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018년 경북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소속이었던 정지은 선수는 지속적인 폭력과 가혹행위로 인해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최숙현 선수가 당한 폭력을 용기 내 증언한 뒤 지난해 11월 소속팀과 재계약에 실패했다. 2년간 함께했던 팀을 그렇게 떠났다. 연말이면 쏟아졌던 입단 제의는 사라졌다. 그는 ‘괘씸죄’로 스포츠계에서 쫓겨났다고 보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최숙현 선수가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폭력을 고발하며 세상을 등진 지 반년이 지났다. 2020년 6월, 22살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유망주의 안타까운 죽음을 전하는 보도가 쏟아졌고, 문재인 대통령은 재발방지책 마련을 지시했다. 국회는 청문회를 열겠다고 했고 경찰은 특별수사단을 만들었다. 이후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최숙현 사건 반년이 지난 뒤부터 <한겨레>는 사회적 이목이 사라진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선수들을 만났다. 수차례 설득 끝에 만난 그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거나, 팀에서 쫓겨났거나, 스스로 삶의 현장을 떠나고 있었다.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 나아진 것은 없고 더 나빠지기만 한 그들의 오늘을 세차례에 나눠 싣는다.
“별다른 이유 없이 때렸어요. 어느 날 갑자기 와서는 ‘니가 나를 때려야 정당방위가 되고, 그래야 내가 니를 때릴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면서 남자 선수를 시켜 제 손으로 자기 얼굴을 스치게 한 뒤에 욕하면서 때렸어요.”
정지은(24)은 2016~2018년까지 경북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소속이었다. 그 시절은 기억할 수도, 잊을 수도 없었다. 감독은 체중이 늘었다며 벌로 20만원어치 빵을 강제로 먹였다. 19살 때였다. 주장은 머리, 가슴, 뺨을 수십차례 때렸다. 어떤 날은 남자 선수에게 철제 봉으로 ‘빠따’를 때리게 했다. 이유는 없었다. “언론에 나온 건 정말 빙산의 일각이에요. 정말, 너무 많이 맞아서 다 기억도 안 나요.”
3년 동안이나 이어진 폭력은 결국 공황장애를 불러왔다. 조여오는 가슴과 불안감에 매일 알약을 먹어야 잠을 이룰 수 있다. 아끼던 동생 숙현이가 지난해 세상을 떠난 뒤엔 약이 5알에서 7알로 늘었다. 고 최숙현 선수와는 3년 동안 함께 운동했다.
“이제 메달이 중요한 시대는 지났습니다. 즐기는 시대입니다. 정부는 전문 체육인들과 생활 체육인들이 스포츠 인권을 보장받으면서 마음껏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간섭 없이 지원하겠습니다.” 지난달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멍하니 화면을 봤지만 딴 나라 이야기 같았다. 이날도 알약에 의지해 잠들었다.
정지은은 지난해 11월 결국 운동을 그만둬야 했다. 몸을 추스르고 소속팀인 대전시청팀 훈련에 다시 합류한 지 1주일 만에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그뿐이었다. 숙현의 죽음 뒤 방황했을 때 “끝까지 함께해보자”며 손 내밀었던 감독은 “상황이 어렵게 됐다”고 말을 바꿨다. 2년간의 대전시청팀 생활은 그렇게 끝났다. 며칠 만에 돌아온 고향 집은 변한 게 없었다. 달라진 건 16년을 바쳐온 운동 인생이 끝났다는 사실뿐이었다. “즐기면서 하라고요? 우린 목숨 걸고 했어요.” 운동을 즐기는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2017년 대만 여행 중 버스에서 정지은(왼쪽)과 최숙현이 함께 찍은 ‘셀카’. 정지은 제공
정지은은 촉망받는 트라이애슬론 선수였다. 성인 무대 2년차부터 태극마크를 달았고, 3년간 전국체전에서 메달 6개를 땄다. 지난해 여자 엘리트 부문 전체 7위. 같은 나이대 독보적 활약이었다. 연말이면 입단 제의가 쏟아졌고, 대전시청도 그중 하나였다. “감독님이 열번 넘게 전화를 걸고 문자도 보내셨어요. 설득을 굉장히 많이 하셨죠.” 그렇게 2019년 1월 경주에서 대전으로 향했다.
