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의붓어머니가 3일 구속 전 피의자 신문(영장실질심사)을 받으러 충남 천안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천안/연합뉴스
아버지 동거녀에 의해 여행가방 속에 갇혔다가 3일 숨진 ㄱ(9)군의 비극을 막지 못한 것은, 지난달 첫 학대 의심 신고 당시 경찰과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이 ㄱ군의 사정을 ‘응급 사례’로 분류하지 않고 한달 가까이 시간을 끌었던 결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달 5일 이미 ㄱ군의 몸에서 멍 자국과 같은 학대 의심 정황이 보였는데도, ㄱ군은 원가정으로 보내진 뒤 지속적인 관찰 대상에조차 오르지 않았다.
4일 아동권리보장원 통계를 보면, 아동 재학대 사례는 2016년 1591건에서 2017년 2160건, 2018년에는 2543건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아동학대 사례 가운데 재학대 비중도 같은 기간 8.5%에서 9.7%, 10.3%로 높아졌다. 재학대 사례 가운데 2018년 기준 69%는 처음 학대 발견 시 조처부터 최종 조처까지 원가정 보호(학대 행위자와 계속 함께 생활)가 유지된 경우다. 처음에는 보호시설로 보내졌지만 도중에 원가정으로 되돌려보내진 비중은 6.1%다. 이는 현행 아동복지법이 아동이 태어난 가정이나 유사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원가정 보호라는 벽을 넘지 못한 학대 피해 아동들은 지속적인 모니터링 등 관리 실패 속에 빈번히 재학대를 당하곤 했다. 지난해 인천 미추홀구의 한 자택에서 5살 남자아이가 손과 발이 묶인 채 의붓아버지에게 폭행당해 숨진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피해 아동은 2년여간 시설에 보호조처 됐다가 가정으로 돌아간 지 26일 만에 숨졌다. 의붓아버지는 아동이 가정에 복귀하자마자 부모 교육을 중단하고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대면·전화 상담 요청을 거부했지만, 민간 기관인 아동보호전문기관에는 의붓아버지를 제재할 권한이 없어 추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ㄱ군의 경우에는 지난달 7일 의료기관의 학대 의심 신고가 있고 나서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첫 조사는 13일에나 이뤄졌고, 닷새 뒤인 18일 ‘학대로 보이지만 원가정 보호조처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ㄱ군이 골절과 같은 심각한 외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몸에 희미한 멍이 있는 정도였고, ㄱ군이 부모와 함께 지내길 바라며, 부모가 반성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경찰은 같은달 21일에야 처음으로 동거녀를 만나 조사를 시작하는 등 두 기관 모두 ㄱ군의 상황을 긴급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 결과 경찰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ㄱ군이 가정에서 안전한지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사건 초기에 그릇된 판단이 내려지고 모니터링조차 하지 않음에 따라 ㄱ군을 보호할 ‘골든타임’을 놓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2018년 3월 ‘아동학대 방지 보완대책’과 지난해 12월 ‘가정복귀 결정 강화’ 방안 등을 잇따라 내놓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구멍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3월 대책에는 주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학대 의심 아동에 대한 상담·조사와 보호조처를 민간 위탁기관인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들이 하고 있어 공공성·책임성·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대책이 나오고 2년여가 지났는데도 ㄱ군에 대한 조사는 민간 기관에 맡겨져 있었다.
아동학대범죄 특례법 개정안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하며, 오는 10월부터는 기존 민간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현장조사를 지방자치단체 소속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대신 수행하게 되지만, 이를 두고도 우려가 적지 않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엔 사건의 응급과 비응급을 현실적으로 나누기가 굉장히 어렵고 숨질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공공성을 갖추고 인력 규모와 전문성 부족 문제를 제대로 풀지 않으면 ㄱ군과 같은 사례는 계속 관리 후순위로 밀리는 일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하얀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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