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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공정성 담보 장치없는 심의위, 이재용 살리려 말아먹었다”

등록 2020-06-30 05:00수정 2020-06-30 09:52

제도 도입 관여 인사들의 비판
검찰 기소독점 견제 취지 불구
피의자 옹호 위원 못 걸러내고
논의 적합한 사건 기준도 없어
신청권 남용 부작용 제대로 못 봐
복잡한 경제범죄 등 심의 부적절
“전면 개정하거나 폐지” 목소리 커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기소 여부 결정을 앞둔 가운데 29일 대검 청사에 내걸린 검찰기 뒤로 삼성 사옥이 보인다.  연합뉴스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기소 여부 결정을 앞둔 가운데 29일 대검 청사에 내걸린 검찰기 뒤로 삼성 사옥이 보인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불기소 및 수사 중단을 권고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의 지난 26일 결정은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에 따른 폐해를 막기 위한 제도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삼성 쪽에 편향된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온 인사가 참여하는 등 위원회의 공정성을 담보할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 당시 수사심의위 구성에 관여했던 인사들도 “수사심의위의 애초 도입 취지가 이재용 부회장의 사건처럼 복잡한 경제범죄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며 “운영 방법을 전면적으로 바꾸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 심의 과정에서 노출된 가장 큰 문제점은 250명의 수사심의위원 가운데 현안위원이 과연 공정하게 선정됐느냐는 점이다. 대검 예규인 ‘수사심의위 운영지침’을 보면, 현안위원은 특정 직역에 집중되지 않도록 무작위 추첨으로 뽑되, 심의사건 관계인과 친분·이해관계가 있는 경우 회피·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 또 현안위원이 △피의자 등 사건관계인인 경우 △사건관계인과 친족·대리인 등의 관계에 있는 경우 △그 외에 수사·재판에 관여한 공무원 등 심의에 참여하는 것이 부적절한 경우에도 회피·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를 종합해도 언론에 삼성을 옹호하는 입장을 수차례 냈던 김병연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사례처럼 심의사건의 피의자 쪽을 일방적으로 대변해온 현안위원들을 기피하기는 어렵다. 현안위원의 명단이 수사심의위가 열리기 직전에야 신청인·주임검사에게 통보돼 기피 신청이 사실상 불가능한 점도 문제다. 현안위원 명단의 ‘비공개’이기 때문에 언론 등의 ‘사전·사후검증’도 불가능하다.

불공정한 현안위원 구성은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심의에도 영향을 끼쳤다. 2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투표에 참여한 13명의 현안위원은 교수 3명, 변호사 4명, 교사 2명, 승려 2명, 기자 1명 등으로 구성됐다. 논의는 주로 ‘자본시장법 전문가’로 알려진 김병연 교수가 주도했다고 한다. 김 교수가 “형법도 아닌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이기 때문에 죄가 되려면 사기에 가까운 행위여야 한다. 미국에서도 그 정도 행위가 있어야 죄가 된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으면, 다른 위원들이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논의 중에는 ‘코로나19로 국가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그룹 총수 부재가 삼성에 끼칠 영향’을 걱정하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한다. 검사와 변호인의 의견 진술과 위원들의 질문에 이어 위원 간 상호토론이 이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주장이 나와도 이를 바로잡는 절차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심의위에서 다루기에 부적합한 사건을 사전에 걸러낼 기준도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수사심의위 도입 당시 검찰개혁위원으로 관여했던 박준영 변호사는 지난 28일 페이스북에 “(도입) 당시 자료를 보면서 아쉬운 건, 수사심의위 심의에 적합한 대상 사건에 대한 논의, 사건관계인이 소집 신청권을 남용할 경우 그 부작용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다는 것”이라며 “이재용 부회장 살리려고 이 제도를 말아먹었다”고 지적했다. ‘삼성 불법승계 의혹’처럼 수사기록만 20만쪽에 이르고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시세조종) 혐의의 복잡한 경제범죄를 비전문가들이 짧은 시간에 숙지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런 사건들도 ‘뇌물수수·업무방해’ 등 비교적 법리와 사실관계 구성이 간단한 사건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심의를 받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심의에 부적합한 사건의 신청을 거를 수 있는 장치는 사전 논의 단계인 일선 검찰청의 부의심의위원회 정도인데 이 제도도 ‘삼성 불법승계’ 사건에서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 박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도입 논의를 하던 당시에도 사건관계인에게 신청권을 주면 남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해 만들어진 것이 ‘부의 제도’였다”며 “그런데 이번 경우처럼 세간의 주목을 받는 사건에서는 부의위원들이 여론의 부담을 느껴 사실상 부의 과정이 형식적인 절차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검찰개혁위에서 이 제도 도입에 관여했던 김종민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도 “배심재판의 역사가 깊은 유럽도 건전한 시민의 법 상식을 가지고 판단해야 할 사안과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사건은 구분한다. 이 부회장 사건과 같이 신청권 남용을 방지할 정교한 장치 마련이 어렵다면, 악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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