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믹스 아파트 임대세대 거주자들은 아파트 단지 안의 차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한겨레>는 9월21일~10월8일 온·오프라인을 통해 서울지역 주요 소셜믹스 단지 임차인들을 상대로 이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마포구 ㅅ아파트와 강서구 ㅁ아파트, 강동구 ㄱ아파트, 영등포구 ㄹ아파트, 서초구 ㅍ아파트 등 16개 소셜믹스 단지 임대세대 거주자 119명이 조사에 답했다.
‘아파트에서 분양인과 임대인이 동등하게 대우받고 있다’는 문항에 “그렇다”는 비율은 14.3%(17명)에 그쳤고, “그렇지 않다”는 79%(94명)에 달했다.
‘임차인으로서 차별을 느끼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문항에는 77.3%(92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중은 15.1%(18명)에 그쳤다.
차별의 구체적 사례로 마포구 ㅅ아파트 9단지 한 거주자는 “관리비로 운영되는 모든 사안에 의결권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입주민대표회의가 분양세대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관리비 납부 의무만 있지 운영에 참여할 권리는 없다”는 설명이었다. 강동구 ㄱ아파트 3단지 임대세대 한 거주자도 “단지 내 임대아파트 임차인의 비율이 78%에 달하는데도 운영에 대한 모든 사항이 임차인을 제외한 채 결정돼 상대적 차별을 느낀다”고 답했다. “임차인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동등한 주민이 아니다”(강서구 ㅁ아파트 8단지)라는 답변도 있었다.
‘입주민대표회의가 분양인과 임차인의 의견을 균형있게 반영하고 있다’는 문항에 94명(79%)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현재 공동주택관리법은 소셜믹스 단지 입주자대표회의에 임대 거주자는 참여할 수 없게 돼 있다. 150가구 이상인 공동주택단지는 임차인대표회의를 의무적으로 구성해야 하지만, 협의기구여서 의사 결정권은 없다.
조강희 서울혼합주택임차인연합회 제도개선위원장은 “관리비는 같이 내는데, 결정 권한은 분양인에게만 있어서 임차인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다”며 “소셜믹스의 분양인과 임차인 사이에 권한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려면 관리비 사용 주체를 소유주에서 사용자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임차인 대다수가 차별을 느끼고 있지만 이를 알리거나 개선을 요구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단지 내 차별, 갈등 문제로 민원 신청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문항에 긍정한 이는 40.3%(48명)에 그쳤다. 임차인대표회의가 있는 단지에서는 대표를 통해 민원을 접수할 수 있지만, 절반 이상 단지에서는 임차인대표회의가 구성되지 않아 문제를 제기할 창구조차 없는 상황이다.
서울 중랑구 신내동 데시앙아파트 관리소장과 입주민들이 지난달 25일 단지내 관리사무소 들머리에서 아파트 운영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소셜믹스 단지의 임대주택을 공급·관리하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스에이치)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에스에이치가 소셜믹스 단지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잘 중재하고 있다’는 문항에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는 4명(3.4%)뿐이었고,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이는 98명(82.6%)에 달했다. 강서구 ㅁ아파트 6단지 한 임차인은 “분양세대와 협의 대상자인 에스에이치가 역할을 하지 않아 잡수익 배분 문제를 둘러싸고 임차인이 손해를 보고 있다. 임차인이 분양인과 직접 협의할 수 있도록 (에스에이치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강동구 ㄱ아파트 3단지 한 임차인은 “현행법상 에스에이치를 통해서만 분양인들과 이견을 조율할 수 있어 임차인의 의견개진 통로가 전무하다. 임차인이 분양인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병문 전 마포구 ㅅ아파트 11단지 관리소장은 “중간에 끼인 관리소는 임차인과 분양인 쪽 모두의 눈치를 봐야 한다. 집주인 격인 에스에이치가 임차인의 권한을 잘 대변하지 않아 임차인뿐만 아니라 관리소까지 피해를 본다”며 “에스에이치가 일부 권한을 임차인들에게 위임하는 게 분양인에게 기운 힘의 균형을 맞춰 소셜믹스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했다.
‘우리 아파트는 분양인과 임대인 간 화합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문항에 87명(73.1%)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렇다”고 답변한 이는 8명(6.7%)에 그쳤다. 그나마 언급된 화합 프로그램은 공동대표회의 구성, 비정기 간담회 등이 고작이었다. 영등포구 ㄹ아파트 임대세대 한 거주자는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해도 만들지 않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공동 프로그램’ 개발은 소셜믹스 단지가 본격적으로 공급된 2010년 이후 분양세대와 임대세대의 화합을 위한 대책으로 마련됐다.
분양세대와의 차별, 이질감은 소셜믹스 정책 자체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이어졌다. ‘다양한 계층이 모여 사는 소셜믹스 취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문항에 90명(75.6%)이 “그렇다”고 응답했는데, ‘새로 지어질 아파트에는 임대와 분양 세대를 따로 구분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문항에 60%가량(72명)이 긍정적으로 답했다. ‘소셜믹스 정책 취지는 이해하지만 그냥 따로 짓는 게 낫다’는 게 다수 의견인 셈이다. ‘여력이 있다면 소셜믹스 단지에 살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항에 55.5%(66명)가 “그렇다”고 답했고 “그렇지 않다”는 35.3%(42명)에 그쳤다.
송경화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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