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왼쪽)와 김은실 여성학과 교수가 지난 8일 서울 이화여대 통섭원 연구실에서 코로나19 시대 삶의 변화와 여성주의를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이후에 돌봄의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를 재편하고, 생태적 전환을 함께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 한국의 대표적 여성학자 김은실 교수와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가 ‘코로나 시대 이후의 사회’를 주제로 마주 앉았다. 두 학자는 코로나19를 불러온 원인을 진단하고, 생태적 전환과 돌봄의 가치를 중심으로 구축할 새로운 사회상을 논의했다. 최근 동료들과 함께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을 펴낸 김 교수는 “여성, 남성 등이 각자의 정체성에 기반해 ‘파이’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에 머무르는 것”을 우려했다. 최 교수는 코로나 위기가 “우리 삶이 자연과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지구촌이 전에 없던 변화를 겪고 있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발표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 생태를 회복하고 재난의 최전선에 놓인 여성과 약자를 돌보는 데 대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난 8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통섭원에서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가 생태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만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기획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은실(김)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할 만큼 코로나 팬데믹은 충격적인 사건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코로나 사태를 어떻게 진단하세요?
최재천(최) 저는 원래 상황을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에요. 자연 생태를 연구하는 건 실험실에서 하는 것과 다르거든요. 하지만 코로나19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요. 이건 순전히 우리가 저지른 일입니다. 자연을 그대로 두었다면 동물의 몸에 살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올 이유가 없죠.
김 인간은 개발이나 희귀동물 보양식 등을 위해서 자연을 짓밟아왔어요. 여기에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원과 인간을 빠르게 이동시키는 지구화가 팬데믹을 만든 기본 구조라 할 수 있겠죠.
최 새로운 시장을 ‘블루오션’이라고 하잖아요. 바이러스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블루오션입니다. 지구상에 78억명이 바글거려요. 우리가 기르는 닭, 오리, 양 같은 가축의 수도 압도적으로 많고요. 그래서 해마다 조류독감이며 돼지열병을 겪죠. 지금 코로나19는 ‘엄청나게 약은 놈’이에요. 초반 3~4일은 대부분 걸린 줄도 모른다잖아요. 그런데 장기로 들어오면 본성을 드러내고 순식간에 사람을 죽여요.
김 바이러스가 얌전할 때 관리하는 게 정말 중요하네요. 자연과 인간의 거리를 어떻게 유지하고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최 ‘인수공통 바이러스’라는 말이 대중화된 지 십몇년밖에 안 돼요. 원래 이런 바이러스는 있었는데, 이렇게 대규모로 동물과 접촉한 적이 없었을 뿐이에요. 옛날에는 소규모 사냥이 접촉의 전부였다면 지금은 끊임없이 숲을 파괴하고 동물을 죽이잖아요. 중국 사람들은 천산갑의 비늘까지 뽑고요. 중국 사람들은 비늘에 약효가 있다고 믿는데 성분을 분석해보면 우리 손발톱에도 있는 케라틴이에요. 그래서 “손발톱 깎아서 다 드릴 테니 천산갑 비늘 안 뽑으면 안 되나요” 호소하고 싶어요.
이화여대 김은실 여성학 교수가 지난 8일 오후 이화여대 통섭원 연구실에서 최재천 석좌교수와 함께 코로나19 시대 삶의 변화와 여성주의를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거리를 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천산갑은 박쥐와 인간 사이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옮겨준 중간 숙주로 추정되는 포유동물이다. 멸종위기종이기도 하다. 학계에서 오랜 연륜을 쌓은 여성학자와 평생 연구를 위해 들판을 헤매고 다닌 생태학자의 대화는 평등과 돌봄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기획은 가능한지로 이어졌다.
최 여성학자이면서 동시에 인류학자인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저는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데 이번 계기로 동네를 돌아보게 됐거든요. 행동의 제약을 받으니까 동네만 돌아다니는데, 음식점에 가면 이제 낯익은 분이 생기는 거예요.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동네 사람들과 가까워진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렇다면 지역 공동체가 살아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요?
