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의붓어머니가 3일 구속 전 피의자 신문(영장실질심사)을 받으러 충남 천안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천안/연합뉴스
“거짓말을 해 훈육 차원에서 가방에 들어가라고 했다.”
7시간 동안 동거남의 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40대 여성이 경찰 조사에서 한 말이다. ‘훈육’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지는 가정 내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부모의 아동 체벌 금지’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여전히 한국 민법은 ‘친권자 징계권’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법무부 등은 지난해 5월 부처 합동으로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면서, 민법에서 정하고 있는 ‘친권자 징계권’ 조항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동을 양육이나 훈육 대상으로 보지 않고, 행복할 권리를 가진 주체라고 인식하자는 취지다. 이후 지난달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민법의 징계권을 삭제하고 체벌 금지를 명확하게 규정하라고 권고했다.
현행 민법 제915조(징계권)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친권 중 하나인 징계권은 아동복지법과 상충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자녀 훈육을 위해 체벌은 불가피하다’는 인식 때문에 민법이 처음 제정된 1958년 이후 한차례도 바뀌지 않고 유지돼왔다.
수십년간 자녀의 징계권이 유지된 배경으로는 한국의 친권 중심 문화가 꼽힌다. 강현아 숙명여대 교수(아동복지학부)는 “한국은 워낙 친권이 강한 사회이기 때문에 징계권을 없애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강하다. 정부가 징계권 삭제를 이야기했을 때도 이런 부분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논란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동 체벌 금지가 세계적 추세인 점을 고려해, 자녀의 징계권 삭제는 사회적 인식 변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매니저는 “민법의 징계권은 부모가 선한 의지로 가르치려는 목적이면 체벌을 해도 된다고 해석할 오해 여지가 있는 구시대적 법”이라며 “프랑스는 물론 한국과 함께 징계권이 인정됐던 일본 등 59개국이 가정을 포함한 아동에 대한 모든 처벌을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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