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씨 재판이 열린 11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연대의 의미로 끈을 잇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이들은 조씨를 비롯한 온라인 성착취 가해자들을 엄벌할 것을 촉구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텔레그램 메신저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배포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4)씨 재판이 본격 시작됐다. 당장 범죄의 결과물인 성착취물 영상 시청 장소를 놓고 제안과 고민이 뒤섞이면서 앞으로 공판 과정에서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세세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이현우)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배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씨와 ‘공익요원’ 공범 강아무개(24)씨, 성착취물 유포 대화방 ‘태평양 원정대’ 운영자인 이아무개(16)군의 첫 공판을 대법정에서 진행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변호인 10명이 법정을 채웠고, 많은 시민이 몰려 법원이 준비한 방청권은 동이 났다. 3명의 피고인도 나란히 법정에 섰다.
재판부는 피해 사실이 공개될 위험을 막기 위해 검찰이 공소사실을 밝히는 절차를, 검사와 피고인, 피고인·피해자 변호인을 제외한 모든 방청객을 퇴정시킨 뒤 비공개로 진행했다. 다시 이어진 공개재판에서는 증거조사 과정에서 피해자 모습이 담긴 성착취물을 어떻게 시청해야 할지를 놓고 논의가 오갔다. 피해자 쪽 변호인은 피해 내용이 담긴 영상을 법정이 아닌 판사 집무실에서 틀자는 의사를 전했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구속된 상태라 교도관들도 있어야 하고, 재판부와 검찰이 모두 있어야 해서 집무실에서는 (시청이) 불가능하다. 법정에서 재생해 시청하는 방법이 가장 무난하다”며 “최소한의 증거조사를 위해 가능하면 적은 수만 참여할 수 있는 법정에서 영상물을 시청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 성범죄 특성상 범행 내용을 보여주는 성착취물 영상의 증거조사는 혐의 입증을 위한 필수적인 재판 절차다. 판사가 검사·피고인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직접 조사한 증거로 심리를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피해자 입장에서는 법정에서 또 한번 영상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크다.
형사소송법과 성폭력범죄 사건의 심리·재판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 등을 보면, 증인신문 때 피해자 보호를 위해 피고인 퇴정 등을 명시했지만, 증거조사의 경우에는 별다른 피해자 보호 규정이 없다. 재판부도 “증인신문은 피고인을 대기실에 퇴정시킨 뒤 비공개로 할 예정이지만 영상 증거에 관한 규정이 없어 고민이 된다”고 밝혔다. 다음 공판부터 시작될 피해자 증인신문에서 재판부는 중계장치를 이용한 화상 증언을 검토 중이다. 피해자와 피고인을 장소적으로 분리하는 방식이지만 피해자 얼굴은 노출되기 때문에 재판부는 방청객은 물론 피고인도 퇴정시키고 증인신문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날 재판에서 조씨는 자신의 혐의 대부분을 인정했지만 일부 피해 영상은 협박에 의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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