김 저도 주로 집에 머물렀어요. 삶의 속도가 느려지고 필요의 수준도 낮아져 소비도 줄어들고, 강가나 공원을 산책하면서 공기가 맑아졌다는 걸 느껴요. 그런데 이건 집에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아요. 좁은 집에서 간신히 잠만 자고 학교나 카페를 돌아다니던 사람에게 ‘사회적 거리’는 고립과 스트레스로 직결돼요. 공간이 없는 젊은이들, 자기 공간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도가 마련돼야죠.
최 같은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너무 많이 가진 건 죄악이고 수치예요. 다들 고르게 가져야 평범한 사람도 자기만의 공간을 가질 것 아니에요. 이런 사회적 합의가 이렇게 어렵나 싶어요.
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다고 해도 삶이 멈출 수는 없죠. 자녀 양육, 가사노동, 환자 돌봄과 같은 삶을 재생산시키는 돌봄노동은 지속되어야 해요. <가디언>은 여성이 지난 반세기 이끌어온 성평등이, 코로나 이후 정부의 개입이 없으면 수십년 전으로 후퇴할 수 있다고 경고했어요. 일터에서는 불안정 저임금 노동을 하는 여성이 쉽게 해고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여성을 향한 폭력이 더 심해지고 있다고요. 토론토대의 생태학자 메건 프레더릭슨은 팬데믹 기간 동안 모든 분야에서 여성 연구자의 논문 출판이 남성보다 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죠. 그만큼 돌봄에 대한 여성의 책임이 커진 것입니다.
최 요즘 젊은 부부는 제법 가사를 분담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현실은 또 그렇지가 않군요.
김 재난은 이미 존재하는 불평등을 강화시키고 여성에 대한 폭력도 증가시키죠. 사회가 멈출 때야말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대처해야 하는데, 오히려 재난 이전으로 돌아가버려요. 온라인 쇼핑몰 같은 데서도 택배 노동자를 엄청나게 압박하잖아요. 이번에 저와 여러 페미니스트가 함께 쓴 책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도 돌봄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요. 모두에게 안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돌봄노동을 기초로 사회가 조직되어야 한다는 제안이죠. 선생님은 코로나 이후의 사회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최 우리가 삶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기회라고 생각해요. 외국의 어떤 부자는 코로나19가 한참 퍼질 때 요트에 혼자 머물렀다고 하잖아요. 1주일은 몰라도 한두달이 넘어가는데 물고기만 잡아서 살 수는 없어요. 음식도 생필품도 누군가 날라줘야죠. 그러면 배달하는 사람을 통해 바이러스가 옮겨올 수도 있지 않겠어요? 사회 전체가 마비되면 나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인식을 많은 사람이 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김 누구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의료 인프라 혜택이 케이(K)방역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작 가정, 병원, 요양원 등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여성이 돌봄을 못 받아요. 사회가 그분들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책에 재밌는 논의가 있는데요. 바이러스는 비말을 매개로 전파되잖아요. 키스나 섹스가 굉장히 민감한 문제인데, 사회가 이성애 가족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다뤄요. 반면 정부와 언론이 ‘이태원 코로나 사태’라는 명명 아래 동성애자 사이의 접촉을 굉장히 위험한 것처럼 다루는 걸 비판했죠.
최 세계보건기구(WHO)는 한때 ‘사회적 거리두기’ 대신 ‘물리적 거리두기’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저는 반대로 생각해요. 양육하는 아이와 물리적 거리를 둘 수는 없으니까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개념을 계속 가지고 가야죠. 내가 거리를 안 둬도 될 사람은 두지 않고, 둬야 할 사람은 두는 것이에요.
돌봄의 현실, 비대면의 환상
현재는 ‘사회적 거리두기’보다 완화된 형태인 ‘생활 속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다. 거리두기를 지키지 않는 이들이 눈총을 받는다. 바이러스를 전파하지 않는 행동이 공공선에 부합해서다. 최재천 교수는 “진화생물학자들은 병원균을 피하려는 데 혐오 감정의 근원이 있다고 본다”며 이것이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한 생물학적 이유라고 진단한다. 김은실 교수는 “위험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문화적으로 규정된다”고 말했다.
