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지난해 10월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라임자산 펀드 환매 중단과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하기에 앞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19일에 이어 27일 라임과 펀드 판매사인 증권사 등을 전방위로 압수수색했다. 라임자산 사건은 투자 손실 규모가 크고 피해자가 다수다. 현재까지 드러난 투자 손실이 1조원대로, 앞으로 규모가 더 늘어날 수 있다. 국내 1위 헤지펀드사로 한때 6조원 가까운 돈을 굴렸던 라임자산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라임자산운용의 합리적 상상력으로 금융을 다시 생각하다.’
라임자산운용(이하 라임자산)의 투자 철학은 ‘합리적 상상력’이다. 라임자산이 만든 다양한 전략과 상품으로 자금 수요자와 공급자를 매개해 양쪽 모두의 니즈를 충족시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라임자산은 본업인 주식 투자를 넘어서 투자 자산 영역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국내외를 넘나들었다. 라임자산이 국내 1위 헤지펀드 운용사로 몸집을 불린 밑거름이다. ‘합리적 상상력’의 위험성은 탐욕에 눈먼 상상력이 ‘합리적’이란 수식어를 지워버리면서 발생했다.
지난해 6월 한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원종준 라임자산 대표가 투자처였던 한 음식점에서 햄버거를 한 손으로 들고 맛깔스럽게 베어 먹을 듯한 표정을 지을 때까지만 해도 라임의 합리적 상상력은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줄로만 알았다. 고기로 기름진 입을 상그리아(스페인 전통 칵테일 음료) 한모금으로 가시던 그가 그 상상력에 합리성이란 날개가 떨어져가고 있는 징후를 부지불식간에 고백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원 대표는 전문가인 각 본부장에게 대부분 권한을 위임한다. 일정 금액 이상을 투자할 때는 투자심의위원회를 열기도 하지만 적당한 규모는 본부에서 실행하고 책임진다. 그만큼 투자 판단에서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략) 원 대표는 “요즘 투자자는 주식시장의 등락과 상관없이 꾸준히 수익을 내는 상품을 원한다.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지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수단은 중요하지 않다. 고객이 원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수익을 내는 상품을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경제지 인터뷰 기사)
그로부터 8개월이 흐른 이달 기준으로 라임자산 펀드에 투자한 고객의 손실은 1조원을 넘어섰다. 라임자산이 환매 중단한 사모펀드 규모는 1조6천억원대다. 최근 검찰은 두차례에 걸쳐 라임과 원 대표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라임자산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모자로 엮은 펀드 구조
2012년 투자자문사로 출발한 라임자산은 2015년 자산운용사로 전환했다. 라임자산은 지난해 7월 기준으로 운용 자산 규모가 5조9천억원에 이르며 ‘국내 1위 헤지펀드사’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라임자산이 판매한 펀드는 전부 사모펀드다. 펀드는 자산운용사가 투자자로부터 모은 돈을 운용해 수익을 내고 이를 투자자한테 분배하는 상품이다. 사모펀드는 49명 이하 투자자를 대상으로 자금을 모아 비공개로 운용한다. 자금 운용의 제약이 없고, 금융당국 규제도 덜 받는다. 공개된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비상장 회사 주식과 부동산, 주식 관련 채권 등 투자 대상과 전략을 다양화할 수 있다.
반면 자산운용사가 50명 이상 투자자에게 펀드를 판매하려면 공모펀드로 상품을 출시해야 한다. 공모펀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개 모집한다. 투자자를 보호하는 자산 운용 규제, 성과보고서 정기 공시, 외부 감사 등 엄격한 규제가 적용된다. 공모펀드는 주로 주식과 채권 등 전통적인 자산을 매수하는 전략을 활용한다.
