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1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세계보건기구(WHO)에 처음으로 보고된 신종 전염병은 불과 1년 만에 전세계 인구의 1%인 8000만명이 넘는 사람을 감염시켰다. 자본과 시장 그리고 교역으로 달콤한 맛을 안겨주었던 ‘세계화’는 역병 창궐이라는 혹독한 쓴맛을 제대로 경험하게 하고 있다. 금세기 인류 최악의 전염병인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에 파고들었다. 국경은 문을 닫았고 인적·물적 교류도 끊겨 전세계 경제가 마비됐다. 사람들은 모이지 못했고 서로의 표정을 볼 수 있었던 얼굴엔 가림막 같은 마스크가 씌워졌다. 낙원 같은 바닷가에서 불타는 석양을 바라보는 것도, 고대 인류가 이룩한 위대한 유물에 감탄하는 것도 땅바닥에 묶여버린 비행기 앞에서는 안타까운 꿈에 지나지 않았다. 붉은 태양 아래에서도 삭풍 부는 엄동설한에서도 우리는 검사를 받으러 줄을 서야만 했고, 자고 나면 늘어나는 확진자 숫자 앞에 의료진들은 지쳐만 갔다. 고약한 병원체는 다른 이를 미워하고 원망하도록 했다. 그 틈을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스트롱맨’들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들도 바이러스의 공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자는 서로의 약속은 무너지기 일쑤였고, 방역의 벽을 무너뜨린 사람들은 질타받았고 머리를 조아렸다.
바이러스에 대한 최후의 반격, 인류는 스스로 사회성을 버리면서 이에 맞섰다. 사회적 거리두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었나 싶을 정도로 멀어지고 칸막이를 쌓았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하지 못했고, 믿음은 가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할머니와 손자가 만나지 못했고, 기차를 타는 가족도 서로 떨어져 앉아야 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연출됐다. 바이러스는 공평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퍼지는 역병은 누군가에겐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나마 어렵게 살아왔던 특정 계층은 삶의 수단이 없어졌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기도 했고, 어제까지 배급해주던 무료 급식소도 문을 닫았다. 가게 불이 꺼지고 문이 닫혔다. 거리는 을씨년스럽고 스산하기까지 했다.
창쪽 자리에만 앉을 수 있는 케이티엑스(KTX).
승리의 ‘브이’를 손가락으로 만들어보이는 선별진료소 의료진.
지난 1년을 휩쓴 코로나 19의 기나긴 터널. 우리는 아직도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지만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한 줄기 빛이 보인다. 그 빛을 보며 오늘의 혹독함을 버틴다. 서로가 만드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느끼면서.
사진 한겨레 사진부, 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2020년 12월 29일 <한겨레> 올해의 장면들 지면.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