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정마을회와 제주해군기지건설저지를위한전국대책위원회 등이 지난 2013년 기지 건설 사업단 앞에서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경찰에게 끌려나가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사면보다 국가의 사과와 진상조사, 그리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원합니다.” 29일 법무부가 발표한 새해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와 성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반대하는 시위로 기소돼 확정판결을 받은 주민들은 사면 소식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주민들은 정부에 “진정한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라”고 촉구했다.
법무부는 이날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 관련자 18명과 사드 배치 관련 8명을 특별사면한다고 밝혔다. 두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진 세번째 사면이다. 하지만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해왔던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공동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제주 해군기지를 둘러싼 국가정보원 개입과 주민에게 가해진 인권탄압 등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다. 이런 요구는 무시해놓고 취사선택하듯 사면을 한다면 보여주기식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고 대표는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해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확정판결이 내려진 사건이 600건이 넘는데, 사면은 (지난해 포함) 20여명 정도만 이뤄졌다”며 “이런 정도로 정부의 노력을 강조하는 것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지난해 사면 대상에 포함됐지만 거부 의사를 밝혔던 문정현 신부도 “(주민들은) 사면을 먼저 요구한 적도 없다. 용서를 받아야 할 대상은 우리(주민)가 아닌 정부”라고 비판했다. 기지 찬성과 반대로 갈려 반목했던 마을에 화합을 기대하는 주민들도 있다. 강희봉 강정마을회장은 “마을회 차원에선 공동체 회복이 기대되기도 한다. 다만 사면을 받은 주민 수가 너무 적어 아쉽다”고 했다.
경북 성주의 사드 배치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주민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사드반대 종합상황실 강현욱 대변인은 “사면만으로 국가와 화해하고 지역사회 공동체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사드 배치 현장에서 일어난 충돌의 원인을 제공한 정부가 사드 배치 절차를 중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에서 활동했던 류동인(57)씨는 “사드 배치에 맞서 싸웠던 주민들이 이제라도 사면돼서 다행”이라면서도 “정부는 이제 사드 배치 철회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이날 발표한 특별사면 대상자는 △일반 형사범 2920명 △중소기업인·소상공인 52명 △중증 환자 등 특별배려 수형자 25명 등으로, 모두 3024명이 특별사면됐다. 공직부패와 성폭력, 보이스피싱 등의 중대 범죄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또 정치범과 선거사범이 제외되면서 관심이 집중됐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도 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사면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 네번째 특별사면이다. 취임 첫해인 2017년 12월 연말 특별사면으로 6444명, 지난해 2월에는 3·1절 100주년 특별사면으로 4378명, 지난해 12월 신년 특별사면으로 5174명이 사면됐다.
장예지 김일우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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