라임자산은 더 많은 투자자를 끌어모으려 모자(母子)펀드 구조를 이용했다. 모자펀드는 일반 투자자의 돈을 모은 자펀드가 모펀드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자펀드는 주식, 채권 등 직접 투자는 하지 않고 모펀드에 투자하고, 모펀드가 운용해 내는 수익을 나눠 갖는다. 사모펀드인 라임자산이 일반 투자자를 대거 모집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라임자산으로서는 수백개의 자펀드를 일일이 관리하지 않고도 모펀드 투자금을 쉽게 불리는 수단이 됐다. 모자펀드는 널리 사용되는 방식이지만 라임자산처럼 하나의 모펀드에 수백개의 자펀드를 엮어놓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라임자산의 일반 투자자가 천문학적인 손실을 본 구조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모펀드 하나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거기에 물려 있는 수백개의 자펀드가 줄줄이 무너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펀드는 가입과 환매가 언제든 가능한 개방형과, 가입 이후 만기까지 환매가 불가능한 폐쇄형이 있다. 환매란 펀드에 묶인 돈을 가입자가 계약을 해지하고 자산운용사로부터 돌려받는 것이다. 자산운용사가 투자자에게 환매할 돈이 없는 상황을 환매 중단이라고 한다. 라임자산이 환매 중단한 펀드에는 언제든 환매 가능한 개방형과 만기를 곧 앞둔 폐쇄형이 모두 포함돼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라임자산의 환매 중단 펀드는 모펀드 4개, 그리고 이들 모펀드와 모자 관계에 있는 자펀드 173개로 총 1조6679억원이다. 자산운용사는 가입자의 환매 요청에 대비해 펀드 내부에 여윳돈을 쌓아놓거나 자산 중 일부를 매각해 돈을 돌려줘야 하는데, 라임자산은 유동성(현금화) 문제로 상환금 지급이 연기된 것이다.
손실 증가 ‘아직 진행 중’
라임자산이 판매한 사모펀드는 모펀드에 유동성 문제가 생기면 자펀드 전체에 영향을 주는 구조다. 모펀드 유동성에 위험 신호가 들어오면 위험관리에 굉장히 취약한 금융상품이다.
금감원 등 자료를 종합하면, 지난 20일 기준 라임자산이 운용하는 총 262개 사모펀드의 순자산은 2조8142억원이다. 이는 설정액 4조345억원보다 1조2203억원이나 적다. 설정액은 투자 원금, 순자산은 투자 원금을 운용해 자산운용사가 보유 중인 현재 자산 가치를 뜻한다. 설정액보다 순자산이 1조2203억원 적은 건 그만큼 투자자가 손실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라임자산의 환매가 중단된 2개 모펀드를 삼일회계법인이 실사한 내용을 반영하는 등 자산 기준가격 조정에 들어간 결과다.
지난해 환매가 중단된 또 다른 모펀드인 무역금융펀드 실사 결과가 조만간 나오면 라임자산 투자자의 손실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금감원은 지난 14일 라임자산 중간 검사 결과 발표에서 2400억원 규모의 이 무역금융펀드가 전액 손실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라임자산은 50% 정도 자산 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
라임자산의 다른 펀드 자산 기준가격 조정이 계속 진행 중이어서 손실 규모는 늘어날 수 있다. 라임자산이 증권사와 맺은 티아르에스(TRS·Total Return Swap·총수익스와프) 계약도 투자자 손실을 키울 개연성이 있다. 티아르에스는 증권사가 펀드를 담보로 제공하는 대출이다. 자산운용사가 투자자로부터 펀드 1억원을 만들면 증권사가 이를 담보로 1억원을 빌려줘 총 2억원으로 펀드를 굴리는 방식이다. 자산운용사들은 그동안 증권사들과의 티아르에스 계약으로 레버리지를 일으켜 펀드 자산과 수익률을 키워왔다. 펀드가 수익을 내면 괜찮지만 문제는 손실이 났을 때다. 펀드 손실 시 증권사에 우선 돈을 갚는 구조여서 투자자 손해가 펀드 전체 손실률보다 커진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라임자산이 4개 모펀드와 관련해 증권사 4곳과 티아르에스 계약을 맺고 있는 금액이 8670억원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라임자산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5억원에 그쳐 전년 102억원보다 97억원이나 줄었다. 당기순이익은 2018년 84억원 흑자에서 지난해 14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라임자산 펀드 투자자의 절반가량은 60대 이상 고령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금감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라임자산의 환매가 중단된 자펀드 173개에 투자한 개인 계좌 수는 모두 4035개다. 이 중 60대 이상 계좌 수는 1857개로 전체 46%에 이른다.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판매사로부터 제대로 된 상품 안내를 받지 못했다며 대신증권의 사죄와 피해 금액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대신증권을 통해 라임자산운용의 펀드에 가입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라임자산 핵심 의혹 네가지
라임자산 사건의 핵심 의혹은 크게 네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유동성 위험을 고려하지 않은 펀드 구조를 설계해 운용한 점이다. 일반 투자자가 자펀드에 가입할 때 일정 조건에서 환매를 요청할 수 있다. 라임자산은 장기간 투자해야 하는 비시장성 자산에 투자해놓고는 개방형(언제든 환매 가능), 단기 폐쇄형(단기간이 지나면 환매 가능)으로 펀드를 구성하는 바람에 투자자의 환매 요구에 대응하지 못하고 유동성 문제를 야기시켰다. 또 티아르에스 거래 등 레버리지를 활용해 펀드 원금 이상의 자금을 끌어모아 투명하지 않은 비시장성 자산에 투자해 위험성을 더욱 키웠다. 라임자산이 위험성이 내포된 펀드를 왜 설계했는지, 이를 알고도 했는지 등이 의문점이다.
