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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소방수’ 추미애도 못 막은 윤석열의 청와대 겨냥 수사

등록 2020-01-30 17:06수정 2020-01-31 11:16

[검찰 ‘청와대 수사’ 중간 결산]
추 장관, 1월초 취임 후 ‘징벌·예방 인사’ 통해
선거개입·감찰 무마 수사 등 진압하려 했지만
증거·진술 앞세운 검찰 수사 결론에 속수무책
“증거 무시할 검사 없다는 걸 추 장관이 몰라”
인사혜택 받은 김오수·이성윤·심재철만 희생
총선 뒤 수사 재개하면 제2라운드 대결 불가피
청와대 겨냥 수사를 놓고 격렬하게 충돌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한겨레> 자료 사진
청와대 겨냥 수사를 놓고 격렬하게 충돌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한겨레> 자료 사진
청와대 겨냥 검찰 수사를 진압하려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여러 시도는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검찰이 지난 29일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로 알려진 송철호 울산시장,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 ‘청와대 선거개입’ 및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관련자 13명을 무더기로 기소하면서다.

검찰의 결론은 청와대가 울산시장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했고, 하명수사도 그중 하나라는 것이다.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에서는 민정수석실의 조국 수석과 그 휘하에 있던 백 비서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을 ‘공범’이라고 판단했다. 그 결과 문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1기 핵심인 이들 세 명이 모두 기소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없던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방수’로 투입한 추 장관도 ‘윤석열 검찰’의 수사 결론을 막지는 못했다.

30일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조사한 검찰은 4월 총선 이후 수사를 재개해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선거개입 수사는 정중동인 상태에서 잠시 휴지기에 들어가는 셈이다.

‘청와대 수사’에 이중삼중 방어막 친 추미애

추 장관은 1월3일 취임과 동시에 검찰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취임사에서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지지는 역대 최고조에 달해 있다”며 “탈 검찰과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속도를 내겠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받들어 법무 분야 최고 책임부처로서 정상적인 위상을 회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살아 있는 권력, 청와대를 함부로 겨누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겠다는 경고로 해석됐다.

곧이어 ‘응징’이 시작됐다. 취임 일주일만인 지난 9일 검사장급 인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가까운 참모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날렸다.’ 대신 그 자리엔 정권과 가까운 이성윤(서울중앙지검장), 심재철(대검 반부패강력부장) 검사 등을 앉혔다. 이 인사를 두고 여러 비판이 제기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인사권은 장관과 대통령에게 있다”며 추 장관에게 한껏 힘을 실어줬다. 추 장관은 23일 중간 간부 인사에서는 청와대 겨냥 수사를 맡고 있던 서울중앙지검과 서울동부지검의 차장검사들을 갈아치웠다. “윤석열의 손과 발이 모두 잘렸다”, “윤석열 고사작전이 본격화했다”는 평가가 검찰 안팎에서 나왔다.

인사만이 아니다. 추 장관은 제도에도 손을 대며 검찰을 치밀하게 압박했다. 검찰총장 직권으로 설치 가능한 특별수사단 등 ‘비직제 수사조직’을 앞으로는 장관의 사전 승인 없이는 만들 수 없도록 하고, 청와대 겨냥 수사의 주력이던 검찰의 직접 수사부서는 없애거나 줄이거나 간판을 바꿨다. 이어 검찰이 수사의 결론을 낼 때는 수사팀 외에 부장회의나 외부 전문자문단의 의견을 들으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검찰 관계자는 “추 장관이 와서 한 일의 상당 부분은 청와대 겨냥 검찰 수사에 이중삼중의 방어막을 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추미애가 앉힌 대검 간부들조차 ‘기소 동의’

그러나 상황이 추 장관의 의도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청와대를 겨냥한 검찰의 세 갈래 수사 중 ‘유재수 감찰 무마’ 수사에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7일 기소됐다. 설 연휴를 앞둔 23일에는 조 전 장관 아들의 대학원 입시용 허위 인턴활동 확인서를 떼어 준 혐의로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 과정에서 수사팀이 공소장 결재를 미루는 이성윤 지검장 대신 윤 총장의 직접 지시를 받아 기소한 사실이 알려지자 추 장관은 “날치기 기소”라고 검찰을 맹비난했으나 때는 늦었다.

최 비서관 기소를 계기로 추 장관이 ‘감찰’ 가능성을 내비치자 윤 총장은 29일 ‘울산 지방선거 개입 피고발 사건 처리 회의’를 열었다. 여기에 서울중앙지검의 수사팀과 이성윤 지검장, 대검 참모진 등을 불러 모아 각자 의견을 들었다. 추 장관이 만지작거리고 있는 ‘총장 감찰’에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절차상 흠결의 소지를 없앤 것이다.

