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 월롱면 영태리 한국폴리텍대학 파주캠퍼스 예정부지에 주차된 ‘통일 트랙터’들.
7월6일 경기 파주시 월롱면 영태리 한국폴리텍대학 경기북부 캠퍼스 예정지를 찾았다. 2m가 넘는 철조망에는 “무단출입할 시에는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반환 미군 기지 환경오염 정화사업단장 명의의 2010년 8월 경고문이 붙어 있다. 그 너머로 공터에 방치된 수십 대의 트랙터들이 보인다. 폐쇄회로텔레비전과 적외선 감지 센서는 외부인의 출입만 감시했는가. 무성한 잡초 사이로 보이는 거미줄과 검붉은 녹은 지난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불어오는 바람이 아름드리나무들을 흔든다. 서로 몸을 부대끼는 나뭇잎들이 내는 소리는 스산한 정취를 자아냈다.
방수포가 벗겨진 채 비바람에 노출된 통일 트랙터.
한 통일 트랙터의 탑승문 유리창이 깨져 있다.
“대북제재 해제”, “우리 운명 우리가 결정” 등의 문구가 적힌 빛바랜 펼침막과 한반도기를 단 채 이곳에 방치된 트랙터는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2019년에 판문점 선언 1주년을 기념해 북으로 보내려던 ‘통일 트랙터’다. 전농은 2018년 10월부터 전국에서 통일 농기계 품앗이 운동을 벌여 농민들의 성금으로 트랙터 26대를 마련했다. 지난해 4월27일 임진각에서 ‘통일 품앗이 전국농민대회’를 열고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보내려던 전농의 계획은 유엔의 대북제재와 남북관계 악화 등으로 무산됐다. 갈 곳 잃은 통일 트랙터는 임진각 평화누리 주차장에 멈춰 섰다. 넉 달이 넘어가도록 방치되자 공원을 찾는 관광객들의 민원이 이어졌다. 전농은 지난해 9월 이전을 요청한 파주시와 협의해 아직 비어 있는 한국폴리텍대학 경기북부 캠퍼스 예정지로 트랙터를 옮겼다.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주차장에 약 넉 달 동안 머물렀던 통일 트랙터.
무성하게 자란 잡초 사이로 통일 트랙터들이 세워져 있다.
최근까지 통일 트랙터가 머물렀던 한국폴리텍대학 경기북부 캠퍼스 예정지는 과거 미군이 ‘캠프 에드워즈’로 쓰던 땅이다. 미 제2보병 사단에 전투 공병 전력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제82공병중대의 주둔지였다. 2000년대 중반 미군이 철수하고 사립대 유치가 무산되며 오랜 시간 방치됐다. 그 땅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북으로 보내질 날만을 기다리던 통일 트랙터는 다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창고 등 보호시설이 없는 외진 곳에 있어 관리가 어렵고 곧 대학도 들어오기로 한 탓이다. 전농은 파주시와 씨제이(CJ)대한통운의 제안으로 지난 7일 민간인통제구역 내 도라산역 물류센터로 통일 트랙터를 옮겼다. 통일 트랙터는 이제 좀 더 안전한 곳에서 남북 경제교류가 재개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원래 가야 할 목적지로 향하지 못하고 남북 접경지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통일 트랙터는 최근 남북관계의 상징물 같다. 판문점 선언이 제대로 이행되고 민간 교류가 활발해졌다면,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 떼 방북처럼 남쪽의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북쪽의 농민들을 만나는 장관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루빨리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이 좋아져 남북의 농민이 통일 트랙터에 앉아 북한 들녘을 경작하는 모습을 꿈꿔본다. 파주/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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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10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