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문중원 기수의 아내 오은주씨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에서 남편의 영정사진을 들고 서 있다.
“남편이 눈을 감지 못하고 죽었어요. 유서에 적힌 책임자가 처벌을 받고 진상규명을 해서 남편이 편히 눈을 감게 해주고 싶어요. 유서 내용의 진상을 밝혀주지 못하면 저는 평생 다리를 쭉 펴지 못하고 자지 못할 것 같아요….”
고 문중원 기수는 지난해 11월29일 마사회의 승부조작과 조교사 개업 비리 의혹 등이 담긴 유서를 남긴 채 부산경남경마공원 안 기숙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아내 오은주씨는 남편이 겪었을 고통에 나오는 울음을 간신히 삼키며 한마디 한마디 말을 이어 갔다.
문중원씨는 15년 동안 기수로 살아왔다. 기수는 마방(말을 훈련하고 관리하는 공간)을 관리하는 조교사와 계약해 일하는 개인사업자다. 기본급을 보장받는 서울경마공원과는 달리 문씨가 일했던 부산경남경마공원은 순전히 순위 상금으로만 임금을 준다. 부당한 지시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 기수는 수시로 승부조작 지시를 받았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태풍이 불던 날에도, 안개가 자욱한 날에도 말 위에 올랐다.
오은주씨와 가족들이 시민분향소 앞에서 열린 문화제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
말을 타는 기수는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항상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30대 후반의 문씨는 기수보다 좀 더 보수가 좋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마방을 관리하는 조교사를 준비했다. 자비로 외국에 연수를 다녀오는 등 1년 이상 열심히 공부해 2015년 5월 조교사 자격증을 힘들게 땄다.
문 기수는 곧 마방을 받을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자격증을 따면 금방 마방을 받을 줄 알았다. 마방은 조교사가 개인적인 사정이 생기거나 정년퇴임을 해야 자리가 비었다. 처음 떨어질 때는 경험이 없고 젊어서 떨어졌다 하고 상황을 받아들였다. 기다리면 나에게도 기회가 오겠지 생각했다. 마방 배정에 떨어지는 횟수와 시간이 길어졌다. 공고가 나면 마사회 간부와 친분이 있는 조교사가 배정받을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대로 문씨보다 자격증을 딴 기간이 짧은 특정 조교사에게 배정됐다. 4년 이상 이런 상황이 반복됐다. 꿈이 사라지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술을 전혀 마시지 못했던 문 기수는 취해서 집에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해 11월 ‘세상에 이런 직장이 어디 있는지… 더럽고 치사해서 정말 더는 못 하겠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오은주씨가 고 문중원 기수의 시신이 모셔진 장의차를 쓰다듬고 있다. 문씨의 장인은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3~4일 마다 드라이아이스를 갈아 준다.
문씨가 세상을 떠난 지 64일(31일 기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지 36일째가 됐다. 분향소 옆에는 드라이아이스로 시신을 감싸 부패를 방지한 장의차가 세워져 있다. 아내 오은주씨와 가족들은 문씨의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오씨는 “2004년부터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7명의 기수와 마필관리사의 희생이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라며 제도 개선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은 마사회를 성토했다.
문씨는 생전 아이들에게 다정한 아빠였다. 곧 큰딸의 생일이다. 오씨는 “아이가 나는 아빠, 엄마가 모두 없다고 울고 있다. 설은 혼자 있게 했지만, 생일을 혼자 있게 하고 싶지 않다”고 소망을 말했다. 문씨의 영정사진 옆에는 아빠와 대통령에게 보내는 큰딸의 편지가 놓여 있다.
‘대통령 할아버지께.
우리 아빠 추워요.
따뜻한 하늘나라로 보내주세요.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요.’
시민분향소에 고 문중원 기수의 큰딸이 쓴 편지와 고인이 생전에 썼던 채찍, 헬멧 등이 놓여 있다.
사진·글 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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