폭력 없는 곳에서 새 출발 할 생각에 설렜다. 그러나 경주시청의 악몽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2019년 뉴질랜드 전지훈련에서 폭행 녹취록을 확보한 숙현이가 고소를 준비한다는 얘길 전해 들은 김규봉 경주시청팀 감독은 목격자이자 피해자인 지은을 압박했다. 김 감독은 대전시청팀 감독에게 전화해 “지은이와 통화하고 싶다”고 졸라댔다. 지옥 같은 기억이 끝없이 쫓아왔다.
그러던 중 숙현이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6월26일 새벽이었다. 전날까지도 자신과 카톡을 하며 ‘사건이 검찰로 넘어갔다’던 숙현이가 죽었다니.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김 감독과 주장 장윤정은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언론은 팀닥터로 행세한 안주현에게 집중했다. 모든 책임을 그가 뒤집어쓸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가장 처벌받아야 할 이들”의 죄가 묻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7월6일 국회 소통관에 선 이유였다. 떨리는 목소리로 김규봉과 장윤정의 폭행을 증언했다. 긴장해서 그날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최숙현이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 정지은이 최숙현과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 정지은 제공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같은 날 회의를 열어 김규봉과 장윤정을 영구제명했다. 다음날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철저한 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청문회를 열기로 했고, 경찰청은 특별수사단을 꾸렸다. “어쩌면 바뀔지도 모르겠다.” 작은 희망을 품었다.
기대는 한달도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났다. 시작은 철인3종협회의 관리단체 지정이었다. 애초 대한체육회는 협회의 강등을 고려했지만, 선수들의 반발에 막혔다. 만약 협회가 강등되면 종목 위상이 떨어지고 예산이 대폭 깎인다. 모든 피해가 선수들에게 돌아간다. 카메라 앞에서 다시 손팻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우려했던 일이 그대로 일어났던 셈이죠. 왜 윗사람들 대신 선수들이 피해를 봐야 하죠?”
여론의 관심이 식자, 조용한 ‘보복’이 시작됐다. 먼저 최숙현이 뛰었던 경주시청 여자팀이 사실상 해체됐다. 팀에 있던 여자 선수 1명은 운동을 접었고, 1명은 다른 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은을 비롯해 사건 당시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에 나섰던 이들이 줄줄이 재계약에 실패했다. 쏟아지던 입단 제의는 사라졌다. 지난해 경찰에서 피해 조사를 받은 20여명의 선수 중 현역 선수는 6명. 이들 중 4명이 재계약에 실패해 운동을 접었다. 다들 그렇게 쫓겨났다.
숙현의 죽음 뒤 운동을 그만둘까 수차례 고민했지만, 이렇게 떠나고 싶진 않았다. 자신을 설득했던 감독님이 원망스러웠다가도 팀 걱정에 고민이 많았을 거란 생각에 이해되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번씩 감정이 요동쳤다.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항의하기도 어려웠다. 표면상으론 단순 계약만료일 뿐이었다. 지난여름, 용기를 내 함께 피해를 증언했던 동료들은 쫓겨난 자와 남은 자로 갈렸다. 각자의 처지가 피해자들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사이 가해자들은 합의를 시도했다. 그들이 내민 건 반성과 사과가 아니었다. 가해자의 가족들이 전화를 걸어와 “돈 밝히는 거냐”라든가 “좋은 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라고 압박했다. ‘왜 계속 시끄럽게 구느냐’는 주변의 눈초리 속에 동료들은 하나둘 합의에 응했다. 합의한 선수와 안 한 선수가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는 사이가 됐다. 절망에 빠진 선수들은 사건 당시보다 언론 인터뷰를 겁내고 꺼렸다. 잃을 게 없으면 용감해진다지만, 희망마저 빼앗긴 이들에겐 예외였다. 여론의 관심이 떠난 자리에 남은 선수들의 현실은 여전히 부조리하고 고통스러웠다.
