선지 감찰은 중단됐다. 유 전 국장은 장기 무단결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보전했다. 청와대는 강제조사권이 없으니 수사기관에 넘기는 게 정답인데, 금융위에 조용히 기관 통보만 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검찰이 현재 수사를 진행 중이다. 유 전 국장이 청와대 감찰에서 나온 내용이 포함된 뇌물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는 사실에서 청와대의 잘못은 더욱 분명해진다. 어떤 이는 감찰과 수사의 차이를 들어 당시 청와대의 결정에도 나름대로 근거가 있지 않냐고 말한다. 그러나 뇌물수수를 의심할 증거들이 드러났고, 본인이 자백까지 한 상황이면 정해진 절차대로 수사 의뢰를 했어야 맞다. 그랬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일을 정반대로 처리함으로써 오늘의 상황을 자초한 것이다.

유재수 사례는 대통령이 취임사에 적시한 ‘특권과 반칙’에도 해당한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변호사는 “감찰에서 저 정도 사안이 나왔는데도 무사했다는 얘기는 유재수 외에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유재수 감찰이 흐지부지될 무렵, 조국 당시 민정수석은 골프 회동 등이 적발된 반부패비서관실 산하 특감반원들을 전원 원소속기관으로 복귀시키고, 그중 일부에 대해서는 수사를 의뢰했다. 사안이 무거운 유재수는 최대한 가볍게, 사안이 가벼운 특감반은 최대한 무겁게 다룬 것이다.

청와대는 공직 사회의 기강을 책임지는 최후 보루다. 당연히 법 절차 준수에도 모범이 돼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부터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 정도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다짐한 대로 최소한 유감 표명이든, 아니면 철저한 진상 규명 약속이든 뭔가 ‘발언’을 해야만 하는 것 아닐까.

“문 대통령의 침묵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 사건 탓에 공직 기강을 앞장서 세워야 할 청와대의 위상과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법적 책임은 검찰이 수사를 통해 가리더라도, 정치적·도의적 책임은 청와대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져야 할 사안이다. 물론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이니 모든 게 밝혀지고 나서 입장을 표명할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범죄 사실이 확인되지도 않은 ‘장학썬’(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을 가지고 분노의 수시 지시를 했던 문 대통령이기 때문에 지금의 침묵이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ㄴ)

지난해 12월31일 청와대 특별감찰반 사태 때문에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국 민정수석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해 12월31일 청와대 특별감찰반 사태 때문에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국 민정수석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정황들이 보인다”며 수사 지시했지만

지금의 침묵과는 정반대로, 지난 3월18일 문 대통령의 ‘장학썬’ 수사 지시는 강렬했다. “주머니 속을 뒤집듯 명명백백하게”,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등 극강의 표현들이 동원됐다. 심지어 “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라는 주문까지 내놓았다. 법조에선 “대통령도 법률가인데 어떻게 저런 말을”, “검찰이 수사기관이지 진상규명 기관이냐”는 반응까지 나왔다. 그만큼 대통령은 절실하고 확신에 차 보였다.

그런 믿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 지시문 앞쪽에 있다.

(‘장학썬’ 세 사건의) 공통적인 특징은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일이고, 검찰과 경찰 등의 수사기관들이 고의적인 부실수사를 하거나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진실규명을 가로막고 비호·은폐한 정황들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정황을 근거로 수사 지시를 내린 것이다. 당시에도 법조계에선 논란이 많았다. “대통령이 저렇게 대놓고 수사 지시를 해도 되는 거냐.” “수사를 지시한 근거가 정황이라니 너무 빈약하다. 저러다 무죄 나면 어쩌려고.” “포퓰리즘 아닌가. 대통령이 특정 사건을 거론하며 수사 지시를 하는 건 군사독재 때 말고는 거의 못 봤다.” “대통령이 저리 세게 지시했으니, 유죄가 나든 무죄가 나든 무조건 기소할 수밖에 없겠네.”