김 디지털 이야기도 안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한국판 뉴딜의 핵심이 디지털 경제잖아요. 그런데 디지털 기술을 통한 이윤 창출이 새로운 문화 논리 위에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엔(n)번방 사건은 디지털 환경에서 일어난 중대 범죄인데, 너무나 익숙한 남성성 생산 방식이 매개되어 있다는 것이죠. 선생님은 새로운 사회를 디지털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논의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 디지털 환경이 새롭고 진전된 인식을 보장하진 않죠.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우리 사회는 디지털화를 향해 가고 있었잖아요. 그렇다고 모든 게 비대면으로 바뀔 수는 없어요. 진화생물학적으로 보면 우리는 개미와 벌처럼 모여 사는 동물의 대표예요. 그중 호모 사피엔스만이 거대한 익명사회를 만들게끔 진화했어요. 쾌적한 카페에 고릴라 열몇마리가 차 마시고 있는데 옆 동네 고릴라가 들어와서 차를 시킨다? 그 자리에 있던 고릴라가 다 들고일어나요. 그런데 우리는 서울역 대합실에서 낯선 사람이 서로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잖아요. 이처럼 진화한 인간이 비대면으로만 사는 건 어렵다고 봐요.
김 사회적 기본 가치를 같이 논의하지 않는 한 비대면은 모든 사람에게 편안한 구조가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최 모든 걸 디지털, 비대면으로 바꿔버리면 우리가 걱정했던 진짜 이상한 사회가 올지도 몰라요. 지금 정부가 생각하는 식으로 움직이면 사람은 없어지고 테크놀로지만 남죠. 우리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다 인공지능한테 몰아주고 우리는 재밌는 거,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 되잖아요.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환상이죠. 사회는 돌봄노동 없이 유지될 수 없어요.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가 지난 8일 오후 이화여대 통섭원 연구실에서 김은실 여성학과 교수와 함께 코로나19 시대 삶의 변화와 여성주의를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오래된 각성, 새로운 지혜
두 사람의 대화는 다양성이 새로운 사회의 마중물이라는 논점으로 확대됐다. 김은실 교수는 각자의 ‘파이’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질문했다. 그는 권김현영, 정희진 등과 함께 쓴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에서 누가 ‘진짜 여성’으로 간주되며 그와 같은 규정이 얼마나 정치적인지를 이야기한다. 최재천 교수에게도 다양성은 오랜 연구의 주제다. 여성의 공존과 생태적 전환도 다양성에서 출발한다는 데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하는 이유다.
김 선생님의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라는 인용이 참 좋았습니다. 자연만이 아니라 사회도 차이를 배제하면 생존력이 없습니다. 사실 최근 ‘여성’도 주변인이고 피해자이기 때문에, 다른 피해자까지 포용하면 확보할 몫이 줄어든다는 논의가 있죠. 여성, 남성, 트랜스젠더, 난민 등 모두가 피해자성을 주장하고 경쟁합니다. 네가 가지면 내가 가질 수 없다는 감각, 다시 말해 ‘파이’가 너무 적다는 인식이 아주 강해요.
최 제가 요즘 제일 존경하는 인물이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예요. 제가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의장을 하던 무렵 캐나다에 갔다가 방송에서 내각을 임명하는 장면을 봤어요. 여성 장관을 50% 배정한다기에 두 눈 부릅뜨고 봤죠. 정확하게 50%를 지명했어요. 장관에 이슬람권 인사 2명, 장애인도 있어요. 다양하지 않으면 건강하지 않고 창의적이지 않아요.
김 국가가 항상 “나중에”라고 말하기 때문에 여성과 소수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그래서 충분히 성숙한 아이디어는 아니어도, 빨리 말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동료들과 책을 펴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은 돌봄을 사회 기획의 핵심에 자리잡게 하고, 여성이 신자유주의의 주문을 뚫고 다른 정체성과 연대하게 만드는 힘이에요. 이번 사태로 우리가 배운 것은 사회가 돌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거리는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에 대한 각성과 지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페미니스트는 그런 지혜를 나누는 자리에 기꺼이 함께해야 할 테고요.
최 우리 삶이 자연과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 이번 팬데믹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봅니다. 언젠가 인간은 자연에 크게 당할 것이라고 말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분들이 이제는 먼저 걱정을 합니다. 제인 구달 같은 분들이 아무리 애써도 안 되던 전환의 계기가 마련된 것이죠. 아주 고통스러운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부디 이를 계기로 우리 삶의 생태적 전환이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정리 김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