지난해 7월6일 정지은이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선수들이 신음하는 사이, 정부와 대한체육회는 이들을 방치했다. 지은은 지난해 7월 최윤희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만난 것 외에는 단 한번도 정부나 관계기관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 어떤 지원도 없었다. 문제 해결을 약속한 이들 가운데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일은 당사자 말고는 아무도 몰라요. 정말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있다면, 누구라도 와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체육계는 여전히 사람이 아닌 성적만 강조했다. 대전시청과 계약이 불발된 뒤, 한 실업팀에 이름을 올리고 전국체전만 참가하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연봉은 기존의 5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성적을 잘 내니까, 전국체전에서만 써먹겠다는 거예요. 아직도 그렇게 성적으로만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어요.”
평생 운동만 해온 지은은 미래가 불투명하다. 폐쇄적인 체육계, 그중에서도 좁디좁은 트라이애슬론계에 발붙일 곳은 없어 보였다. 최근에는 경력을 살려 수영강사 면접을 보러 갔다가 “최숙현 선수 사건 때 뉴스에서 봤다”는 얘길 들었다. 악의 없는 말이었지만, 움츠러들었다. “카페 일을 배워 그쪽으로 나가볼까 싶기도 하고, 직업군인이 될까 싶기도 해요.” 어머니는 “요즘 지은이가 자꾸 숨어 사는 쪽으로 생각을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비단 정지은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직 수구 국가대표 김진현(가명) 선수 역시 지난해 경기도청 수구팀 감독의 금품수수 혐의에 대해 증언한 뒤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도청 감사부서 조사에 응한 뒤부터 선배, 동료들의 전화가 쏟아졌다. ‘제보자가 아니냐’는 의심이 끈질기게 괴롭혔다. 가장 믿었던 이들이 돌아서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감사 결과 감독의 금품수수가 인정됐지만,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관계기관들은 2차 피해 방지를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대책은 없었어요.”
경북체육회 여자컬링팀 선수들이 지난해 7월2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팀킴’으로 알려진 경북체육회 여자컬링팀도 문제 제기 뒤 이어진 2차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은 2018년 11월 컬링연맹 회장 직무대행의 폭언과 갑질 등을 폭로했다. 법원은 이들의 폭로가 사실이라고 인정했고, 가해자들은 처벌받았다. 그러나 선수들의 고통을 법원이 해결해주진 못했다. 선수들은 최숙현의 죽음으로 들끓던 지난해 7월20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팀을 음해하려는 시도는 물론, 해체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다”고 토로했다. “관리 감독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2의 팀킴 사태’, ‘철인3종 폭행 사건’은 또 일어나고 반복될 것입니다.” 정지은은 도처에 있다.
정지은은 이제 체육계에 어떤 정도 미련도 남지 않았다고 했다. 숙현이 장례식장에서도 입막음을 시도하던 협회 관계자들을 보며 한번 마음을 접었고, 재계약 실패 뒤에는 완전히 마음을 접었다. 할 수 있는 한 트라이애슬론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달아나고 싶다. 다만 ‘제2의 최숙현’이 나올까 걱정이 될 뿐이다. “어차피 이제 운동 포기했어요. 그렇지만 이런 현실은 정말 바꾸고 싶어요. 선수들이 걱정했던 일들이 그대로 일어나고 있잖아요. 다음번에 누군가 숙현이 같은 일을 겪는다면, 그때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을까요?” 숙현이가 떠나고 반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광주(경기)·대구/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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