결과는 허망했다. 무려 13개월을 조사한 장자연 사건은 이렇다 할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중간에 갑자기 ‘최후의 증인’이라며 나타난 윤지오씨는 전혀 엉뚱한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대통령이 지목한 성폭행 대신 뇌물 혐의가 적용돼 기소가 이뤄졌다. 그러나 법원은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버닝썬 사건은 본류를 벗어나 유명 연예인의 불법 촬영·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번졌다. 이들과 특별한 관계였다는 ‘경찰총장’ 윤규근 총경은 경찰이 무혐의 송치를 했지만, 검찰 수사에서 뇌물 혐의가 드러나 지난 10월 구속됐다. 윤 총경은 문 정부 들어 백원우 민정비서관 아래서 대통령 친인척 관리 등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이 확신에 차서 수사를 지시한 3건은 공교롭게도 모두 무죄가 나거나 무혐의 처분됐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기무사 계엄문건 사건도 마찬가지로 용두사미가 됐다. 그건 대통령의 당시 판단이 섣불렀거나 적절치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굳이 수사 지시까지 하지 않아도 될 사건들에는 직접 나서고, 정작 입장을 내놓아야 할 청와대 문제에는 침묵하는 문 대통령을 이해하기 어렵다.” (판사 출신 변호사)

유재수’와 달랐던 특감반 처리…부메랑으로

법조에선 “작년 특감반 사태 때 정리를 잘못한 것이 부메랑이 됐다”는 말들이 나온다. 조직 관리 능력이나 상황 대처·수습 능력 등에서 한계를 드러낸 조국, 박형철 두 사람을 그대로 안고 간 대통령의 선택이 오늘의 상황을 불렀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에도 한동안 침묵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G20 회의 참석 뒤 뉴질랜드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이 특감반 사태에 관해 묻자 “국내 문제는 질문을 받지 않겠다”며 거절했다. 그러더니 귀국해서는 조국 민정수석에게 “청와대 안팎의 공직 기강 확립을 위해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특감반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비등했던 ‘조국 경질’ 여론을 일축한 것이다. 박 비서관도 조 전 수석에 묻어 그냥 넘어갔다.

반면, 특감반에 대해서는 강경한 조처가 내려졌다. “쇄신과 공직 기강을 다시 세우기 위한 차원”(김의겸 당시 대변인)이라면서 전원을 원 소속청으로 돌려보냈다. 지휘 책임자는 놔두고 반원들만 문책했으니, ‘하후상박’이 아니라 ‘상후하박’으로 간 셈이다.

청와대의 대응은 당시 법조계에서 적잖은 우려를 샀다.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데스크 등으로 일했던 한 법조계 인사는 그 당시 “민감한 정보를 다루던 사람들을 범죄 집단인 것처럼 저렇게 싸잡아 내쫓으면 아주 위험하다. 아는 것, 손에 쥔 것이 얼마나 많은데. 나중에 다 부메랑이 돼서 돌아올 수 있다”고 했었다. 그의 ‘예언’은 유재수 사건으로 현실이 됐다. 게다가 유재수 감찰과 특감반 처리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컸다.

“특감반원들은 다들 승진을 바라고 청와대 근무를 한다. 원소속기관에 승진해서 돌아가는 게 그들의 소박한 꿈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낙인이 찍혀 쫓겨났으니…. 그때 특감반원 중 일부는 징계도 당하고 해서 다들 부글부글했다고 하더라. 그 사람들이 (지금) 김태우의 입을 빌려서 이야기하는 모양새가 됐다.” (검찰 관계자)

감찰무마 의혹은 당시 특감반원이던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의 폭로로 사건화됐다. 청와대는 당시 유재수 감찰 기록이 특감반 사태를 겪으며 모두 폐기됐다고 했으나, 검찰은 전 특감반원들 조사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복원해냈다.

대통령의 침묵이 모두 금은 아니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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