참석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 회의는 현재 검찰의 상태, 검찰과 법무부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오직 한 사람, 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인 이성윤 지검장만이 ‘기소 보류’를 주장했다. 나머지 참석자들은 지금까지 수집된 증거와 진술, 총선이 8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수사가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기소가 마땅하다는 의견을 냈다. 수사팀은 자신들이 한 수사이니 당연한 결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추 장관이 지난 9일 인사에서 대검에 배치한 구본선 대검차장과 배용원 공공수사부장(옛 공안부장)도 수사팀의 결론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사실이다. 윤 총장을 견제하기 위한 추 장관의 인사는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바람에 펄럭이는 검찰기. 연합뉴스
바람에 펄럭이는 검찰기. 연합뉴스
“주임검사가 동의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추 장관의 의도가 먹히지 않은 이유는 뭘까. 추 장관은 내심 두 차례 검찰 인사를 통해 정권 차원의 ‘경고’가 검찰에 효과적으로 전달됐다고 짐작했을 것이다. 또 새로 발탁한 검사들이 인사권자의 ‘의중’을 충분히 헤아려서 ‘현명한 선택’을 하리라 믿었을 것 같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전직 검찰 간부는 “추 장관이 법조인이긴 하나 검찰 의사결정의 ‘디테일’을 몰랐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추 장관은) 대검 참모들과 수사팀 바로 위의 차장검사들을 교체하면 윤 총장과 직결된 라인이 제거돼 이번 수사를 자신의 원하는 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건 큰 오산”이라며 “눈앞에 범죄를 입증할 증거와 진술이 있으면, 그걸 무시하고 딴소리를 할 검사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주임검사인 수사부서의 부장이 동의하지 않으면 (말릴)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3일 인사에서 추 장관은 청와대 선거개입 사건 수사를 맡은 김태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장과 유재수 감찰 무마 수사를 담당하는 이정섭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을 유임시켰다. ‘인사 탄압’이라는 비판을 피하려고 남겨둔 것이다. 그런데 검찰 쪽 설명을 들어 보면, 이들이 누구보다 분명하게 기소 의견을 냈다고 한다.

추 장관의 ‘청와대 수사 진압’ 시도는 검찰 내부에 여러 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미 후배 검사들의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는 이른바 ‘검찰 빅4’ 네 자리 중 대검 공공수사부장을 제외한 3개(대검 반부패부장·법무부 검찰국장·서울중앙지검장) 요직을 섭렵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김오수 법무부 차관은 한참 후배인 정희도 대검 감찰과장에게서 “‘법률가의 양심’을 저버리지 말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심재철 대검 반부패강력부장도 ‘조국 무혐의’를 주장한 일로 검찰 안팎에서 화제의 인물이 됐다.

“윤 총장 사퇴 없다…2라운드는 총선 이후에”

추미애-윤석열의 대결은 일단 윤석열의 판정승으로 끝난 것처럼 보인다. 검찰 안팎에선 “(추의) 반격이 (윤의 기소라는) 더 큰 반격을 불렀다”, “검찰을 잘 모르면서 무리한 검찰 압박에 매달린 나머지 총선을 앞둔 여권에 마이너스 효과를 줄 것”이라는 등의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검찰 수사도, 추-윤 대결도 끝난 게 아니다. 8월27일 조국 일가에 대한 일제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검찰의 세 갈래 수사 중 조국 일가 비리와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이 종결됐을 뿐이다. 더 큰 화약고,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29일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 30일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조사한 검찰은 4·15 총선을 의식해 일단 수사를 멈출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종결이 아니다. 아직 조사할 게 남았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임종석까지 피의자로 조사했으니 결론을 내야 할 것”이라며 “검찰로서는 임 실장의 ‘윗선’을 의심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윤 총장은 정권의 극심한 압박에도 자진 사퇴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다. 이는 그와 접촉한 여러 사람을 통해 확인되는 것이다. 오히려 검찰 주변에선 신라젠, 라임자산운용 등 ‘권력형 비리’ 의혹이 제기되는 사건들에 검찰이 주목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상황에 따라 ‘확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추 장관이 직접 수사부서를 대폭 축소했지만, ‘최순실 게이트’처럼 검찰이 정권 후반기 의혹 사건에 끌려 들어간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윤 총장과 여러 차례 충돌하며 ‘감찰’ 카드까지 내보였던 추 장관이 앞으로 어떤 대응을 할지도 큰 변수다. 임종석 전 실장까지 피의자로 조사한 검찰이 총선 뒤 ‘윗선’ 수사에 들어간다면 두 번째 대전은 불가피해 보인다. 4·15 총선까지는 불과 70여 일이 남았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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