둘째, 펀드 손실 돌려막기다. 라임자산 모펀드는 자펀드 자금을 받아 채권과 주식 성격을 동시에 지닌 전환사채(CB) 등에 투자했다. 발행 기업 주가가 일정 가격 이상으로 올라야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꿔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런데 주식시장 약세가 이어지면서 모펀드가 투자한 코스닥 기업의 주식이 하락했다. 이때 현금화하면 손실이 나기 때문에, 실제 가치가 액면가를 밑도는데도 라임자산의 다른 모펀드가 액면가로 해당 자산을 사주는 등 펀드끼리 부실이 난 자산을 비싼 가격에 주고받으며 이를 감춘 것이다.
법무법인 ‘최선’의 강상원 대표 변호사는 “펀드 손실 돌려막기는 남의 돈을 빌려서 기존 대여자에게 돈을 갚는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 사기)와 동일한 구조의 심각한 범죄 행위다. 라임자산은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자 환매를 해주려고, 환매 요청을 받은 펀드의 자산을 다른 펀드가 매입해주기도 했다. 펀드끼리 우회적으로 자금을 지원해 급한 불을 껐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셋째, 불투명한 투자 의사 결정과 경영진의 사적 이익 취득이다. 지난 14일 발표된 금감원 자료를 보면, 엄격한 내부 통제 및 심사 절차 없이 이종필 부사장이 독단으로 투자 의사를 결정해 위법한 행위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이런 구조에서 특정 펀드의 부실을 다른 펀드로 전가하는 행위가 가능했다. 또 일부 임직원은 직무상 얻은 정보를 이용해 라임자산 임직원 전용 펀드로 수백억원의 부당 이득을 얻기도 했다.
넷째, 국외 펀드의 부실 발생을 숨기고 상품을 판매한 점이다. 라임자산 무역금융펀드는 2017년 5월부터 신한금융투자 레버리지를 활용해 인터내셔널인베스트먼트그룹(IIG) 펀드 등 국외 무역금융펀드에 투자했다. 2018년 6월부터 여러차례 인터내셔널인베스트먼트그룹 펀드의 부실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이를 숨기고, 정상적으로 운용되던 다른 펀드로 부실을 전가했다. 지난해 6월 금감원이 라임자산의 부실 정황을 인지하고 검사를 시작한 뒤에도 라임자산과 신한금투는 이런 사실을 은폐하고 고객에게 펀드를 계속 판매해 수수료를 챙겨왔다.
지난해부터 라임자산 사건을 들여다보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 후 직제 개편으로 해체된 뒤 이 사건은 현재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 조상원)가 수사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투자 손실 규모가 1조원대로 크고 피해자가 서민 다수인 점을 고려해 지난 5일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 4명을 서울남부지검에 파견해 라임자산 사건에 투입했다. 검찰은 지난 19일 라임자산과 펀드 판매사인 신한금투 등을, 지난 27일에는 다른 펀드 판매사인 우리은행과 대신증권 등을 압수수색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라임자산은 일단 금융범죄 사건으로 기본 수사가 진행될 것이다. 다수 투자자가 조 단위로 피해를 본 사건이기 때문에 펀드 운용과 판매, 관리·감독 등에서 어떤 위법 행위가 발생했는지 등 제기된 각종 의혹들은 전부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